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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탁족도(부분), 낙파 이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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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의 피서법,
‘탁족 (濯足)’과 ‘유두 (流頭)’
에어컨, 선풍기도 없던 멀고 먼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한 여름 찜통더위를 어떻게 지혜롭게 이겨냈을까.
조상들의 여름나기 작전을 배워 시원한 여름을 즐겨보자...
우선 양반과 서민들의 가장 대표적인 피서법으로 ‘탁족(濯足)’ 과 ‘유두(流頭)’ 가 있겠다.
탁족(濯足)이란 ‘발을 씻는다’ 는 뜻으로 여름철에 선비들이 산수가 좋은 곳을 찾아디니며 발을 씻고 노닐던 풍습이다.
발은 온도에 민감해 찬물에 담그면 금방 온몸이 시원해질 뿐만 아니라
흐르는 물이 발바닥을 자극하면 건강에도 좋다고 하여 선비들 사이에 여름나기 방법으로 널리 유행했다.
동국세시기에는 남산과 북한산 계곡의 탁족놀이를 여름철 피서법으로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산행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두(流頭)는 머리감기를 뜻한다. 동류수두목욕 (東流水頭沐浴)의 약자(略字)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하면 부정이 가신다’ 는 뜻으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고유의 피서법이다.
특히 유두날에 약수로 머리를 감으면 부스럼을 앓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어
여자들은 일부러 약수터를 찾아 가거나 산이나 계곡에서 쏟아지는 폭포물을 맞는 ‘물맞이 놀이’를 즐겼다.
해안지방에서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했다.
온 몸을 모래속에 묻고 얼굴에 땀이 날 정도까지 있으면 오히려 시원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이열치열(以熱治熱)의 피서법에는 몸의 기운을 북돋워 주는 효과도 있다.
뜨거운 모래는 온몸을 오랫동안 데워 기가 잘 흐르게 해 준다.
추위를 잘 타는 사람이나 신경통, 소화장애 환자에게도 좋다.
불면증, 우울증,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이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마음 건강까지 챙기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여성들에게는 까칠까칠한 모래알이 피부에 적당한 자극을 줘 살갗에 피가 잘 흐르도록 해 피부건강에 도움을 준다.
바다 모래의 소금기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균을 죽이는 성질이 있어 피부병 치료에도 좋다.
삼림욕(森林浴)도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는 절약형, 절전형 피서법 중 하나다.
피부 노출이 가장 많은 여름에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 (phytoncide)’ 라는
화학물질을 가장 많이 흡수할 수 있다.
피톤치드는 면역력을 강화시켜주는 물질로서 가벼운 달리기나 뜀뛰기,
맨손체조 등 유산소운동을 곁들이면 더욱 효과적이다. 웃통을 벗고 하면 더욱 좋다.
숲속에 가면 몸이 개운해지고 상쾌해지는 것은?
죽은 나무는 세균이나 곰팡이의 공격을 받아 썩지만 살아있는 나무는
썩지 않는다는 것은 살아서는 살균작용이 있다는 증거다.
나무들이 살기위해서 살균작용이 있는 피톤치드 (phytoncide)를 내 뿜는다.
“피톤은 식물”이란 뜻이고 “치드는 죽이다” 란 뜻이다.
적들을 방어하기위해서 식물들은 여러 가지 물질을 만들어 내는데,
그걸 통 털어서 피톤치드라고 한다.
피톤치드의 구성 물질에는 테르펜, 알칼로이드 성분, 글리코시드, 페놀 화합물
등등이 있는데 테르펜이 인체에 가장 좋다. 테르펜은 우리에게 활력을 준다.
나무마다 특이한 물질을 내뿜는다. 그래서일까?
여러 수종이 어울려 사는 숲속에 가면 해충도 적고 병든 나무도 적고 아주 잘살고 있다.
한 종류가 넓은 땅에 모여 사는 농작물들은 병충해에 약하다.
사람은 원래 숲속에서 살았다. 도시는 사람들이 만든 환경이다.
도시에서 살면 우린 면역력이 떨어지고 병이 잘 든다.
사람은 원래 살았던 숲속에서는 건강을 찾고 도시에서는 건강을 잃는다.
숲속에 가서 몇 시간 있다 오면 우리 몸은 개운하고 상쾌해진다.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가 우리 몸에 붙은 세균이나 곰팡이 홀씨를 살균시켰 기 때문이다.
숲은 우리 몸의 세탁기며 재생기다. 더구나 숲속에는 산소가 많아서
우린 보다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가 있어서 무슨 일을 하던 기운이 철철 넘쳐서
자신만만해진다. - 林光子 201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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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안의 사인삼경도 중 일부. (뜨거운 여름날 대청마루에서 선비와 학동이
웃옷까지 벗어놓고 그림 솜씨를 겨루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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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좋은 양반들은 서민들이 한여름 뙤약볕에서 피사리 등 여름농사에 구슬땀 을
흘릴 때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서 ‘시회(詩會)’를 열어 더위를 피했다.
