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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사랑 外 / 문정희
2008.12.13 08:33

* 겨울 사랑 -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 파꽃길 - 문정희
흰 파꽃이 피는 여름이 되면
바닷가 명교리(明敎里)*에 가보리라
조금만 스치어도
슬픔처럼 코끝을 건드리는
파꽃냄새를 따라가면
이 세상 끝에 닿는다는 명교리에 가서
내 이름 부르는 바다를 만나리라
어린시절 오줌을 싸서
소금을 받으러 가다 넘어진 바위
내 수치와 슬픔위에
은빛소금을 뿌리던 외가 식구들
이제는 모두 돌아가고 없지만
서걱이는 모래톱 속에 손을 넣으면
차가운 눈물샘은 여전히 솟으리니
조금만 스치어도
슬픔처럼 코끝을 건드리는
파꽃냄새를 따라가서
그리운 키를 쓰고 소금을 받으리라
넘실대는 여름바다에
푸른 추억의 날개를 달아주리라
*명교리(明敎里) : 이곳은 전남 보성에 있는 마을 입니다.
* 소리 - 문정희
끓는 쇳물 속에 어린 딸을 바치고도
해와 달이 예순 번을 바뀐 후에야
비로소 완성을 보았다는 에밀레종도
처음엔 소리가 없었다네
종신 속에 기포가 많아
헛구멍들이 소리를 다 잡아먹은 거지
그래서 허공에 매달리기
십년 이십년 백년......그렇게 바래지기
또 오백년......헛것들이 다 사라지고
자연히 구멍이 메워져서, 어느날
지잉, 징
하늘 땅을 울렸다네
오, 허공에 매달리기 올해 겨우 마흔해
내 몸속을 흐느는 바람길 수천리
* 풀잎 - 문정희-
돌틈새에서 파릇한 햇살들이
놀라 깨어나면
나는 조그맣고 서러운
사랑으로 눈뜨리
누가 이런 날
발자국 소리를 숨길 수 있으랴
온세상에 눈부신 소문이
가뭇없이 퍼진다 한들
* 순간 - 문정희
찰랑이는 햇살처럼
사랑은
늘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버리고
그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했다
* 노래 - 문정희
나와 가장 가까운 그대 슬픔이
저 강물의 흐름이라 한들
내 하얀 기도가 햇빛 타고 와
그대 귓전 맴도는 바람이라 한들
나 그대 꿈속으로 들어갈 수 없고
그대 또한 내 꿈을 열 수 없으니
우리 힘껏 서로가 사랑한다 한들
* 성에꽃 - 문정희
추위가 칼날처럼 다가든 새벽
무심히 커튼을 젖히다 보면
유리창에 피어난, 아니 이런 황홀한 꿈을 보았나.
세상과 나 사이에 밤새 누가
이런 투명한 꽃을 피워 놓으셨을까.
들녘의 꽃들조차 제 빛깔을 감추고
씨앗 속에 깊이 숨 죽이고 있을 때
이내 스러지는 니르바나의 꽃을
저 얇고 날카로운 유리창에 누가 새겨 놓았을까.
하긴 사람도 그렇지.
가장 가혹한 고통의 밤이 끝난 자리에
가장 눈부시고 부드러운 꿈이 일어서지.
새하얀 신부 앞에 붉고 푸른 색깔들 입 다물듯이
들녘의 꽃들 모두 제 향기를
씨앗 속에 깊이 감추고 있을 때
어둠이 스며드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누가 저토록 슬픈 향기를 새기셨을까.
