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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초심으로 산다는 것

2007.10.14 22:38

배영순 조회 수:75 추천:6

초심으로 산다는 것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수요반 배영순 한밤중 잠에서 깨어보니 딸 아이의 방이 훤했다. '몇 시인데 지금까지 공부를 할까?' 속으로 중얼거리며 건너가 보니 안경을 쓴 채, 책을 가슴에 얹어 놓고 깊이 잠들어 있다. 안경을 벗겨주고, 책도 치우고 베개를  베어 준 뒤  세상 모르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았다. 팔삭동이로 태어나 아무 탈없이 곱게 자라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15년 전, 3월 7일 예정인 아기가 1월 10일 양수가 터져 나오려고 했으니 엄마 뱃속밖 세상구경을 무척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대학병원 분만실에서 나는 온몸에 온갖 종류의 주사바늘을 찌른 채 1주일을 견뎌야 했다. 양수가 이미 터졌지만, 바로 세상 밖으로 꺼내 놓으면 숨도 쉴 수 없는 미숙아였기에 병균감염을 막기 위한 항생제 뿐만 아니라  폐 숙성 주사, 심장 숙성 주사 등으로, 초고속으로 숙성 시킨 뒤 1주일 만에 2,150그램의 몸무게로 세상에 나왔다. 나오자마자 보육기에서 15일 동안 더 자란 뒤 집에 돌아온 아이니까 사실, 과학 문명이 살려낸 생명인 셈이다. 퇴원하고서도 잔병치레로 정기적인 검진을 계속 받아야 했던 아기를 향한 나의 소원은 어느 광고대사처럼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였다. 부모의 소원대로 튼튼한 말괄량이로 잘 자라고 있는데 엄마의 소원이 초심을 잃고 아이를 향한 욕심이 한도 끝도 없다. 10년 전 내가 타도로 발령을 받아 단 둘이 살던 유치원 시절엔 어떠했던가? 2시가 되어 친구들은 엄마나 할머니의 손을 잡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건만, 종일반 몇몇 아이들은 엄마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대부분 6시쯤에는 엄마의 손을 잡고 참새처럼 쫑알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딸 아이는 엄마의 출퇴근시간에 맞추어 유치원에 가야했기에 언제나 일등으로 유치원에 갔다가 거의 매일 꼴찌로 나와야 했다. 어쩌다 퇴근 뒤 직원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아이는 껌껌한 유치원 교실에서  혼자 남아 텔레비전을 보기 일쑤였다. 엄마를 보는 순간 왕방울만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 엄마도 같이 울었다. 친구들이 모두 떠난 텅 빈 교실에서 다섯 살짜리 아이는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서너 번 이런 과정을 겪은 뒤, 난 직원회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 유년을 추억할 때 어둡고 껌껌한 교실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절 나의 소원은 “언제나 보름달 같이 환히 웃을 수 있는 아이로 자라다오.” 였다. 아이는 나의 소원대로 언제나 웃음보따리를 가득 담고서  마냥 즐거운 아이로 쑥쑥 자라고 있건만, 엄마인 나의 욕심이 초심을 잃고 있다. 어느 누구보다도 더 크고 많은 숙제를 내놓고서 풀기를 바라고, 90점을 맞으면 95점을 맞지 못한 걸 책망하며, 마치 내 못다한 꿈을 아이로 하여금 성취하려는 듯 아이를 향한 욕심이 한도 끝도 없다. 부모는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서서히 비우기 연습 또한 필요한 것 같다.  자식은 부모가 강요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는 단지 자식 인생의 가장 가깝고 훌륭한 안내자로서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고, 잠재된 재능을 꺼내서 꿈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하는 일이 그 첫째 임무임을 누가 모르랴. 그러나 사실, 난 초심을 잃고서 모든 걸 잘하라고 종용하고 또 종용한다 . 우리 주변에서 초심을 잃음으로써 더 큰 것을 잃고 사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본다. 부부가 결혼 당시의 초심으로 살아간다면 이혼이 있겠는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서비스 정신이 처음과 같은 마음이라면 고객이 등을 돌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또 정치인이 정치계에 처음 입문할 당시의 초심으로 정치를 한다면 참으로 좋은 세상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세간의 화제가 되는 신정아 스캔들을 보노라면 거짓은 끝없는 거짓을 낳고 결국 그 거짓이 거짓인 줄 모르고 판단력이 마비된 채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들도 처음엔 예술을 사랑하는 순수한 영혼으로 만났을 지도 모른다. 결국 초심을 잃은 방만한 욕심이 파멸로 이끈 것이리라.   특히, 물질만능주의시대에 초심으로 산다는 것은 수도자의 정진과 다름없다. 수도자가 깨달음을 얻고서 영원히 니르바나(nirvana)안에서 살 수 있듯이 우리 범인 또한 초심을 잃지 않을 때 영원한 행복 안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가을 밤, 잠든 딸아이를 바라다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 본다. ※ nirvana: 불교용어(열반, 해탈, 영원한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