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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멍멍이 할아버지
2007.03.30 15:54
멍멍이 할아버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야) 박 주 호
고향에는 사촌 형님 한 분이 살고 계신다. 칠순이 몇 년 전에 지났으니 할아버지라 불러도 크게 망발은 아니다. 외손자까지 합쳐 손자 여섯을 두셨으니 다복하신 분이다. 자식들 뒷바라지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농사일이며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머리에 염색만 하면 육십대 초반으로 보인다. 경운기를 몰고 다닐 때는 청년이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비록 옛날 그대로 낡은 한옥에서 살지만, 부엌을 입식으로 바꾸고 분합(分閤)을 달아 한결 편리해지긴 했다. 기름 보일러를 설치하여 훈훈한 실내공기가 푸근함을 더해준다.
일산 사는 작은 아들이 얼마 전에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고 한다. 일상적으로 며느리는 의논할 일이 있으면 시어머니에게 전화하기 마련인데, 시아버지한테도 안부전화를 곧잘 하는 괜찮은 며느리라고 자랑한다. 그럴라치면 어린 손자가 보고 싶어 말도 잘 못하는 놈과 전화에 대고 자기 소개를 해야 한단다.
"멍멍이 할애비다."
라고.
"멍멍이 할애비? 왜 멍멍이 할애비가 되셨습니까? 친할아버지도 아니고 그냥 할아버지라고 해도 될 일인데 멍멍이 할애비가 뭡니까."
나는 다소 의아스러워 물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손자를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없는 것이 요즘 풍습이다. 자식이 결혼을 하면 출가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 부모와 함께 사는 세대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둘째 아들이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손자도 친할아버지를 보기가 쉽지 않은 탓에 호칭을 하는데 혼동이 올 수 밖에 없다. 가까이 살면서 자주 가는 외가의 할아버지는 외字를 붙이지 않고 부르니, 멀리 사는 친가 할아버지를 뭐라 부를 것인가. 방법은 친할아버지를 상징하는 뭔가가 있어야 했다. 광주(廣州)에 사니 광주할아버지라든가 아니면 시골 할아버지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멍멍이 할아버지냐 그 말이다.
형님 집에는 개가 많다. 모처럼 그 집에 갈라치면 개짖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는 개를 좋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나만 보면 개가 더 극성스럽게 짖어댄다. 그날도 난리 법석을 하고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아무튼 형님의 상징은 당연히 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손자가 기억되는 것은 개일 것이고 그리하여 멍멍이 할애비가 된 것이다. 그래도 친할아버지를 멍멍이 할애비라 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아니 애들이 어떻게 가르치기에 그러느냐고 했다. 친(親)과 외(外)를 사용하면 되는 일이거늘, 이건 순전히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핏대를 올리려다 보니 나도 그리 잘하는 것이 없기에 꼬리를 슬그머니 내리고 말았다.
나에게도 돌이 갓 지난 손자가 있다. 누가 자식보다 더 귀엽고 예쁜 것이 손자라 했던가. 점점 커갈수록 자꾸만 보고 싶어지고 눈에 밟혀 그 녀석을 보러 가고픈 생각이 들 때가 많지만 쉽지가 않다. 지난주에는 큰 맘 먹고 아들집에 들렀다. 오직 손자가 보고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이놈이 할애비인 내게 전혀 눈길조차 주지 않을뿐더러 어쩌다 마주치면 울고불고 난리였다. 아니 아주 무서운 괴물을 보듯 하고 자지러지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내가 생각을 해봐도 내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니고, 게다가 굴뚝 청소부처럼 시커멓게 생겼으니 누가 보아도 친근감이 가는 얼굴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랜만에 만난 할애비를 무슨 괴물 취급을 해대니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자주 못 본 탓도 있지만,평소에 사람구경을 많이 못해 낯설기도 할 것이다. 외가가 가까워 외할아버지와는 무척 친하게 지내는 모양인데 이 친할애비는 도대체 접근도 할 수 없다니 딱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녀석 탓으로만 돌릴 일도 아니려니 싶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사회구조와 시대흐름인 것을, 옛날처럼 3~4대가 한 집에 살던 시대는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아직은 젊은 나이이니 아들과 같이 살 일도 아니려니 싶다. 아무리 손자가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아들집을 마냥 드나들 수도 없는 일이다. 이제 우리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감당할 것은 감당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내 인생과 아들 인생이 같을 수는 없다. 더욱이 손자야 더 말해서 뭐하겠는가. 그들이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멍멍이 할애비든 친할아버지든 그것이 아주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랑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을 터이니 말이다. 지금은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에 벽이 있을지언정 세월이 가면 나와 손자 사이에 혈육의 사랑이 깊어지려니 기대한다. 그래야 피는 물보다 짙다고 할 수 있을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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