한 방울 물로 스러지는
불가해한 비애의 꽃송이들을
* 비망록 - 문정희
남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 시인의 집 - 문정희
폼페이, 네 상처를 보러 왔다
목욕하다 죽은 네 둘째딸의 젖꼭지를 보러 왔다
네 아내의 가슴에서 터져 버린 화산을 보러 왔다
가열한 절망 위에 홀로 천 년을 꿈틀거리는
아름다운 폐허, 그곳에서
아침 새떼처럼 서식하는 시를 만나러 왔다
너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지구 끝에서 몰려든 호기심 앞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재앙들
주점과 도서관과 검투사들의 욕망이
인기 관광상품으로 널려 있는 이 거리에서
나는 자꾸 길을 잃는다
오래 쓰다듬고 나면 상처도
이리 환한 눈을 뜨더냐
그렇다면 시간은 무엇이고 비애는 무엇이냐
드디어 '시인의 집'앞에서 발을 멈춘다
대문에 상징으로 개 한 마리 그려 놓고
시인은 영원히 외출중
술에 취해 귀가하는 그를 위해
골목에는 아직도 야광석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는 어디선가 상처를 팔고 있나 보다
서울에서도 그의 초라한 옷자락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발이 부르트도록 파멸과 절망을 뒤적인다
싱싱한 비극 위에 살아나는 언어의 혈육을 찾는다
폼페이 시인의 집 앞에서
시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 젊은날 - 문정희
새벽별처럼 아름다웠던 젊은날에도
내 어깨 위엔
언제나 조그만 황혼이 걸려 있었다
향기로운 독버섯 냄새를 풍기며
속으로 나를 흔드는 바람이 있었다
머리칼 사이로
무수히 빠져나가는
은비늘 같은 시간들
모든 이름이 덧없음을
그때 벌써 알고 있었다
아! 젊음은
그 지느러미 속을 헤엄치는
짧은 감탄사였다
온몸에 감탄사가 붙어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른 잎사귀였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는
광풍의 거리
꿈과 멸망이 함께 출렁이는
젊음은 한 장의 프래카아드였다
그리하여
나는 어서 너와 함께
낡은 어둠이 되고 싶었다
촛불 밖에 스러지는
하얀 적막이 되고 싶었다
* 고독 - 문정희
혼자 흘러와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처럼
온 몸이 깨어져도
흔적조차 없는 이 대낮을
울 수도 없는 물결처럼
그 깊이를 살며
혼자 걷는 이 황야를
비가 안 와도
늘 비를 맞아 뼈가 얼어붙는
얼음번개
그대 참으로 아는가 모르겠다
* 키 큰 남자를 보면 - 문정희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 걸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렇게 매달리고 싶다
나팔꽃이 되어도 좋을까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 보고 싶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눈썹에
한 개의 잎으로 매달려
푸른 하늘을 조금씩 갉아먹고 싶다
누에처럼 긴 잠 들고 싶다
키 큰 남자를 보면
* 목숨의 노래 - 문정희
너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
같이 살자
이 말은 너무 흔했다
그래서 너를 두곤
목숨을 내걸었다
목숨의 처음과 끝
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다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 유리창을 닦으며 - 문정희
누군가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는다
창에는 하늘 아래
가장 눈부신 유리가 끼워 있어
천 도의 불로 꿈을 태우고
만 도의 뜨거움으로 영혼을 살라 만든
유리가 끼워 있어
솔바람보다도 창창하고
종소리보다도 은은한
노래가 떠오른다
온몸으로 받아들이되
자신은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는
오래도록 못 잊을 사랑 하나 살고 있다
누군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아서
맑고 투명한 햇살에
그리움을 말린다.
* 러브호텔 - 문정희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다
나는 그 호텔에 자주 드나든다
상대를 묻지 말기 바란다
수시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
내 몸 안에 교회가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교회에 들어가 기도한다
가끔 울 때도 있다
내 몸 안에 시인이 있다
늘 시를 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아주 드물다
오늘, 강연에서 한 유명 교수가 말했다
최근 이 나라에 가장 많은 것 세 가지가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라고
나는 온몸이 후들거렸다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내 몸 안이었으니까
러브호텔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교회와 시인 속에 진정한 꿈과 노래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는 것은
교회가 많고, 시인이 많은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오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며
나는 오늘도 러브호텔로 들어간다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 (민음사,
* 돌아가는 길 - 문정희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제16회 정지용 문학상 당선작
* 김 남 조(시인, 예술원회원)
적멸함으로 아름다운 시
「정지용문학상」의 올해 수상후보로 몇 사람의 시인이 예심을 거쳐 그 자료가 넘어왔다.
나름으로 모두 수상자가 되기에 부족없다 할만 했으나 그중에서도 문정희 시인과 김영석 시인의
작품이 돋보인다고 여겨졌었다. 한데 김영석의 경우는 근년에 「시와시학상을 수상하여 동일잡지
에서 특집으로 다룬 일이 있음을 감안하여 제외키로 했고 문 시인과 다른 한 두 사람으로 좁혀져
논의되었다가 원만한 합의로 문정희 시인의 작품 「돌아가는 길」에 낙점이 되었다. 문정희 시인은
중고시절부터 백일장 등에서 수상경력이 몇 번 있었던 이른바 조기 우등생 그룹이고 이점이 오히려
걱정되는 바의 얼룩이로남아왔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는 재능에 탐익하여 시의 진정한
내면을 놓치는 수가 있어 큰 詩를 못 이루는 단명의 경우를 더러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정희 시인은 세월이 갈수록 튼실하게 속이 채워지는 믿음직스런 성숙을 보여왔고 삶을
비추는 가장 명징한 거울을 단념이 닦아온 바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작금년엔 그의 시적장점이 잘
나타난 시를 연이어 발표해 온 사실도 손꼽을 만하다. 정지용문학상은 한 권의 시집으로 보다
한 편의 시를 엄밀히 가려 뽑는 상 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재영시인의 시와 유자효시인의
시에서도 좋은 시편을 찾아낼 수 있었음을 부가로 밝힌다
* 김 윤 식(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키 큰 남자를 읊은 시인
지용문학상은 규정상 중견시인 이상의 시인에게 주어진다고 한다. 그런 시인이라면 응당
그에 상응하는 그만의 분위기가 있는 법. 이번 수상자 문정희씨의 경우는 어떠할까.
