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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어느덧 결혼 50년

2007.03.02 11:16

김영옥 조회 수:76 추천:8

어느새 결혼 50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금) 김영옥 결혼 50주년을 금혼(金婚)이라 한다. 금혼식은 자녀들이 해주는 거란 말을 들었는지 아들내외가 자리를 마련해 축하를 하겠단다. 말이 고마워서 둘째딸이 미국에서 돌아오면 내년에 하자고 미뤘다. 결혼 후 기념일이라고 한 번 들먹이지도 못했는데 50년 세월이 훌쩍 흘렀다.    되돌아보니 반세기의 세월이 길고도 짧게 주마등처럼 휙휙 지나갔다. 1956년 12월13일 (음.11월12일) 내 나이 21세에 27세의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서 왕비가 되는 꿈을 안고 시집을 왔다. 결혼한 그 날부터 무서운 굴레가 나에게 씌워졌다. 신랑을 극진히 사모하고 눈치를 살피며 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나의 미약한 능력이지만 온정신을 쏟아 해야만 마음이 편했다. 그야말로 충직한 일급 종이라 함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 세대의 여인들은 시집살이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하였다.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란 노래가 우리 여자들의 일생을 바로 대변해주지 않던가. 많은 시집살이 중에도 남편 시집살이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해야 한다. 이런 여자들의 마음을 세상 남편들이 알기나 할는지…….   내 남편은 내가 모든 면에서 달인이길 바라며,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일도 헝클어진 실타래 풀듯이 척척 풀어나가는 해결사로 여긴다. 온갖 화풀이를 해도 마음이 넓은 바다 같이 다 받아 안아주길 바란다. 가끔 난 남편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생활 속에서 남편의 존재가 떠나지 않으니 말이다. 나는 속이 숯검정이 되어도 한마디 하소연할 틈을 갖지 못하고 젊은 세월을 다 보냈다. 그러다 보니 배꽃 같던 얼굴은 호박꽃이 되고, 삼단 같던 머리카락은 억새가 되어 거울도 안보는 여자가 되었다.  바스러져 가는 몸은 앉고 설 때마다 '아이고'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것이 여자의 일생이던가.    이 충직한 종은 50년을 맡은 일에 투정도 꾀부림도 책임전가도 없이 바보처럼 살아야만 했다. 때로는 못난 내 자신을 원망하며 밤을 새워 머리가 빠지도록 궁리를 했다. 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날이 새면 어둠과 함께 공상은 사라지고 아침 일찍 부엌으로 나갔다. 내 자신보다 주위의 모든 사람을 더 사랑했기에 그랬던 것 아닌가 여기며 참고 살아온 내 자신에게 훈장이라도 주고 싶다. 나의 자녀들에게 행복한 삶을 물려주려고 굳게 다짐하며 무던히도 참고 바쁘게 뛰었다. 이 바보는 자투리 같은 인생을 살면서도 가슴속에 늘 행복의 꿈만은 잃지 않았다.  지금은 더없이 행복하다. 모두에게 감사하다.   이제, 내면 깊숙이 행복의 파랑새가 찾아와 속삭인다. 그대 수고했노라고. 순금이 되려면 많은 정련을 거처야 되고, 연장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도 고도의 불에 달궈 수없이 두드려야 좋은 연장이 된다. 우리 인간도 온갖 역경과 시련을 겪어야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리라. 요즘 툭하면 이혼들을 잘한다. 이혼을 해도 괴로움은 따라 다닐 것이다. 가정의 창시자인 여호와 하나님이 결혼하는 부부에게, 성품이 다른 사람끼리 맺어주는 것은 모자람을 서로가 채워주며 참고 살아가라는 마련이 아닐까?   처음 만난 부부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생각하고 이해하며 끝까지 참고 살다보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우리 모두 믿어보자. 이제 얼마를 더 살지 모르지만 생을 다할 때까지 남편을 기쁘게 해주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그것이 바로 나의 행복이니까.                               (2007.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