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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겨울바람

2007.02.19 15:03

정병선 조회 수:87 추천:8

겨울 바람                                                 행촌수필문학회   장  병 선 겨울은 찬바람이 불어야 제격이다.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겨울바람이 불어야 겨울다운 맛이 난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가 아파트 현관에 들어오면 역시 집안이 따뜻하다면서 들어와야 하는데 요즘은 포근한 날씨 탓에 고마움을 모른다. 나무는 알몸이다. 찬바람에 대비하여 화려했던 이파리를 다 털어내고 앙상한 가지만 남겨놓았다. 겨울나무에 찬바람이 불어오면 노래를 부르고, 엉거주춤 춤을 춘다. 바람이 스스로 지쳐 저만치 비켜간다. 겨울나무는 찬바람이 다녀간 흔적을 가슴에 나이테로 새겨 오래토록 기억한다.  비닐하우스 속에 숨어있는 분재도, 겨울바람과 씨름하고 나면 이듬해 싱싱한 이파리를 먼저 피워 올리고, 꽃향기는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현관 베린다에서 자란 분재는 주인의 지나친 관심으로 겨울잠도 못자니 이듬해 비실비실하는가 보다.   요즘 대부분의 가정마다 자녀가 하나씩이다. 지나친 보호가 자녀를 허약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면서도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본능적으로 애지중지하며 키운 것 같다. 대장간에서 단단히 두둘겨 맞은 쇠가 보검이 된다. 자녀양육도 봄과 가을에는 부드럽게 하다가 겨울에는 찬바람과 동행하면서 키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 집 막내아이가 허약한 정신을 가진 것 같아 아쉽다. 결혼하는 젊은이들을 본다.  그런데 혼수품을 챙기는 일이 지나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새 가정의 살림살이를 한꺼번에 모두 장만해가는 일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는 듯하여 아쉽다. 두 사람이 만나 살아가면서 살림 한두 가지는 직접 찬바람을 쏘여가며 장만하는 재미가 있을 법한데도 그렇지 않다. 여름철에 들판에서 땀을 흘린 자만이 수확의 의미를 알 수 있고, 높은 산에 오른 사람만이 멀리 바라볼 수 있다고 하였다. 주변 사람은 염두에도 없고 결혼 전 아파트도 장만해야 하고 세간살이 준비를 마치고 오로지 편하게 살 수 있을까만을 경쟁하는 듯하여 아쉽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찬바람이 불어오면 감기에 걸려 헤어나기 힘드나 보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났다." 는 이야기를 가끔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시골의 개천마저도 오염되어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가 없단다. 순수한 시골의 자연환경도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파헤쳐져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다행이 그 오염이 추운 겨울의 찬바람에 순화되어 말끔히 치워지는 것일까?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어와 다시 자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우리 인생도 겨울에는 찬바람에 단련되어 작은 고난이 닥쳐와도 잘 견디며, 때로는 이웃에 고마움을 돌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유년시절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4km가 넘는 거리를 걸으면서 학교까지 다녔던 친구들이 그립다. 찬바람이 불면 입언저리가 굳어져 웃지도 못하는 어설픈 모습이었지만, 그 시절의 친구들은 지금쯤 어떻게 지낼까 궁금하다. 토끼털 귀마개를 하고 장갑 낀 두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어도 차가움이 파고들었다. 등굣길에 들판에 쌓아둔 짚더미 밑에서 언 발을 녹이는 불을 지피다가 볏집을 때워버려 가슴을 조였던 일이 있었다.  우리 일행의 소행으로 밝혀질까 봐 지름길을 놔두고 다른 길로 돌아다니며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도 길거리에서 가끔 까만 재를 볼 때마다 그 당시 두려움이 되살아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들녘에 매서운 찬바람이 지나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솝우화에서 해와 힘겨루기를 한 바람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고 세차게 분다.  그러나 나그네는 찬바람이 세차게 불수록 옷깃을 꽉 붙잡는다. 나는 그 모습을 그려서 벽에 붙여놓고 싶다. 겨울에 찬바람이 있기에 저만치 서서 웃고 있는 포근한 봄이 더욱 기다려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