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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仙巖寺)로 가라
나는 그냥 암모니아 냄새가 밴 '화장실'에서 나와 먼산을 먼산보듯
바라보며, 동백나무 그늘에 쭈그리고 앉았다.

김훈은 <자전거 여행>이란 기행 에세이집에서 이 곳 선암사 ' 뒤깐 '에서
똥을 누어보면 비로소 인간과 똥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화장실의 남녀 칸을 철벽으로 막아놓은 것은 문명이 아니라면서 화장실 남녀 칸
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선암사 화장실이 정답을 내놓고 있다고 했다.
정일근 시인은 <선암사 뒷간에서 뉘우치다>라는 시에서
'내 죄의 반은 늘 식탐에 있다' 고 전제하면서 선암사 뒷간에 앉아 스스로에게
다짐하길 '근심을 버리자! 근심은 버리려 하지말고 만들지 말아라.
뒷간 아래 깊은 어둠이 죽비를 들어 내 허연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마음을 비우자! 마음은 처음부터 비워져 있는 것이다'
라고 뒷간철학을 다듬었다.
복효근 시인도 <선암사 해우소>에서
'선암사 매화 보러 갔다가
매화는 일러 피지 않고
뒤가 마려워 해우소 찾았지
똥 싸는 것도 사람의 일
별거 있느냐는 듯
칸마다 문짝도 없는 해우소
...........
깊이는 또 얼마나 깊은지
까마득한 바닥에서
큰스님 큰 근심도 내 작은 걱정도 독재자의 억지 웃음도
한가지 똥이 되어 그야말로 승속이 여일한데
화장실로는 번역할 수 없는 해우소
그 깊은 뜻 깨달았지
세상에 똥구린내가 매화향처럼 느껴지긴 난생 처음이었지'
라며 매향같은 뒷간 속에서 근심을 털었다.

정호승 시인(사진)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했다

시인 정호승은 오래된 절집에 들렀다가 오줌 누러 뒷간을 찾았다.
그의 시선이 닿은 낡은 종잇장에 쓰인 글귀 하나.
'몸속의 묵은 짐을 내버리듯 번뇌와 망상도 미련 없이 버리세요'
갑자기 암모니아 냄새가 밴 해우소가 늙은 어머니의 품 안처럼 느껴졌다.
그는 소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아 속으로 한참을 울었다.
가슴속에 맺힌 채 남의 눈치만 보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몸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나서야 정호승은 깔끔한 시 한 편을 얻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선암사/정호승

<뒷간 바로 앞 동백>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거나 걸어서라도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라고 말하는 시인의 진정한 의도는 근심 걱정이 많은 우리네 한 살이에
위안을 주기 위해서 임을 어느 누구라도 짐작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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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의없이 선암사 뒷간 해우소에 앉아보았다
나무창살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정말 그 뒷간에 앉아있는 것 만으로 번뇌와 근심 다 털어내고,
욕망의 찌꺼기 깨끗이 비워내며, 실컷 울면서 위로까지 받는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으랴.
' 뒤깐 ' 은 두고두고 되삭임되어 우리를 철학케 한다.
더러움 씻어내듯 번뇌도 씻자
이 마음 맑아지니 평화로움뿐
한티끌 더러움도 없는 세상이
이 생을 살아가는 한 가지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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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암모니아 냄새가 밴 '화장실'에서 나와 먼산을 먼산보듯
바라보며, 동백나무 그늘에 쭈그리고 앉았다
남이 볼까 남이 볼까..

절 초입, 승선교(昇仙橋)에서 바라본 강선루(降仙樓)
이십 수 년 전 애초의 선암사에 대한 기억은
지금처럼 넓지 않은 진입로로부터 시작됩니다.
좁은 길 가로 키 큰 굴참나무, 밤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가을이면 단풍이 예쁘겠다고 말하던 오솔길 이었습니다.
갓 스물을 넘긴 친구들끼리 승선교(昇仙橋) 아래에서 봄으로 흐르는 물에
손을 씻고 일주문 못미처 서 있는 오래된 고사목 한 그루에서
다같이 사진을 찍었던 기억,
오늘 본 일주문이 그때는 그렇게 예쁜줄도 몰랐습니다.
두 번째 기억은 뒤깐이라 씌여진 화장실의 기억입니다.
적당히 옆과 구분된 칸칸이 작은 화병에 꽃 한 송이 씩 담겨져 있어서
편암함을 주는 곳이 해우소(解憂所)란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투명한 잔에 담긴 꽃 한송이가 있는 곳에 따라서
달리 보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흙 속에서 꽃 피우는 연꽃의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의미처럼요.

배흘림 기둥 다포계의 화려한 일주문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은 영화 만다라 입니다.
눈이 쌓이고 또 쌓여서 동안거(冬安居) 한창일 절집에서
번뇌에 눌리고 업을 내려놓지 못하는 영화속의 법운스님이
대웅전 앞마당에서 일주문 넘고 강선루(降仙樓) 지나서
승선교(昇仙橋) 건너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한국불교 태고종 태고총림(太古叢林), 선암사는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이다.
새벽 세 시엔 목탁을 치며 도량석(度場釋)을 행하였을 것이고
사물(四物, 대종, 운판, 법고, 목어)이 세상를 깨웠을 것인데
어지러운 중생 하나는 다 늦은 아침에 절 마당을 기웃거립니다

선암사 대웅전과 소박한 삼층석탑
백제성왕 7년인(529)년에 선암사 비로암지에
아도화상(阿度和尙)께서 선암사를 창건하였다고... 해천사(海川寺)라하고
산명을 청량산(淸凉山)이라 하였다 하지요.
또한 875년(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께서 현 가람 위치에 절을 창건했다는 도선설이 유력하다.
선암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한 분은 고려 선종 때 고승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이다.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다고 하는 절,
지금 남아 있는 대웅전 기단과 돌계단이 그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 서쪽에 신선이 바둑을 두던 평평한 바위가 있어
선암사라 이름 붙여졌다 하는데 신선이 내려올 만큼 풍광이 좋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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