대번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
키 큰 남자를 보기만 하면 가만히 팔을 걸고 싶다는 것이 그것. 그야 어린날 누이가 오빠 팔에
매달리듯 팔을 걸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매우 딱하게도 그가 오빠일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보고 싶다 아름다운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눈썹에
한 개의잎으로 매달려 푸른 하늘을 조금씩 갉아먹고 싶다 남자의 키가 큰지라 은사시나무에
올라간 것까지는 알겠는데, 올라간 목적이 썩 수상하다. 눈썹에 있었으니까. 눈썹을 만져보기
위함이었는데, 그때 눈썹이 꿈틀거리지 않겠는가, 갉아먹을 수밖에. 갉아먹고 나면 어떻게 될까.
벌레인지라 누에처럼 긴 잠에 빠질 수밖에. 대체 시인이 함께 긴 잠에 빠지고 싶다는
이 “키 큰 남자”는 누구일까.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머리를 상고로 깎은 시인 목월이었을까.
왜냐면 키가 큰 남자였으니까. 혹은 프라하의 시인 릴케였을까. 그는 눈까지 컸으니까. 이렇게 시인에게
묻는다면 어떤 답변이 나올까. 망설임없이 시인은 이렇게 말할 터이다. “키 큰 남자란 미당 서정주다!”라고.
“미당의 시를 읽어본 사람은 대번에 안다”라고.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미당, 「동천」부분). “나는 지난 밤 꿈속의 내 눈썹이
무거워/ 그걸로 여기/ 한 채의 새 절간을 지어두고 가려하느니”(미당, 「여행가」부분). 눈썹으로 절간을
한 채 지은 사내, 그가 바로 키 큰 남자였던 것. 키 큰 남자를 만나기 위해 시인이 절간을 찾아가야 하는
곡절이 여기에서 온다. 시인이 절간에 들른 것은 90년대였다. 비산비야, 황토길을 돌아 닿은 곳은 화순
능주 소재 운주사. 매우 조급하게도 시인은 그 자리에서 부처가 되었단다. “앗불사! 그 자리에서
나도 부처가 되다”(「운주사에 이르러」부분). 그야말로 “앗불사!”였을 터. 어찌 한갓 시인이
부처가 될 수 있으랴. 어림도 없는 수작. 시인이 스스로도 훗날 “오라, 거짓 사랑아”라고 실토할
수밖에.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다. 시인은 이제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소재 인각사 앞에 섰다.
시인은 거기서 무엇을 보았던가.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돌아가는 길」부분
지용 사백이 살아있었더라면 뭐라 할까. “이브의 딸이여, 제법이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 이 근 배(시인, 지용회 회장)
완성으로 치닫는 정신의 뼈
하늘을 걷는 별들도 길이 있을 것이다. 그 끝없이 멀고 헤아릴 수 없는 길이 또한 사람의 길이다.
경상도군위에 있는 인각사(麟角寺)는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다.
