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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호랑이 할머니
2007.02.27 18:11
호랑이 할머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기) 이의
점심상을 차려 놓고 아리랑 고개 쪽을 바라보아도 여름 땡볕만 눈이 부실뿐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다른 식구들은 점심을 먹게 하고 마중을 나가기로 하였다. 신작로를 따라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땀이 나고 살갗이 따끔거려 밭까지 갈 일이 걱정이었다. 들에 나가실 때에는 왜 팔이 긴 옷을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시는지 새삼 깨달으며 부지런히 걸어 고개턱에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멈춰 섰다. 윗몸을 뒤로 제치고 옆으로 비스듬히 눕듯이 걷는 걸음이며,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오시는 모습이 할머니가 확실했다. 할머니의 허리는 평상시에는 90도로 꺾어져 있다. 꼬부리고 다니시다가도 필요에 의해 반대쪽으로 펴다 보니 조금은 부자연스런 걸음이 되어 버렸다.
내 나이가 70이 되면서 유독 할머니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많은 농사일이며 집안일을 하실 때 허리가 얼마나 아프셨을까? 밤이 되면 허리, 다리를 주무르라고 하시고 잠이 드신 것 같아 살며시 일어나면 ‘조금 더 주물러라’ 하고는 ‘끙 응’ 하며 돌아누우시곤 하였다. 내 허리도 디스크가 있어 서서 부엌일을 하다 보면 허리를 펴고 두두리곤 하는데 골다공증이었던 허리의 고통이 얼마나 크셨을까? 아픈 허리를 일으켜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궁이에 불을 때신다. 방바닥이 밤새 식어 손자가 추울까봐 염려하시는 마음은 따뜻한 아랫목을 더 파고들게 만들었다.
“할머니 바구니 주세요. 날씨가 너무 더워요.”
“무거운데 괜찮겠니. 집에 있지 안쿠.”
햇볕에 익어 검붉게 물든 깡마른 얼굴은 붉은 물감을 칠해 놓은 듯 보였다. 그 붉은 얼굴은 신념대로 행하시는 강인함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말씀을 하시며 누구보다 부지런히 열심히 일하며 사셨다. 술을 못 하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사시사철 간식을 마련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우리들은 그 덕에 입이 호사를 했던 듯싶다. 내 한 몸 돌보지 않고 가족을 위하여 헌신하시는 할머니가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되었다.
결혼하기 전 할머니에게 결혼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성격의 사람이 좋겠느냐는 질문에, ‘할아버지 같은 분은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고, 네 애비 같은 사람은 생활이 고달플 게다.’ 난 남자다운 아버지를 좋아했지만 결국은 할아버지 같은 사람을 선택했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흡사하다.’ 라는 격언이 있다. 한 번밖에 읽을 수 없는 책과 같이, 한 번 뿐인 인생을 정성을 다하여 살려고 하였지만, 잘 살았다고 큰 소리칠 만한 자신이 없다.
치아가 없으신 할머니의 웃는 모습은 아기 웃음같이 천진하기까지 하였다. 며느리가 틀니를 해드린다고 하면 한사코 거절하신다. ‘죽으면 썩어질 몸 돈 들일 것 없다’ 라고. 과일이라도 잡수시려면 반으로 잘라 숟가락으로 긁어야 드시면서도 돌아가실 때까지 잇몸으로 사셨는데, 그게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외아들에 따님이 세 분이나 있었지만 오로지 아들밖에 모르는 분이라고 고모님들이 불평을 하였지만 아들의 사랑은 손자 손녀에게 전해진 모양이다. 내가 유난히도 팥을 좋아하자 할머니는 밥을 지을 때 한쪽에 팥을 놓아 팥밥을 만들어 주시던 분이시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시골 가는 길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활환경보존 운동가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으신 분이다. 우리 동네에는 바가지로 물을 풀 수 있는 공동 샘물이 있는데 우물 파수꾼이 바로 할머니시다. 동네 아낙들은 보리쌀이나 야채를 씻으러 우물가로 온다. 편한대로 샘물 앞에 앉아 씻노라면 버린 물이 입구를 통해 식수를 오염 시킬 수도 있다. 이를 염려하시는 할머니는 수시로 점검에 나가신다. 샘 입구에서 일을 하다가도 호랑이 할머니 오신다는 기별을 받으면 허둥지둥 그릇을 들고 멀찍이 물러나 일들을 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은 우물청소를 하셨는데 울안에 우물을 파시고도 걱정을 놓지 못하셨다. 가믐이 든 해도 온 동네가 먹어도 부족함이 없던 차갑고 맑은 샘물은 위치만 짐작될 뿐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호랑이 할머니란 별명은 일정시대 말에 생겨난 별명이라고 한다. 일정말기의 횡포는 도를 넘어 사람들을 아사 직전까지 몰고 갔다고 한다, 놋쇠로 된 것은 밥 먹는 숟가락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쓸어 갔고, 농사를 지으면 모두 빼앗아 가버렸다. 1944년 가을 이해도 농사지은 쌀울 모두 공출하고난 뒤 어느 날 순경이 와서 감춘 것 내노라고 뒤지고 다니다가 싸라기 자루까지 들고 나왔다. 이를 본 할머니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있는데 마침 낫이 보여 빼들고 순경을 향해 ‘너 죽고 나 죽자’ 고함치며 달려들자 순경들이 혼비백산해 도망치며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란다. 시동생들도 형수님이라면 어려워하고 동네에서는 사모님으로 불리며 사셨다.
사람도 가고 세월이 흐르다 보니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을 뿐, 변해 가는 환경 속에 적응하지 못함은 마음까지 늙어 버린 내 탓인 듯싶다.
(2007.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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