시회는 원래 글을 통해 인격을 닦으려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주요한 모임이었다.
김삿갓이 전국을 떠돌면서 밥을 굶지 않은 것이나 전라도 산골 무지렁이였던
매천 황현이 일약 문사로 대접받게 된 것도 바로 이 시회를 통해서였다 한다.
반면 양반들이 아닌 서민들 특히 농민들은 힘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는
몇 바가지의 물로 등을 적시는 등목으로 더위를 잊는 것이 고작이었다.
등은 한기를 잘 느끼는 곳으로 충분히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등목을 한 후 막걸리 한 잔으로 고된 노동의 피로를 푸는 맛도 배워 볼만 하다.
이외에도 우리 조상들은 죽부인이나 대발, 등토시, 땀받이, 평상 등의 피서도구를 이용하기도 했다.
천렵으로 잡은 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먹거나 개를 잡아 개장국 을 끓이고 인삼, 마늘, 대추 등을 넣어 만든 계삼탕(지금의 삼계탕)을 먹으며 더위를 다스렸다.
이도 어려운 서민들은 냇가에 발을 담그고 애호박을 썰어 넣은 칼국수나 수제비를 끓여 먹었다.
예나 지금이나 피서법에도 양극화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기는 매한가지.
산으로 바다로 떠나고 싶은데 주머니가 비어있는 그대여, 집에서 세수대야에
두 발 담그고 독서삼매경에 빠져보심은 어떨런지.
題江石 · 강가의 돌에 적다.
濯足淸江臥白沙 (탁족청강와백사) 맑은 강에 발 담그고 흰 모래에 누우니
心神潛寂入無何 (심신잠적입무하) 심신은 고요히 잠겨들어 무아지경일세
天敎風浪長喧耳 (천교풍랑장훤이) 귓가에는 오직 바람소리 물결소리
不聞人間萬事多 (불문인간만사다) 번잡한 인간속세의 일은 들리지 않는다네
홍유손 (洪裕孫 1431 · 세종13~1529 · 중종24)
조선 초기 문인. 자는 여경(餘慶), 호는 소총(篠叢)·광진자(狂眞子). 본관은 남양
(南陽). 문장에 능하여 부역을 면제받고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지냈다.
세조(世祖)의 왕위찬탈 이후 세속적 영화를 버리고 시주(詩酒)로 세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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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윤(李慶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16세기 후반 / 고려대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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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시원하면 여름이 시원하죠.
낮에는 땡볕더위였는데, 밤에 갑자기 우레, 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선인들은 무더위가 닥치면 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으로 건강을 지켰습니다.
이를 표현한 그림도 숱하게 많은데 조선 중기 낙파 이경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가 대표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낙파는 봉호(封號. 임금이 내린 호)가 학림정(鶴林正)으로, 왕족 출신의 화가입니다. 위의 고사탁족도는
선비가 바위에 걸터앉아 탁족을 하고, 옆에서는 동자가 술시중을 들고 있는 풍경 인데,
선비의 기개와 여유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그림을 의학적으로 톺아보면,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인 선비는 배가 불룩한 데다 하체는 아주 가늡니다.
건강에 최악이라는 올챙이형 비만, 거미형 인간인 셈이죠. 뱃속은 지방이 넘쳐 온갖 성인병이 생기기 쉽고,
간도 기름기가 끼어 제 기능을 못합니다.
다리는 빈약해서 인슐린이 포도당을 저장하는 창고인 근육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처럼 인슐린 유통 시스템에 고장이 나면 당뇨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이런 선비가 술을 마시면 간이 더 무리하게 되고, 온몸이 더 기름지게 됩니다.
산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돌아다니고, 탁족으로 피서하는 것이 그나마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막는다고 할까요?
무엇보다 여유로운 마음이 병의 방패막이를 하겠죠?
탁족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 얼토당토않은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발은 온도에 민감해 찬물에 담그면 온몸이 시원해지는데다 흐르는 물이 발에 몰려있는 경혈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탁족은 꼭 계곡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집에서 샤워나 발 마사지로도 탁족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1주 3회 이상 땀을 흘리며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병행하고 금연, 절주에 적절한 식사를 유지하며
‘샤워 탁족’ 이나 발 마사지를 곁들인다면, 올 여름 거뜬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한방 탁족의 현대식 적용.
① 샤워할 때 발바닥을 중심으로 발 전체를 골고루 자극한다.
