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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꼬리
유 봉 희
그때 고래가 나타났다
수평으로 활짝 펴서 천천히 물속으로 떨어지는 꼬리지느러미
조각조각으로 흐르는 빙하 속를 물레방아 돌리며
고래 한 마리가 침실 발코니 앞으로 오고 있다.
여행객들이 다이닝룸에서 저녁 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멀리서 안테나를 올렸었는지
모자도 없이 바람에 날리는 한 사람을 읽었나 보다.
아득한 시간 넘어 바다로 들어간 그가
가장 크고 오래된 그의 책장을 넘긴다.
이 두근거림을 그냥 침묵이라고 말해버릴 수는 없겠다.
이제 알 것도 같다.
왜 나는 자꾸 바다로만 가고 싶었던지
이제 어두워가는 빙하 위에서
몇천만 년 만의 해후를
안타가운 10초로 만났다.
그래, 세상 밖에서도 내가 진정으로 만나는 것들은
머리가 아닌 꼬리였었지.
내일 아침 이 배는 항구에 닿고
바다를 떠난 오랜 후에도
고래는 바다를 넘듯 시간을 넘어 나에게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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