지금은 새로난 아스팔트 길가에 퇴락하여 한가롭지만 단군의 기원을 처음으로 밝혀놓았고 우리
시의 원류인 사뇌가를 기록한 일연(一然)의 삼국유사가 쓰여진 성스러운 가람이다. 어느 날 시인은
인각사에 가서 반쯤 깨어져 달아난 보각국사(普覺國師)의 비석과 비바람에 눈과 코가 뭉개진
돌부처를 만나서 “돌아가는 길”을 물었을 것이다. 본디 비어있는 것과 가득차 있는 것은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임을 말씀으로 깨우쳐 주었으나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니
길 앞에서 어찌 길을 찾겠는가.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고
시인은 영원회귀의 물살을 본다. 우리의 모국어를 부활시킨 정지용을 기리는 문학상은 시인의 경력이나
세평보다는 단 한 편의 시의 완성에 주는 상이다.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멀리 비켜서거라”하고
완성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였으나 이 시는 한 해 동안의 많은 시 속에서 완성으로 치닫는
정신의 쓰임이 앞선 작품이었다. 문정희 시인에게 경의를 표한다
* 이 가 림(시인ㆍ인하대 불문과 교수)
역동적 상상력, 단단한 말의 힘
일년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모든 작품들과 시집들 가운데서 가장 잘 빚어진 딱 한 편의 명품을
골라내야 하는 감정가(鑑定家)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기에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눈밝은 시평론가들의 촘촘한 그물망에 걸려 올라온 열 분의 작품을 대상으로
검토할 수 있게 되어 안도의 숨을 조금 쉴 수 있었다. 그 동안의 시력(詩歷)과 시적 성취도에
구태여 얽매이지 않으면서 횡적 비교를 통해 가장 완성도가 높은 보석 하나를 집어 드는 일은
나로서는 의외로 빨리 이루어졌다. 단단하고 흠이 없고 감동적인 조형미를 두루 갖춘 작품을
대뜸 하나 집어 들었는데, 그것이 문정희 시인의 「돌아가는 길」이었다. 일상성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삶의 위선과 엉큼함을 거침없이 고발하는 통렬함을 보여주는 문정희 시인 특유의
시원스런 역동성이 이 작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었다. 오히려 비근한 사물이나 인생살이의
자잘한 세부를 다루던 이전의 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전체적 통찰의 경지에 들어선
세계인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층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섣부른 선시(禪詩)풍의
불가해한 아포리즘에 쉽사리 함몰되지 않고 어디까지나 시적 문법의 탄탄한 구조로 얽어놓고있는 점
또한 높이 살만 했다. ‘천년 인각사 뜨락’을 ‘부처의 감옥’으로 부르고 있는 것도 녹록치 않은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부처가 눈과 코가 달려 있는 부처이기를 그만 두고 원래의 돌, 즉 참다운
실재(實在)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절대적 완성이라고 보는 우주관은 그 자체로서는 특별히
독창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불교적 세계관에서 이끌어낸
형이상학적 ‘이념’이 아니라 인각사 뜨락의 부처라는 구체적 대상을 통해서 초시간(超時間)의 세계,
즉 거대한 순환을 계속하는 영겁회귀의 섭리를 ‘시적 직관’으로 느껴, 그것을 ‘육체의 언어’로
절제 있게 노래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심사자들 전원이 만장일치로 선정한 문정희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한국시의 밤하늘에 찬연히 빛나는 별자리가 되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김 재 홍(문학평론가, 경희대 문과대학장)
불상 속에 담겨진 시적 秘儀
올해 정지용문학상의 심사에 임하면서 다시금 문학상 심사라는 소임의 어려움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정지용문학상은 시적 완성도가 높고 형상성이 탁월하며 누구나 낭송하기에 적합한
작품 한 편을 뽑는다는 규정 때문에 심사가 까다롭고, 예리한 비평능력과 감수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젊은 평론가들의 추천을 거쳐 올라온 작품 가운데 마지막 논의 대상이 된 것은 김초혜의
「인생」과 문정희의 「돌아가는 길」 등이었다. 두 작품이 다 내용의 깊이나 저력 면에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논의 끝에 문정희씨의 「돌아가는 길」이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이 작품은 종교성과 예술성의 고차원적 회통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불상이란
무엇이던가? 그것은 질료로서의 소재인 청동이나 목재, 돌 등을 깎고 다듬어서 신앙의 대상으로
신격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냥 보면 하나의 돌, 석재(石材)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것이
석공의 손에 깎고 다듬어지면서 종교적인 혼을 불어넣게 되면 신앙의 대상으로 이끌어 올려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뜻이다. 바로 시도, 예술도 그리고 나아가서 삶도 모두 그러한 것이라는 회통의
메타포가 이 시의 내면에 깔려 있는 것이다. 시도 시인이 언어를 깎고 다듬고 혼을 불어넣을 때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살아 숨쉬게 되듯이, 삶도 영성을 획득하고 고양시켜 나아가는데서 참모습이
실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수상시인의 앞날에 더욱 큰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
* 문정희
1947년 전남 보성출생.
동국대 대학원 졸업,
21회 현대문학상 수상(75).
시집<꽃숨> <새떼> <우리는 왜 흐르는가>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대> <남자를 위하여> 등
그림 - 나원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