② 수압을 높여 발바닥의 오목한 부분인 ‘용천혈’ 과 발등에서 첫째, 둘째 발가락이 만나는 부위의 바로 위인 ‘태형혈’ 을 집중적으로 자극한다.
③ 무릎 아래 부위를 43~44도의 열탕에 3분, 16~17도의 냉탕에 1분씩 담그기를 5번 되풀이하는 ‘각탕’ (脚湯)도 탁족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방에서는 특히 관절염 환자나 위와 대장이 약한 사람에게 좋다고 한다.
-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273호 (2008-06-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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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건강법,
탁족과 ‘탁족 (濯足)’과 ‘발 마사지’
발이 편해야 만사가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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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경인년(庚寅年)엔 봄이 없다는 말이 들릴 정도다. 4월 말까지 오들오들 떨다 보니 어느새 초여름 날씨.
개나리, 목련, 진달래, 철쭉 등 봄꽃만이 머쓱하게 피었을 뿐,
4월 말까지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 종종걸음을 걷다가 이달 들어 갑자기 반팔 티셔츠를 꺼내 입어야 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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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윤(李慶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화첩/비단에 담채, 27.8×19.1 cm, 국립중앙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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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은 요즘처럼 날씨가 더워지면 산으로 향했다. 특히,
졸졸 흐르는 계곡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은 훌륭한 건강법이자 피서법이었다.
조선 중기 귀족화가 이경윤의 <고사탁족도>와 같이 탁족을 표현한 그림도 숱하게 많다.
<고사탁족도>는 선비가 바위에 걸터앉아 탁족을 하고,
옆에서는 동자가 술시중을 하는 풍경을 그렸는데 선비의 기개와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명화다.
선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까운 산에서 탁족을 하면 몸에서 기운이 돋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굳이 기 얘기를 하지 않아도 산에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는,
그 여유로운 마음이 굳었던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줄 것이다.
발, 제2의 심장.
탁족(濯足)은 과학적으로도 그럴듯하다. 짧은 시간 교감신경을 자극하고 난 뒤
오랫동안 이완시키면 면역력이 활성화되는데, 탁족은 그런 작용을 하기에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방에서는 발에 온갖 경혈이 몰려 있기 때문에 이를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면역력을 살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서양에서도 언제부터인가 발에 주목하고 있다. 발반사요법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 이비인후과 의사 윌리엄 피츠제럴드가 발반사요법의 효과에 대해 주장했고,
1989년 발반사요법 학회가 창설돼 수많은 반사요법사가 배출되고 있다.
미국 어니스 잉검은 <발은 말한다>라는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며 반사요법을 보급했고 독일, 영국, 스위스 등에서도 반사요법이 유행했다.
이들에 따르면, 발은 인체에서 가장 푸대접받는 부위지만 제2의 심장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부위이며 인체의 온갖 장기와 맞물리는 반사점이 몰려 있는 곳이다.
따라서 발을 귀하게 해서 주무르고 자극하면 건강에 좋고 병을 예방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굳이 반사점을 외우지 않더라도 발을 주무르고 꾹꾹 눌러주면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탁족과 발 마사지는 발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둘을 병행하면 시너지 효과가 기대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탁족이나 발 마사지를 꼭 계곡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일 집에서 샤워나 발 마사지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난 뒤나 밤에 자기 전 샤워 할 때 ‘개량형 탁족’ 또는 ‘발마사지’를 하는 것이다.
피로도 풀고 사랑도 키우기
샤워를 할 때는 머리를 감거나 몸을 씻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물줄기로 발바닥을 자극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으면 좋다.
방법은 간단하다. 샤워에서 나오는 물줄기로 발바닥을 골고루 자극한 뒤 수압을 높여 발바닥의 오목한 부분인
‘용천혈’과 발등에서 첫째, 둘째 발가락이 만나는 부위의 바로 위인 ‘태형혈’을 집중적으로 자극하는 것이다.
한방의 경혈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발바닥을 자극하면 혈액 흐름에 도움이 되고 발의 피로를 풀 수 있어 몸이 상쾌해지게 마련이다.
특히 가족이나 연인끼리 찬물로 상대방의 발을 씻으면서 주무르고 발바닥을 두드려주면 하루 종일 시달린 발의 피로가 풀릴 것이다.
또 발 자극을 통해 면역력을 키울 수 있을 뿐더러 서로 존중하는 참사랑까지 키울 수 있다.
배우자나 연인이 요즘 무기력해 보인다면 오늘 저녁에는 함께 욕실로 향하자.
발을 씻겨주고 정성껏 자극하면서 사랑과 건강을 함께 챙기도록!
<이성주>
건강의료 포털사이트 코메디닷컴의 대표. 동아일보 의학기자 출신으로
아침마다 30만 명에게 ‘이성주의 건강편지’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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