2025.06.09 22:05
무서운 속도로 귀가 자라는 집
전희진
바닥에 깨져버린 달걀의 미래처럼 단둘이 밥을 먹는다
식탁에 수저가 놓인 방식으로 나란히
밥을 먹는다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티브이를 본다
무미건조하게 몇 마디 말, 던져버릴 뿐인,
순간 허공에 흠집을 내고 사라지는 말
웃음을 터뜨려 줄 폭넓은 티브이가 있어 다행이다
스크린 속 남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다 보면
고개가 절로 끄떡여지고
사는 것이 목적 없이도 살아지는 것 같고
꼭 다문 입들이 저절로 벙글어져
눈이 녹고 있는 겨울, 점점 퇴각하고 있는 햇볕,
반려견처럼 터득한다 자신들의 말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몸집을 부풀리며 천장을 뚫을 듯 거대해지는 자신들의 귀
갓 구운 빵에 버터를 바르면서 잼을 바르면서 시선은 어김없이 티브이를 향하는데
가끔 아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바라볼 때
노스탤지어, 목련 봉오리 터지듯 터무니없이 누그러지는 저 둘의 표정
파쇄기가 자질구레 아침의 목적을 삼키는 소리에 아침잠이깬다
커피 가는 소리 커피 내려오는 소리
조간신문, 상큼한 하루가 구겨지는 소리
침대 속에서 잠이 덜 깬 그녀가 눈 감아 준다
슬그머니 늦은 침대에서 여자의 발 내려오는 소리
남자가 눈 감아준다
눈 근처에 귀가 있지만 눈은 자신의 귀를 볼 수 없고
바람 소리나 듣자고 쓸모없는 풍경을 허공에 매달진 않았는지
목적도 없이 자욱이 비가 오려는지
풍경 소리 단둘의 봄을 넘을 듯 말 듯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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