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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판소리를 배우면서
2007.03.10 11:59
판소리를 배우면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야) 황 만 택
나는 우리 전통음악 판소리를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아직 판소리의 그 심오한 맛과 멋은 잘 모른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길을 가다가도 감칠맛 나는 판소리가 들려오면 살며시 발걸음이 멈추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도 언제 한 번 저 감칠맛 나는 판소리를 배워 볼 수 없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명 고수(鼓手)가 치는 북장단에 맞추어 옛날 그 시대 사람들처럼 춘향가든, 심청가든, 육자배기든 판소리 한 판을 멋지게 불러 봤으면 하는 꿈이 항상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일 뿐 내 바쁜 일상 속에서 판소리를 배운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장과 가정에 얽매이다 보니 배울 수 있는 시간은 늘 부족했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나는 여름철 해가 질 무렵이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판소리에 마음이 무척 서글퍼 질 때가 있었다. 모심기를 거의 다 끝낸 농부들이 일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술 한 잔을 마시고 흥에 겨운 나머지 농민들의 한이 담긴 육자배기나 농부가(農夫歌)를 부른다. 넓은 들녘에서 한(恨)이 섞이고 울음을 담은 듯한 소리로 한 사람이 메김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이를 받아 불렀다.
“♪서마지기 논배미가 반달만큼 남았네. 네가 무슨 반달이냐 초생 달이 반달이지.♪”
이처럼 한스럽고 서정적인 민요나 판소리가 한가한 농촌 들녘에 황혼 빛 노을처럼 퍼지면 가난하게 살던 우리 농민들의 삶과 애환(哀歡)이 그대로 배겨 나오는 듯, 듣는 이의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 어찌 순진한 농부들의 노래가 아니겠는가.
또한 부잣집 김매기를 할 때면 농부들은 풍년을 기약한 듯 일을 마치면 그 집 머슴 얼굴에다 숯검정을 칠하고 너른 앞마당으로 들어가 덩실 덩실 춤을 추면서 주인마님의 술 한 잔을 더 얻어 마시고 흥겹게 놀면서 그날 일을 마무리 한다. 그 옛날 이러한 풍습들 생각하면 참으로 순박하고 인심(人心)이 후덕한 세상이 아니었는지…….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했던가! 이제는 나도 판소리를 배울 날이 다가 온 모양이다. 평생 다닐 것 같았던 직장에서 정년퇴직하고 일년 남짓 시간을 보낸 뒤, 나이 들어 직업훈련학교에 다니면서 조경기능사 자격증도 얻고, 다시 힘차게 떠오르는 2007년 새해를 맞았다. 또 한 해의 새로운 계획을 세우면서 이제 그렇게 좋아하는 판소리를 배워 보기로 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될까봐 얼른 전북도립국악원에 등록을 했다. 첫날은 원생 모두가 자기소개를 한 다음, 선생님은 먼저 인쇄된 판소리 '사철가' 한 장씩을 나눠 주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서양 음악은 누구나 악보를 보고 배울 수 있지만 우리 전통음악인 판소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입으로 부르고 입으로 배워서 그대로 후세에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을 갖고 앉는 자세나 '북'을 손으로 치는 법부터 친절히 가르쳐 주고, 중모리 12박을 천천히 연습시킨 다음 '사철가'를 선생님이 선창(先唱)하면서 우리에게 따라 부르라 했다. 처음엔 모든 게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며칠을 다니면서 무조건 따라 부르니 이제는 흉내라도 조금 낼 수 있게 되었다.
"♪이산 저산 꽃이 피면 산림 풍경 넓은 들……♪"
하면서 따라 부르는 것이다. 허나 인생의 한과 애절한 뜻이 담긴 그 판소리의 의미(意味)를 내 어찌 제대로 알 수 있으랴!
내 나이 어렸을 적에 목욕탕에 가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탕 안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무언가를 흥얼거리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그냥 어른들이라 그러려니 생각했었는데 그 어르신들이 아마도 지금의 나처럼 판소리나 시조창을 중얼거리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일전에는 목욕탕 안에서 내가 눈을 지그시 감고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만약 젊은 사람들이 그런 내 모습을 보았다면 그들도 옛날 나처럼 똑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제 직장에서도 벗어났고, 부르고 싶었던 그 판소리도 배우게 되었다. 또 올해는 내 나이 환갑(環甲)의 해다. 가는 세월을 어찌 잡을 수 있으랴만 그래도 마음은 항상 기쁘다. 이제 한 가지 작은 꿈이 있다면 그 심오한 판소리를 열심히 배워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친구들 앞에서 쥘 부채를 쥐었다 폈다 하면서 우리 전통음악인 쑥대머리와 춘향가, 심청가 한 대목을 감칠맛 나게 부르면서,
"내 술 한 잔 더 먹소. 네 술 한 잔 더 먹소."
하는 감동적(感動的)인 소리를 멋지게 한 번 불러 보고 싶다. 그때가 언제쯤일지는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기쁘기 한량없다. 이제 그 작은 내 소망이 꿈만이 아니기를 기대해 본다. (2007.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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