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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유럽 견문기(2)

2007.05.26 07:29

김호택 조회 수:72 추천:8

유럽 견문기(2) - 프랑스에서 -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중) 김호택 프랑스는 영국과의 백년전쟁(1338~1453) 등을 겪으면서 르네상스를 맞이하였다. 안으로는 절대군주제의 확립, 밖으로는 해외 영토의 확장  등 17~18C에 걸쳐서 루이14세, 16세의 치세 때에는 그 전성기를 이루었다. 프랑스는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몽블랑의 눈 덮인 산들, 베르사유 궁전, 에펠탑, 개선문, 거기에다 패션과 요리 등 수많은 자원을 지닌 나라이다. 인구는 약 6,200만 명인데 면적은 54만 7천㎢로서 우리 한반도의 2.5배이다. 예술과 낭만이 넘치고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며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밀집되어 연중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바로 프랑스다. 우리나라의 고속철도 KTX가 바로 프랑스의 ‘떼제베(TGV)’를 모델로 한 것이다. 더불어 과학기술과 스포츠의 강국으로서도 위상을 높이고 있다. 기후는 대서양 연안은 해양성, 알프스지방은 겨울이 긴 대륙성, 마르세유 등은 온난한 지중해성 날씨다. 150년 전 도시계획을 할 때 상․하수도, 전기, 통신을 지중화 하여 ‘파리’는 하수도가 제일 잘된 도시로 알려졌다. 대로변 인도에는 공중전화박스(BOX)같은 유료화장실이 있다. 요금을 40센트 동전투입구에 넣은 다음 문을 열고 들어가 볼일을 3분 이내에 봐야한다. 만약에 3분이 넘으면 문이 ‘확’ 열린다. 혹시 마약사범, 성범죄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청소는 자동으로 하수도로 연결하여 처리한다고 한다. 세계에서 ‘예약’문화가 처음으로 시행된 나라 역시 프랑스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예금인출, 병원의 진료 등 대부분의 일상생활에서 예약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한다. 또한 ‘팁’문화 역시 발달하여 커피 한 잔(1.5~3유로)을 마셔도 20센트 정도의 팁을 주는 것이 예의라고 하였다. 만일 우리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250원 정도의 팁을 준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파리 서남쪽 23㎞에 있는 절대왕권의 상징이며 초호화 궁전인 ‘베르사유궁전’과 조형미의 극치를 이루는 정원은 “짐은 국가다!” 라고 한 루이14세가 20년에 걸쳐 세운 대궁전이다. 이후 루이16세와 왕비 마리앙트와네트가 호사를 누리다가 프랑스대혁명으로 비운을 맞은 곳이기도 하다. 대접견실은 길이75m, 높이12m의 넓은 방을 17개의 벽면으로 나누어 578개의 거울로 장식하였다. 그 유명한 ‘거울의 방’은 궁정축제와 중요한 행사 등 리셉션 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왕과 왕비의 공적인 생활주거공간으로 분리되어 사치와 향락생활이 극에 달하였고, 왕궁의 면적은 2만 평, 정원은 250만 평이란다. 또한 ‘그랑자빠르뜨망(GRANDS APPARTEMENTS)’은 이탈리아 바로크양식으로 금장식을 한 구리, 청동, 대리석 등 고급스런 재료들을 주로 사용하였다. 화려한 ‘천정화’가 유명한 이곳에서 1주일에 세 번씩 사치스런 파티가 열렸다고 한다. 나는 ‘천정화’ 중심 아래서 “권불(權不)10년이요, 교불(驕不) 3년이다.” 는 명언이 생각났다. 절대 권력은 망한다는 속담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몽마르뜨(Montmartre)’언덕은 종교적 의미를 띄면서도 이곳에서 시대에 따른 미술사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역사, 그 문화, 예술적인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나는 오래된 파리의 전형적인 골목길을 거닐다보니 언덕 위의 비탈진 잔디밭에서 젊은이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그림을 그리는 무명화가,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 몸에 페인팅을 한 행위예술인등이 있었다. 정상의 비잔틴양식으로 만들어진 ‘성심성당(샤크레 쾨르사원)’앞에서 고전적인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반면에 이러한 예술적인 모습의 지역이 밤에는 환락가로 변하여 여성이 혼자 걷기에도 불안할 정도라고 하니 놀라운 일이었다.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Tour Eiffel)’은 프랑스혁명 100주년인 1889년 ‘구스타프 에펠’이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세운 탑으로 높이가 320.75m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1전망대 57m지점, 제2전망대 115m지점을 거쳐 제3전망대 300m에서는 ‘파리’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에펠탑 옆에는 파리의 젖줄이자 낭만의 도시를 만드는 ‘세느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세느강은 길이가 780㎞에 다리가 38개나 된다고 했다. 강변로를 달려 시청을 지나니 녹지화단에 ‘한반도 돌 조형물’이 있어서 나의 눈길을 끌었다. 파리 시내를 관통하는 세느강은 좌․우로 펼쳐진 고풍스런 건물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냈다. 나는 유람선을 타고 강변에 있는 700년 된 시청, 1,200년 된 대법원, 1804년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거행된 노트르담성당, 세느강의 다리 등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몇 백 년 된 예술적인 견고한 건축물들을 바라보면서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또한 세느강변의 청춘남녀들이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진한 사랑을 나누는 풍경을 보노라니 문화의 차이라지만 낯이 설었다. ‘샹제리제 거리(Avenue des Champs-Elysees)’는 파리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길이 2㎞의 대로다. ‘개선문’을 기준으로 뻗어 있는 12개의 방사형 길 중 정면으로 뚫린 가장 긴 거리였다. 양쪽에 이름난 상점, 식당, 영화관 등이 즐비하며 화려한 거리의 노천카페가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 프랑스 역사상 영광의 상징인 ‘개선문’은 지름240m의 원형광장에 높이 50m의 건축물로 1806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착공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개선문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여 1840년 그의 유해만이 그 밑을 통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루브르박물관(Musee du Louvre)’은 중세의 ‘성(城)’에서 프랑스의 역대 왕궁으로 사용하다 지금은 미술관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루브르박물관에는 지중해연안의 고대문명에서 서양의 중세시대 전기까지를 지나서, 19세기 전반까지의 작품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등 헤아릴 수 없는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모나리자’는 나에게 ‘먼 길에서 오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느냐?’고 방긋 웃으며 인사하는 것 같았다. 파리의 ‘리용역’에서 점심도시락을 수령하여 떼제베(TGV) 초고속열차에 탑승, 4시간여를 달려 ‘스위스’의 국경 열차객실에서 간단한 여권검사만 받고 ‘로잔역’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