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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2008.01.12 17:34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행촌수필문학회 김영옥
옛 선인들의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해야 한다."는 말의 뜻을 일흔이 넘어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고생을 해본 사람은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고 사람의 됨됨이가 다르기에 한 말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나보다 몇 살 위인 분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인사를 하자 돈 만 원이 필요한데 누구에게 갈까 한다며 어려운 말을 꺼내셨다. 나는 네 아이들을 데리고 전주에 와서 봉급날은 아직도 멀었는데 돈은 떨어지고 누구한테 가서 빌릴까 망설이던 때를 떠올리며 선뜻 3만 원이 든 봉투를 손에 쥐어 주고 헤어졌다. 며칠 뒤 만나자기에 약속장소에 나갔더니 돈 봉투와 양말 5켤레를 내밀며 고맙다고 하셨다. 한문을 섞어 또박또박 쓴 노란 편지봉투의 글씨를 보니 콧날이 시큰했다."항상 지혜롭고 선견지명이 있는 영옥씨. 만 원을 말했는데 3만 원을 주어서 더 아쉬운 소리 않고 요긴하게 잘 썼기에 너무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둘은 양말봉투를 서로 내밀며 사양했다. 조그만 배려가 이렇게 진한 사랑의 향기를 낼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난날이 떠오른다.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1951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어머니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해서 큰 딸인 나는 자주 결석을 하게되어 마음이 상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돌아가셨다. 동생들 돌보랴, 집안 살림하랴, 내 사범학교 진학의 꿈이 사라지자 공부를 못하게 된 것이 한으로 쌓였다. 그 때부터 내 시간 갖기를 갈망해 왔고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결혼해서 네 명의 자녀들이 초등학교 때 남편의 직장 전근으로 이동이 잦았다. 그때마다 결석을 시키지 않으려고 바로 이사를 않고 고집을 부리면서 방학 때만 옮겨 다녔다. 때를 놓치면 나같이 한이 쌓일까 봐 안간힘을 다했기에 4명 모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개근상을 받았고, 서울의 명문대학을 마치게 했다. 주위에서 억척엄마란 소리를 듣는 것도 내가 겪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주변에서도 윤택하게 살아온 이가 자기만 못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여 무심코 던진 말에 한쪽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섭섭해 하는걸 볼 때가 있다. 마음 아픈 일이나 무시를 당해 서러움을 겪어 보지 않았는데 상대방의 입장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젊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적어 달라고 하면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준다. 늙어보지 않았으니 노인들의 시력을 짐작할 리가 없다. 배가 고파보지 않은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처지를 어찌 알며, 부모가 되어 보지 않고 부모마음을 어찌 알랴. 나만 못한 사람에게 동정심을 갖고 대하고 경멸하는 말이나 행동은 삼가야 하지만, 자기가 겪어보지 않았으니 상대방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리라.
해변에 깔린 몽돌과 철길에 깔아놓은 모난 돌을 비교해 보자. 수백 년 거센 파도에 시달린 몽돌을 밟고 걷노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닳지 않은 모난 돌을 밟으면 상처를 입으니 다시는 밟고 싶지 않을 것이다. 기분 좋은 몽돌 같은 사람이 가득한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저것 온갖 역경을 다 겪은 사람은 그래도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데 인색하진 않을 듯싶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아직도 우리 이웃에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적당한 체험을 해보는 것이 어울려 살아가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풍요로움 속에서도 결핍증을 앓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문명의 이기들이 다 해결하고 원하기만 하면 부모들은 즉각 들어준다. 고생스런 일을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이 지혜가 아니라 지식만 채워 주려고 안달하는 부모들이 문제인 것 같다. 책이나 이론으로만 배운 사람과 많은 일을 직접 부닥쳐 경험을 쌓은 사람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몸소 겪어보지 않았는데 어찌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동정심을 나타내며 고마움을 갖고 사려 깊게 배려하겠는가? 그러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나는 돈 버는 일이 아니면서 잠도 설칠 정도로 바쁘다. TV도 10분을 손 놓고 본 적이 없다.헛되게 시간을 보내면 죄스러운 생각까지 들고, 남도 시간을 허비하면 못마땅해 안달이니 이것도 필시 병이 아닌지 모르겠다.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내가 살아 온 삶을 되돌아보면 산전수전, 만고풍상이란 말이 잘 어울릴 것 같다. 엄마의 죽음, 아버님의 정치생활로 친정집 몰락, 가난, 까다로운 남편의 성격 등, 내게는 버거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내 딴엔 많은 일을 경험하면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깨달았기에 일흔둘의 나이에도 동분서주하며 고생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운 희망을 갖게 해 주는 일에 봉사하느라 바쁘다.
자녀들은 이 어미의 마음을 아직도 잘 모른다. 바쁘다고 푸념하는 나를 보고, 이제는 얼마든지 편히 살아도 되는데 왜 사서 고생하는지 알 수 없다고들 한다. 가끔은 자녀들에게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너무 애면글면 한 것이 오히려 잘 못한 것이 아닌가 자책할 때가 있다. 사람은 고생을 해봐야 남의 사정을 이해하고 성숙해 가는 법이다. 나는 일곱 명의 손자손녀들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나 시간의 중요함을 겪어보도록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그리하여 남을 사랑하고 자신감 넘친 사람이 되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다.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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