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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가을 산행
2008.01.19 04:41
가을 산행
행촌수필문학회 김영옥
깊어가는 가을날,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 내 마음을 충동질했다. 내가 나가는 평생교육원 수필반에서 무주 적상산에 간다는 메일을 보았기에 뛰다시피 모임장소에 당도하니 떠나기 직전이었다.
버스는 전주 시내를 벗어나 진안 용담호를 휘돌아 달렸다. 맑은 호수에 거꾸로 담긴 가을 산의 물그림자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했다. 자동차는 무주에 접어들어 적상산 전망대를 향해 굽이굽이 돌아 힘들게 올랐다. 2차선 좁은 길가에는 키 큰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단풍나무가 윙크를 하며 반겼다. 멋지고 깜찍한 그들의 모습이 꼭 신세대 신랑신부 같았다. 전망대에 올라 펑퍼짐하고도 너그러운 덕유산을 휘둘러보면서 위대한 창조주의 솜씨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상산이 빨강색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여인인 줄 알았는데 내가 본 발 아래 산들은 연한 갈색과 초록이 잘 어우러진 푸근한 옛날 우리네 어머니 모습 같았다. 아쉬울 때만 찾아와 응석을 부리고 하소연해도 안아주며 마음을 달래주는 어머니 같은 산! 화려하지도 않은 무명베에 수수한 물감을 들여 옷을 지어 입으시고 언제나 변함없이 집을 지키시며 너그럽게 포용하는 숭고한 어머니 품속 같은 이런 가을 산을 보고 싶어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아름드리나무는 어쩜 저렇게 많은 가지와 잎사귀들에게 영양분을 불평불만 없이 골고루 나누어줄 수 있을까? 그 비법은 무엇일까? 모든 게 궁금했다. 수백 년을 살아가는 나무도 결코 헛된 시간을 보내진 않았으리라. 폭염과 폭우를 참고 견디며 맡은 일에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저처럼 많은 가지 끝의 잎 하나까지 관심을 갖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닐까? 우리 인간은 고작 가족이나 친족에게도 고루 사랑을 못주고 갈등하며 살아간다. 정말이지 나무들 보기가 부끄럽다. 창조주께선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보고 배우게 하려는 뜻이 아닐까?
도심 속에서 허덕이다가 주말이 되면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교통난을 겪어가면서 산이나 바다를 찾아 나서지 않는가. 사계절 언제 찾아와도 넉넉함을 보여주는 어머니 같은 덕유산을 자연 그대로 잘 보존했으면 한다. 산 깊은 곳까지 개발바람이 불어 빌딩들이 생겨나니 맑은 물 아름다운 숲이 쓰레기장으로 변할까 두렵다. 나무들은 잎사귀까지도 거름이 되어 땅을 기름지게 하는데, 인간들은 쓰고 버리는 것마다 땅을 오염시키고 악취만 내는지 알 수 없다. 산을 자꾸 훼손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다.
가을 해는 돌아 갈 시간을 재촉한다. 시간에 쫓겨 떠나오려니 친정에 왔다 돌아가는 새댁 마음이다. 오는 길에 용담호를 한 바퀴 돌았다. 골짜기마다 맑은 물이 가득 고여 보기만 해도 풍요로웠다. 너무도 파란 하늘, 고상하고 우아하게 치장한 가을 산과, 맑은 물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움의 극치에 신선이 된 듯 황홀감에 빠져 넋을 잃었다. 호수에 거꾸로 비친 산 그림자를 화폭에 담을 수 없어 아쉽기만 했다. 넘어가는 해님은 마지막 장식으로 황금가루를 물결 위에 뿌려 눈이 부셨다. 아름다운 이 광경들 모두가 보는 사람의 것이 되게 하니 이 모두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창조주의 하시는 일은 어찌 이리도 경이롭기만 하신지. 산이나 생명수인 이 맑은 물을 오염시키지 않고 잘 보존하는 게 우리들의 몫일 것 같다.
올 가을 산행을 가지 않았다면 적상산의 그 장엄한 모습을 어찌 감상할 수 있었겠는가. 내 나이도 어느새 일흔셋의 문턱에 닿았다. 앞으로 얼마나 산행을 할 수 있을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도 떠오르는 어머니 품속 같은 산과 용담호의 물그림자, 그 아름다운 절경들이 눈앞에 어른거려 행복에 젖어들었다.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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