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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광어회

2007.12.10 04:37

김영옥 조회 수:245 추천:6

광어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금요반 김영옥                                                         내 나이 칠십이 넘도록 이런 일은 처음이다. 자신에게만큼은 자린고비로 소문난 여인이 쌀 반가마를 점심 한 끼로 꿀꺽 집어삼켰으니 자다가도 웃을 일이다.    전주시내에 흩어져 사는 친구 할머니들에게 군산으로 싱싱한 조기를 사러 가자고 부추겨 전주역에서 군산행 9시 통근 열차를 탔다. 70대인 네 할머니들은 소풍가는 여학생들처럼 제각기 잔뜩 멋을 내고 나왔다. 한적한 열차 안을 독차지하다시피 조잘대는 늙은 소녀들(?)의 즐거운 모습이 나이만 들었지 마음들은 영락없이 소녀들이였다.   군산에 도착해서 역 옆의 중앙시장을 빠짐없이 다 훑어보고 월명공원으로 택시를 몰았다. 공원에는 일행 중 어느 할머니의 시부님 공적비가 있어서 참배를 하고 시내구경도 했다. 짠돌이 할멈들이었지만 날씨도 쌀쌀하고 배도 출출한 터여서 점심은 공원 바로 앞에 있는 8층 건물인 군산횟집으로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두 명씩 따로 먹자는 제의가 있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가 따로 따로 상 앞에 앉았다. 다른 쪽은 생선 뼈 탕을 주문한 것 같았다. 나와 짝인 분은 내가 모시고간 분이어서 내가 대접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메뉴판을 펼쳐들고 보니 광어회 9.000원이 눈에 잡혔다. 다른 회들은 8.000. 7.000이었다. 그 순간 내 생각에 2.000원 더 주고 좀 더 맛있는 것으로 먹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주문을 했다. 6층에 자리한 홀에 넓은 창밖은 강 건너 장항시내와 멀리 바다도 보였다. 한두 마리의 갈매기들이 훨훨 날아가고 경치와 분위기도 만점이었다. 조금 있으니 횟감에 따른 부산물이 차려지고, 유니폼을 입은 예쁜 아가씨들이 공손하게 음식을 나르는데 기분이 좋았다. 뒤이어 광어회 한 접시가 나왔다.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두 사람 먹기에 좀 넉넉한듯해서 두 줄을 접시에 담아 다른 할머니들에게 주었다. 두세 가지 횟감을 더 들고 온 아가씨가, “두 분은 참 멋쟁이시어요.” 라고 했다. “우리는 겉 멋쟁이가 아니라 속 멋쟁이지요.” 하며 되받아 넘기면서 이렇게 서비스가 좋으냐고 했더니, "비싼 음식이이니 천천히 잘 드세요.” 라고 했다. 그제야 이상해서 친구가 물어봤더니 값이 90.000원이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마주앉은 친구는 배꼽을 쥐고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들의 웃음소리에 그 넓은 홀 안의 손님들은 영문도 모른 채 웃음바다가 되었으니 9만 원이 아니라 구백만 원 값도 더한 셈이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이니 아무 소리 말고 맛있게 잘 먹고 행동이라도 비싸게 하자. 우리가 이 광어회 값보다 몇 백 배의 수고를 한 사람들이니 아깝지 않다. 꼭꼭 씹어서 잘 먹고 건강합시다!" 라고 하니 우리 일행들은 또 웃어댔다. 좀처럼 먹기 어려운 전복, 산 낙지, 굴회, 여러 가지 회를 계속 들고 와서 이건 어디에 좋고 어떤 것이라는 걸 낱낱이 소개하며 권하니 그 맛은 더욱 황홀할 따름이었다. 마지막 하얀 네모진 접시에 소스로 만든 주황색 둥근달이 떠있고 초록색 산 그림 아래 거미만한 게 두 마리가 달을 쳐다보는 음식을 마주하고 감상하면서 "야! 음식도 예술이다!" 했더니 또 웃음보를 터뜨린다. 너무나 웃어댄지라 홀 안의 사람들에게 약간 미안해서 우리들이 웃음치료사이기에 많이 웃었노라고 하며 살짝 둘러대기도 했다.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제일 나이든 형님이 왜 실없이 웃어댔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메뉴판에서 9자 뒤에 0은 하나 빼고 9,000원으로 알고 주문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90,000원이어서 비싼 회를 먹었노라고 하자, 우리 넷은 부둣가에서서 또 한바탕 크게 웃었다. 가난한 시절을 살아온 우리시대 여인들이 비싼 횟집을 얼마나 자주 가본 적이 있었던가? 1인당 9,000이면 손바닥만한 광어 한 마리 회를 뜨고 뼈는 탕으로 해주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90,000원이 9,000으로 보인 데서 비롯된 실수였다. 나의 실수바람에 둘이서 쌀 반가마 값을 점심 한 끼에 먹어치운 꼴이다. 어시장에 들러 조기와 갈치, 새우 등을 사면서 결국 돈이 좀 모자라 빌려서 샀다.   밤 잠자리에 들어 낮에 있엇던 일을 되돌아보니 먹는 음식이었으니 망정이지 다른 어떤 큰일에 이런 실수를 했다면 어찌할 뻔 했을까. 신중하지 못한 내 행동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좁은 내 소견을 다시 한 번 생각하니 웃음이 쏙 들어갔다. 앞으로는 아주 작은 일에도 신중을 기하여 행동하리라. 비싼 광어회가 몇 십 배의 깨달음이 되어 내게로 되돌아온 유익한 하루였다. 참 잊을 수없는 좋은 추억이다.                                                     (2007.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