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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하늘 아래 천사들

2007.05.24 07:13

오명순 조회 수:86 추천:8

하늘 아래 천사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 오명순 눈부신 5월의 햇살이 바람을 타고 내려와 산야에 초록의 융단을 깔아 놓는다. 아카시 향기가 우리를 유혹하던 봄날, 우리는 천사들의 나라 완주군 소양면 예수재활원에 도착했다. 재활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느 때처럼 가장 먼저 향기로운(?) 냄새와 몸이 온전치 못한 천사들의 웃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고, 움직이는 것이 그저 제자리만 빙빙 도는 아이들, 알아들을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자기의 존재를 끊임없이 알리려는 몸부림 등 TV화면에서나 보았던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들의 설움이 내게 전해져 가슴이 아리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그들, 사람이 그리워서 만나고 헤어질 때 헤어지기 싫어서 그들은 소리 내어 울음을 터트리고, 우리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여러 번 다시 들어가 안아준 적도 있다. 그들보다 더 많이 가졌고, 더 많이 누리고 살면서도 불평만 했던 내가 그들 앞에서는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었다.    무슨 이유로 그들은 그런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그리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그곳까지 와서 원장 목사님을 엄마라 부르며 그렇게 생명의 끈을 이어가고 있을까. 그들은 서로 가지려고 싸우지도 않으며 남의 것을 탐내지도 않고 서로 잘났다고 나서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도 않는다. 계절이 바뀐들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꽃이 피어 향기 나는 봄이 오거나 단풍 끝에 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희어진다 해도 그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우리 교회에서 그 곳을 선정하여 봉사하기로 결정했을 때 선뜻 가겠다고 따라 나서지 못했다. 장애인들이 있는 곳이라서 그 곳에 가면 하늘나라에 간 딸이 보고 싶을까봐 두려워서였다. 생사를 넘나들기 5년, 그리고 마지막 2년 동안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서 경관(코줄)미음을 먹고 목에 구멍을 뚫어 숨을 쉬며 고통스럽게 살다 간 딸이었다. 꿈속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딸이 그리워 결국 그 곳으로 딸을 찾아 나선 첫날, 흐르는 눈물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 곳에 가면 나는 울지 않는다. 그들이 내 딸이고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의 손길을 느끼며 기뻐하고 웃어 줄 때 나는 정말 행복했다. 오늘은 주은이가 보이지 않아서 많이 놀랐지만 감기로 병원에 갔다는 말을 듣고 빨리 나아서 돌아오라고 기도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던가. 이전에 이곳 식구 중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이별연습도 없이 하늘나라로 떠난 아이들이 가끔 있었기 때문에 안 보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감기라 해도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면역이 약해서 전염이 잘 되므로 격리시키기 위해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 또 실제로 폐렴으로 사망하는 일도 많다고 했다. 주은이 대신 유리에게 밥을 먹이고 마침 대변을 누었기에 목욕까지 시켜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잘 웃는 유리가 입이 함박만 해지고 큰 소리로 웃으며 좋아해서 너무나 사랑스러워 품에 꼬옥 안아 주었다. 말을 하지 못해도 서투른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팔다리가 굳어져서 펴지지 않아 옷을 입히고 나면 나의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지만 아이가 좋아하니 내 마음은 더 기뻤다. 나에게는 천사가 하나 더 있다. 한국복지재단의 소개로 14년 인연을 맺은 아이인데 그 아이와의 만남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축복이다. 그 아이의 나이 6살 때 우리는 처음 만났다. 그 때 나는 남원에 살고 있었고 그 애는 전주 평화동 선덕보육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매월 후원금을 보내면서 가끔 선물도 챙겨 보내고 일년에 두 번 만나서 하루를 보냈었다. 또 보고 싶으면 보육원으로 찾아가 만나곤 했었다. 실내 행사장에서 만날 때는 평안하게 내 품에서 잠든 아이를 보며 엄마 품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하는 안쓰러움에 더 많이 해 줄 수 없어 안타깝기만 했다. 이제 그 애는 다 자라서 대학 졸업반이다. 보건행정을 공부하는 그 아이는 홀로서기를 훌륭하게 잘 해내고 있어 나의 도움을 더 필요로 하지 않은 것 같아 서운할 때도 있지만 맑고 밝게 자란 그 아이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앞에서 ‘재활원봉사’라고 했던 말을 정정하고 싶다. 우리가 그 곳에 가서 하는 작은 일들은 그 곳에서 머물며 그들을 돌보는 분들에 비하면 너무 그저 부끄럽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짧은 시간 그 곳에 다녀온다. 그렇지만 그 많은 자녀들을 안고 돌보며 기도하시는 원장님은 그 나라의 대장천사이고, 그곳 모든 식구들 또한 천사들이며, 그곳은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이 있는 하늘 아래 천사 나라가 분명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사랑을 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으러 간다. 그들이 그런 모습으로 이 땅에서 생명의 끈을 붙잡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려는 모습인 것 같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한 그들의 영혼은 또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걸까?                                                                    (2007. 5. 13.) 재활원에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