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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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페니를 쌓으며  

                                                                                                                                 이희숙  

  쌓는다. 탑처럼 조심스레. 매년 이맘때면 하는 일이다. 유리병에 모았던 코인을 책상 위에 쏟는다. 수북하게 쌓인 코인을 종류별로 구분한다. 여섯 가지 크기에 색깔과 무게도 다 다르다. 달러(Dollar), 하프 달러(Half Dollar), 쿼터(Quatre), 다임(Dime), 니켈(Nickel), 페니(Penny). 동전은 구리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화폐로 쓰고 남은 잔돈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동전을 귀찮은 애물단지로 여긴다. 거스름으로 받으면 보관하기도 귀찮아 팁 통 속에 넣는다. 심지어 바닥에 떨어진 동전은 줍지도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면 앞면에는 대통령의 초상이 들어가고 뒷면에는 액수를 말하는 숫자가 도안 되어 있다. 앞면과 뒷면 가장자리는 원 을 따라 불룩하게 돌출된 림이 있어 표면 도안의 훼손을 방지한다. 1달러 앞면에는 사카자위아라는 아메리카 원주민, 하프 달러에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25센트인 쿼터는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들어있고 가장 많이 사용된다. 10센트인 다임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새겨져 있다. 크기가 니켈보다 더 작아서 혼돈을 가져오기도 한다. 니켈은 3대 대통령이자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의 모습이 들어있다. 1센트인 페니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초상으로 가장 적은 액수이다.

   요사인 코인이라 하면 암호화폐의 비트코인, 플랫폼 코인 등 새로 생긴 코인의 종류가 1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코인이 투자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기도 했지만 내가 지금 쌓고 있는 코인은 길에 떨어져 있어도 누구든 외면하는 동전이다. 그런데 나는 왜 새해 초에 보잘것없는 동그라미를 정성스레 쌓고 있을까? 10개씩 키를 맞추어 늘어놓고는 손가락 감촉으로 키재기를 한다. 그러고는 은행에서 지정한 좁은 종이봉투 속에 가지런히 넣어야 한다. 이때 옆으로 삐져나오거나 공간이 생기기 쉬워 숙련된 경험이 필요하다. 인쇄된 작은 봉투에는 $10, $5, $2, 50라고 적혀 있기에 들어갈 개수도 각각 다르다. 곱하기와 나누기하며 녹슨 머리를 굴려본다.

   수북이 쌓였던 동전 뭉치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인내를 시험하는 것처럼 나와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 한참 집중하노라면 허리가 아프다. 허리를 펴며 일어날 때 나는 새까맣게 변해있는 손바닥과 손가락을 본다. 노란 페니가 거무스레한 이물질로 뒤덮였고 색깔을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를 돌고 돌아 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돈은 받으면 기분은 좋지만, 세균의 요새로 여길 수도 있다. 비누를 발라 여러 차례 비빈다. 손 세정제까지 바르고 책상 바닥을 박박 문지른 후에야 개운한 기분을 맛본다.

   동전을 전자파 방지용으로 컴퓨터에 붙이거나 신발 속에 넣어 냄새 제거용으로 쓰는 등 홀대한다. 아이들이 물건을 산 후에 슬그머니 동전을 버리는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이 쓰리다. 천덕꾸러기가 된 동전의 숨은 가치를 생각해 본다. 자판기 안에서 유용한 동전은 크기와 부피에 의한 인식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동전이 꼭 필요했던 사례를 되돌이켜 본다. 유럽 여행에서 화장실 갈 때, 물건을 실으려고 카트를 뺄 때, 세차장에서 차를 닦을 때, 빨래방에서 세탁기를 돌리기 위해, 마트에서 플라스틱 봉툿값으로 동전은 필요하다. 필요한 용도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복권을 긁을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동전이 없어 카드 사용을 권장하는 곳도 있다. 거스름돈은 필요한데도 시중에 부족해 제조에 악순환은 계속된다. 동전이 없어져 최소 단위가 지폐 단위로 바뀐다면 인플레이션은 높아지는 위험이 따를 것이다.

  드디어 좁은 종이봉투로 싼 동전 뭉치를 들고 은행을 찾았다. 저금한 액수는 고작 몇십 불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뿌듯함은 무엇 때문일까?

  14년간 모은 10원짜리 동전 11만 개로 태극기를 새겨 동전 벽화를 완성하고 기네스 세계기록으로 공식 인정받았다는 어느 분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또한 작은 동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때문이리라. 서랍 속이나 돼지 저금통에서 잠자고 있거나 사라지는 동전의 소중함을 일깨워 본다. 정말 필요한 곳에 사용되는 적은 액수의 동전이 있다. 그 자리엔 그 동전만이 필요하다.

   남들이 퇴근 후에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 남모르게 뒤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갓 이민해 와서 청소 용역회사를 통해 건물을 청소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학교가 끝난 후 아들까지 온 가족이 어두운 저녁 시간을 이용해 실내 청결을 위해 힘썼다고 했다. 여러 종류의 청소 용구를 카트에 담아와 용도에 맞게 사용해야 했다. 먼저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비롯한 쓰레기를 쓸고 대걸레로 닦았다. 더욱이 남들이 꺼리는 것을 보아야 하는 화장실 청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변기 안에 약품을 넣고 솔로 문지를 때 고약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며 머리가 아팠다. 화장실 거울을 자국이 남지 않도록 문지르고, 책상 위 먼지를 걸레질했다. 숨돌릴 사이 없이 움직여야 했고 신속한 몸짓이 필요했다. 힘든 작업이 끝나고 녹초가 되어 귀가할 때 얼굴을 스치는 밤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아무리 미미한 사물이나 사람일지라도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소임을 감당하려 하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 윤택을 잃고 손때 묻은 보잘것없는 존재로 살아가지만,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로 인해 세상은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다.

  오늘도 누리끼리한 페니 한 개를 유리병 안에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