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진 서재 DB

자유참여 광장

| 박봉진의 창작실 | 초대작가글 | 자유참여 광장 | 작가갤러리 | 공지사항 |
| 함께웃어요 | 프래쉬와 음악방 | 사진과 그림방 | 음악동영상방 |

<font color=blue>박하사탕 한 알/최정순

2007.09.04 07:35

최정순 조회 수:90 추천:3

박하사탕 한 알 -지리산에 오르다(1)-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최정순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현기증을 일으킨 짝꿍 탓이랄까, 일행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현기증을 가라앉히느라 허리띠를 풀고, 몸을 헐렁하게 하여 심호흡을 하게하니 몸이 차츰 회복되었다. 짝꿍이 내 얼굴을 뻔히 바라보더니, “가고 싶지?” 하고 모기소리만 하게 물었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내 걱정 말고 빨리 가면 일행과 합류할 수 있을 거라 했다. 짝꿍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산토끼마냥 깡충거리며 뛰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행을 쫓아 장터목을 향해 올랐다. 하산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러저런 사람들을 보지 않았느냐며 몇 십 번도 더 물어봤지만, 모두들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말로만 듣던 지리산 등반이었다. 지리산을 정복하려면 평소에 전주에 있는 모악산을 꾸준히 등산하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해온 터였다. 그러나 장터목까지만 해도 등산초보자로서는 버거운 일이었다. 단지 일행을 만난다는 희망 하나로, 숨 한 번 돌릴 새 없이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고 앞으로만 전진, 드디어 장터목에 도착했다. 장터목은 그야말로 장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텐트를 치고 밥을 짓기도 하고, 하산채비도 하니, 시골장터에 온 기분이었다. 휴게소를 보수하느라 헬기가 모래를 실어 나르는 광경도 장관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은 일행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방송까지 해 봤지만 찾지 못했다. 다시 천왕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서 안개비속을 오르고 있었다. 한여름 막바지 더윈데도 비에 젖은 몸은 춥고 배도 고프고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고사목은 뼈다귀처럼 앙상하게 박혀있고, 기류를 타고 흐르는 운무는 신의 입김처럼 내 몸을 휘감았다 풀었다 하며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지리산산신령이 나타나 모세의 지팡이를 휘두를 것만 같았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이런 광경을 체험하고 천당을 가 봤다고 하는 게 아닐까. 순간, 왈칵 무서운 생각이 들어 정상을 눈앞에 두고 그만 돌아서고 말았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여반장(如反掌)이라고나 할까. 사소한 일 하나까지도 정성을 다해 챙겼을 때와 소홀히 했을 때의 차이로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 나리라. 장터목을 지나 제석봉까지 올라온 공력 따윈 기억조차도 없이 힘 빠진 몸을 끌고 터덕터덕 내려오고 있었다. 복병이 여기에 있었다. 짝꿍 배낭 속에 든 밥이며, 물, 사탕 한 알도 챙겨오지 않았던 나 자신의 실수가 되돌아서게 만든 것이었다. 오로지 일행과 합류해서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야망을 품었을 뿐, 정상까지 가려면 밥과 간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심마니’가 되어 ‘심봤다’를 외치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까. 체력은 점점 소진해져서 이젠 한 발자국도 옮길 힘이 없었다. 기다시피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하늘이 돈짝만하고 그저 주저앉고 싶을 뿐,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스쳤는데도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밥 한 술 물 한 모금 구걸할 힘도 용기도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다. 귀가 번쩍 띄었다. 눈뜰 힘조차 없던 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이거라도 입에 넣어보시지요.” 나에게 건네준 것은 ‘박하사탕 한 알!’이었다. 그것은 우황청심환도 아닌, 그야말로 사경에서 나를 구해준 한 알의 ‘심마니’가 아닌가. 그 기운으로 숙소까지 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전에 짝꿍이 병뚜껑에다 병아리 눈물만큼 물 한 모금 받아먹고 지리산에서 정신을 차렸다는 얘기를 듣고 믿기지 않았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란 걸 실감했다. 지금 생각하면, 박하사탕을 건네준 ‘산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나 제대로 했는지 기억조차 없다. 한참 때늦은 인사지만, “정말 고마웠습니다. ‘산사람’이여, 행복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박하사탕 한 알’을 내게 건네준 ‘산사람’, 산사람의 그 따뜻한 인정이 그립다. (2007.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