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4 15:21
어머니의 빨랫줄 - 이만구(李滿九)
햇볕이 금싸라기처럼 쏟아지는
가을날 오후, 집 뜨락에
대추나무 사이 보이지 않는 줄이 쳐있다
늙으신 어머니가 애쓰시며
포대기와 담요 빨아 널으시고
바람은 먼 데서 달려와
지렛대 삐그덕 거리며 마른 것들을 펄럭인다
반공일 오후의 집 앞마당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자식의 다이아몬드 이름표 달린 학생복도
손수 빨아 말리시는 어머니....
쫌 쫌 한 햇살과 보송보송한 옷자락이
바람 속에 흔들어대며 아우성친다
우물 옆 장독대 위에서
마른 나물을 봉지봉지 담아 넣으시고
구부러진 허리를 하고
고구마순과 썬 무 조각들 채반에 말리고 계신다
토방의 양지바른 곳에는
하얀 끈이 매달린 젖은 운동화가
햇빛에 걸쳐있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이국땅, 저 대추나무 사이
이제는 걸릴 내 몫으로 돌아온 빨랫줄에는
옛 시절 어머니가 그리하듯이
주말이면 나는 무얼 널고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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