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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수염
2007.03.06 23:19
수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기) 이수홍
우리 집 안방에는 사진 액자가 여러 개가 있다. 큰 것은 벽에 걸려있고 작은 것은 문갑 위에 놓여있다. 그중에 제일 오래된 사진에 내 관심이 쏠린다. 지금부터 53년 전에 촬영한 사진이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일곱 살 때 셋째 형님의 일본 해군 입대기념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한 장, 우리 9남매가 따로 한 장 촬영한 사진이다. 아버지는 당시 56세이셨는데 코밑수염을 보기 좋게 기르셨다. 나는 그 사진을 보며 참으로 내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저렇게 수염을 기르면 더 닮아 보일거란 생각은 언젠가 나도 수염을 한 번 길러 봐야지 생각을 갖게 했다.
지난 2월 16일 설 연휴를 맞아 아들집으로 명절을 쇠러 갔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고 문밖 출입할 일도 없었다. 이때다 하고 면도를 하지 않고 수염을 한 번 길러보았다. 3일이 되니 제법 표가 나기 시작했다. 아버지 수염은 새까만데 내 수염은 희뜩희뜩했다. 아버지는 코밑수염만 길렀는데 나는 턱 밑까지 길렀더니 아버지와 전혀 닮아 보이지 않았다. 수염을 기른 이유가 아버지와 얼마나 닮았는가 보려는 것이었는데 누가 보고 어떤 반응이 나오는 가로 수정되고 말았다. 내가 보기에도 꺼칠하게 보일뿐 별 멋은 없었다.
제일 먼저 민감한 반응을 보인 사람은 막내아들이었다. 그 애가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전에 대학 다닐 때 수염을 길러 내가 못 기르게 했었는데 말을 듣지 않아 내가 큰소리를 치며 화를 냈던 일이 있어서일 게다. 그때 나는 막내를 이기지 못했었다. 막내는 내 수염을 보고 아주 멋있다며 컨셉을 바꾸기 위해서 더 많이 길러 보라고 했다. 일단 성공이다 싶었다.
20일 국악원에 갔을 때 선생님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어! 왜 수염을 길렀어요?”
아무 대답을 안했지만 내심 흐뭇했다. 왜냐고 또 물었다. 나는 ‘퀴즈로 하지요.’라며 맞히면 사례를 하겠다고 했다. 수업 시간이 끝나고 원생 한 사람이
“선생님 참 멋지네요! 머리도 길러서 뒤를 매세요.”
라고 해서 알았다고 대답하고 빙긋이 웃으며 속으로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했다.
다음날 수필창작 강의실에 갔다. 옆에 앉은 회원이 살짝 웃을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여기서는 실패로구나 생각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는 차내에서 막내회원이
“선생님! 왜 면도를 안 하셨어요?”
라고 물었다. 나는 드디어 효과가 나타나는가보다 생각하며 알아맞히면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외박 하셨어요? 모텔 말고 상가(喪家)같은데서 말이에요.”
또 한 회원은
“섹시하게 보이려고 길렀죠?”
라고 했다.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감독이 수염을 길러달라고 주문을 해서 길렀다.”
고 너스레를 떨었다. 다른 한 사람이
“아! 그래요?”
라고 곧이들었다. 섹시 얘기를 했던 회원이
“그 말을 믿어요?”
라고 하니 그 믿었던 회원 왈,
“회장님 인물이 워낙에 출중해서 진짜인줄 알았지.”
라고 했다. 나는 크게 웃으면서 대 성공이었다고 생각했다. 대면한 사람의 모습에 관심을 가진 다는 것이 처세상 좋은 것임을 느꼈다.
옛날 사람들은 점잖게 보이려고 또는 위엄 있게 보이려고 수염을 길렀지 싶다. 그래서 그런지 노인들만 길렀다. 그런데 지금은 노인들은 오히려 기르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기른다. 연예인, 예술가, 스포츠맨들이 많이 기른다. 결국 관심을 끌려고 기른 것이다. 심지어 염색까지 하는 것은 자기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길러야할 하등의 이유나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2월24일 서울 간다고, 3월 4일 주례를 선다는 핑계로 일주일간 길렀던 수염을 깎고 말았다. 수염을 기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면도 하는 것이 꾸미는 것이란 생각도 해보았다. 12년 전 10여 일간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면도를 했었는데 1주일간 수염을 길러보기는 처음이었다. 막상 길러보니 재미가 있고 시간도 절약 되었으니 언젠가 다시 길러봐야지 싶다.
[2007.3.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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