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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정월대보름 놀이를 회상하며
2007.03.06 16:43
정월대보름 놀이를 회상하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중) 박정순
교회에서 오전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는데 정월대보름날이라며 찰밥과 함께 들깨국물로 만든 무나물이 나왔다. 찰지고 쫀득한 찰밥과 무나물을 먹으면서 저마다 정월대보름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였다. 사람들의 추억담을 들으면서 나도 잊고 살았던 어린시절 정월 대보름날을 떠올렸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적당한 놀이가 없어 심심하던 어린시절, 찰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연날리기와 달집태우기를 할 수 있는 정월대보름은 가장 기다리는 명절이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설날부터 정월대보름까지 일손을 놓고 풍물놀이나 화투놀이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정월대보름을 좋아했었다.
어른들은 나무하는 일과 가마니 짜는 일, 멍석이나 망태기 만드는 일을 중단하고 보름동안 거의 쉬었던 이유는 정월대보름이 지나면서 시작되는 농사철을 준비하기 위한 휴식이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다가도 정월 대보름 전날이 되면 아침 일찍 지게를 지고 마을 근처 산을 지나 깊은 골짜기로 싸리나무를 하러 갔다. 싸리나무로 찰밥을 지으면 밥이 맛있다는 말에 따라 찰밥을 지을 때 쓸 싸리나무를 하기위해 깊은 산속으로 갔던 것이다. 평야지대 사람들은 주변에 산이 없어 먼 산에서 검불을 해 오는데도 하루가 걸렸다지만 내가 자란 진안은 온통 산이었기 때문에 땔감이 풍성했다. 그래서 일반 나무들보다 화력이 좋은 싸리나무로 정월대보름 찰밥을 지으려고 했던 것이다. 아궁이에서 싸리나무가 ‘타닥’ 소리를 내며 푸른색의 불길을 발산하는 것을 보면 다른 나무가 탈 때보다 강한 화력과 함께 신비감이 느껴졌다.
정월대보름 전날에는 찰밥만 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 자기 집안의 특징적인 음식을 만드느라 작은 산골마을 이집 저집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우리 집에서는 찰밥을 찔 때 시루에다 팥과 찹쌀을 몇 채 올린다음 떡을 찔 때처럼 쪘는데 찹쌀의 쫀득함과 통팥의 달콤함 때문에 늘 과식을 했다. 거기에 무나물․고사리․고구마대․ 토란대․피마자 잎 등 나물을 얹어 먹으면 어린 마음에도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정월대보름 전날에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연 날리기나 썰매타기를 하면서 달집 만들 장소를 선택하는데 대부분은 산에서 멀리 떨어져 주변으로 불이 옮겨 붙을 염려가 없는 논을 정월대보름날 달집 만드는 장소로 정했다.
전날부터 미리 달집을 만들 장소를 물색해 놓지 않으면 우리보다 위 또래들이 자리를 잡기 때문에 먼저 장소를 선택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전날 장소를 잡아놓고 보름날 아침이 되면 각자 집에서 찰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운 다음 연 날리기를 하거나 썰매를 탔다. 그러다가 점심때 가까이 되면 각자 소쿠리를 하나씩 들고 Ep를 지어 집집마다 찰밥을 얻으러 다녔다. 아이들이 분장을 하고 각설이타령을 부르면서 찰밥을 얻으러 다니면 어른들이 찰밥과 나물을 후하게 주면서 덕담을 했다. 찰밥을 얻어다 한곳에 모아놓은 다음 낫을 들고 뒷동산으로 올라가 소나무 가지를 치고 나무를 잘라 전날 달집 만들 장소를 정한 곳으로 가서 달집을 만들었다.
먼저 굵고 긴 통나무 대여섯 개의 끝을 묶어 아래쪽을 넓게 위쪽을 좁게 피라미드식으로 새웠다. 그런 다음 그 안에 검불을 넣고 그 위에 마른 삭정이를 놓고 그 위쪽에는 생나무를 차곡차곡 쌓은 다음 겉에는 뒷동산에서 잘라온 소나무 가지를 거꾸로 해서 촘촘히 쌓아올린다. 아래쪽에 세군데 불붙이는 구멍만 남겨 놓고 피라미드 모양으로 3미터 이상 쌓아 올린다음 처음 불붙이기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호롱불을 밝히던 귀한 석유기름도 준비를 했다. 방의 난방은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서 해결하고 어둠을 밝히는 데는 호롱불에 의지하던 시절이어서 석유가 무척이나 귀했지만 처음 불을 붙여서 잘 붙지 않으면 달집태우기는 실패하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했던 것이다.
달집태우기가 잘되면 한 해 동안 재수가 있고 복이 있지만 달집태우기를 실패하면 한 해 동안 신수가 사납다는 속설 때문에 달집태우기에 갖은 정성을 다했다. 그래서 달집을 만들 나무를 할 때나 달집을 만들 때 서로가 입 조심을 했다. 누군가 부정적인 소리를 하게 되면 나중에 달집태우기가 잘 되지 않았을 때 모든 원망을 들어야 하고 1년 동안 죄인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달집태우기가 성공하면 별문제 없지만 실패하면 그 원인을 찾게 되고 누군가가 나무를 할 때나 달집을 만들 때 재수 없는 말이나 행동을 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모든 원망이 자기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했던 것이다. 달집이 완성되면 몇몇 아이가 달집을 지키고 나머지 아이들은 낮에 얻어다 놓은 찰밥이며 나물들을 가지러 집으로 갔다. 달집을 지키는 이유는 이웃동네 아이들이 와서 몰래 달집에 불을 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었다.
정월대보름날 저녁,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면 산골 아이들의 꿈과 소망과 염원을 담은 달집태우기가 시작되는데 불을 붙이고 나서 몇 분 동안이 매우 중요했다. 처음 시작하는 불이 힘차게 타오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들 긴장하고 불쏘시개를 준비하고 있었다. 달집 안에서 시작된 불길이 바깥쪽에 쌓인 생 솔가지를 태우고 연기를 내뿜으며 타오르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성공을 확신했다. 그리고 세상을 전부 삼켜 버릴 것 같은 공포와 전율을 동반한 엄청난 불길이 정월대보름 달을 향해 치솟으면 아이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빌었다. 그 시절 나는 어떤 소망을 빌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아마 일년 내내 오늘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을 것 같다.
도시에서는 깡통을 돌리는 것을 망월이 돌리기라고 하지만 산골에서는 깡통을 구경할 수가 없어 돌리지 못하고 달집태우기를 하면서 불이 절정에 이르면 다같이 입을 모아
“망월이야!”
하고 외쳤다. 불길이 절정을 지나 스러지고 빨간 불덩이가 남게 되면 낮에 얻어다 놓은 찰밥과 나물을 나누어 먹으면서 그해의 달집태우기를 총 결산했다. 작년보다 불길이 높았다거나, 어떤 점을 보완하여 내년에는 더 잘해야 된다든지, 이번 달집태우기의 일등 공신은 누구라는 식의 자체평가를 하면서 달집태우기 놀이를 마무리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엄청난 화력으로 달집을 태우던 불기둥을 생각하면 세상을 전부 삼켜 버릴 것 같은 공포감과 그 큰 불기둥을 만들었다는 환희가 교차하면서 정신이 몽롱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린시절에 손꼽아 기다리던 큰 명절, 정월대보름이 지금은 찰밥과 무나물이 밥상에 올려진 다음에야 기억하니 내가 그 시절에서 너무 멀리에 와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달집을 태우며 배불리 먹기를 소원하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건강을 위하여 적게 먹으려고 애쓰고 있으니 세월이 참 많이도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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