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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eritage · 안동 하회 · 경주 양동 마을

2010.08.06 21:59

유봉희 조회 수:2147 추천:91




WHC · 안동 하회 · 경주 양동마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양동마을은 1894년 12월 20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다.
경주시 북쪽 설창산에 둘러싸여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종가가 500여년 동안 전통을 잇는 유서 깊은 반촌마을이다.







전통 민속마을 중 가장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반촌으로 특이하게 손(孫), 이(李) 양성(兩性)이 서로 협조하며 5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전통문화 보존 및 볼거리,역사적인 내용 등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마을이다.
전국에 6개소의 전통민속마을이 있으나, 마을의 규모, 보존상태, 문화재의 수와
전통성,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때묻지 않은 향토성 등에서 어느 곳보다
훌륭하고 볼거리가 많아 1992년 영국의 찰스 황태자도 이 곳을
방문했다.
한국 최대 규모의 대표적 조선시대 동성취락으로 수많은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을
포함하여 500년이 넘는 고색창연한 54호의 고와가(古瓦家)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고즈넉한 110여 호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 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낮은 지대에는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고 있다.
경주손씨와 여강이씨의 양 가문에 의해 형성된 토성마을로 우재 손중돈선생,

회재 이언적선생을 비롯하여 명공(名公)과 석학을 많이 배출하였다.



마을은 경주시에서 동북방으로 20km쯤 떨어져 있으며, 마을의 뒷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내려 네줄기로 갈라진 등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다. 내곡, 물봉골, 거림 하촌의 4골짜기와 물봉 동산과
수졸당 뒷동산의 두 산등성이, 그리고 물봉골을 넘어 갈구덕으로 마을이 구성되어 있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수백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토담으로 이어지며,
통감속편(국보 283), 무첨당(보물 411), 향단(보물, 412), 관가정(보물 442), 손소영정(보물 1216)을 비롯하여
서백당(중요민속자료 23) 등 중요민속자료 12점과, 손소선생 분재기(경북유형문화재 14) 등 도지정문화재 7점이 있다.











경주 양동마을










 



‘경주 양동마을’   600년을 보다





물줄기 네 개 흐르는 ‘勿’ 자 형국, 일제 땐 철로 통과 막아내…

유네스코가 주목한 경주 양동마을 600년을 보다





땅은 비밀스러운 말을 감추고 있는가. 일찍이 여러 물형(物形)에 비유하여

땅의 말을 해석하고 그 터전 위에 자신들의 이상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어언 6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의 꿈은 기억의 흔적들로 남아 역사마을이 되었다.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된 양동마을은 전통가옥과 생태철학의 보고(寶庫)다.
안동 하회마을이 물 위에 뜬 연꽃이라면, 경주 양동마을은 ‘물(勿)’자 형국을 하고 있다.
인간의 마을을 자연물의 형상이나 문자 모양으로 비유하는 사유체계에는 조화로운 삶에 대한 염원이 깃들어 있다.



“보름날 전후에 이 대청마루에 앉아서 용마루 위로 걸어가는 달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보세요.
도시문명에 볼모로 잡힌 당신은 울고 말 겁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차마 돌아갈 수밖에 없어서….”




바람을 가둔 산골의 음성이 새벽잠을 깨웠다.

양동으로 가는 길은 공간이동이 아니다. 꽉꽉 막힌 문명의 도시 한복판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다가 시간여행자가 되어 나선다.
안강~영천 간 28번 국도에서 형산강을 건너면 하늘이 빚어내고 땅이 감춰둔 이 땅 최고의 길지(吉地)가 있다.
넓은 들판 모퉁이에 꼭꼭 숨은 마을은 밖에서는 여간해서 보이지 않는다.

고귀한 것들은 언제나 그렇듯 자신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1690~1752)은 택리지에서 살기 좋은 곳의 조건으로

마을에서 빠져나가는 물길인 수구(水口)가 꼭 닫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양동마을의 주산은 설창산(雪倉山)이다.
거기서 뻗어 나온 좌청룡 능선이 마을 앞을 감돌아 성주봉과 방간산(防奸山)을 짓는다.
네 골짜기에서 나온 물은 마을 한가운데로 모인 양동천(良洞川).
이 양동천은 동네어귀에서 백호자락을 감싸며 흐르는 안락천(安樂川)과 합수한다.
그 너머에는 기계천과 칠평천이 겹겹이 모이고 경주 시내를 지나 북으로 흘러들어오는 형산강과 만나 동해로 들어간다.
꽉 닫힌 수구와 수구 밖에서 거꾸로 들어오는 역수(逆水)는 땅의 기운과 재물이 흩어지는 걸 막아준다.
안락천 너머 기름진 안강평야는 이 마을의 경제 기반이다. 지리적 여건과 생리(生利)가 잘 부합된 터다.



마을 앞에 들어서면 뭐가 뭔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기와와 초가집 몇 채가 전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몇 개의 포인트만 찍어서 이 마을의 600년 비밀을
캐려 든다면 가망 없는 문명인이다.
멀찍이서 전모를 다시 보고 속 깊은 탐색에
나서야 한다. 종을 엎어놓은 모양의 성주산에 오르면 한눈에 조망된다.
왼편 멀리 안강평야가 보이고 동해남부선 철로가 마을 오른쪽 안락천 앞에서 거의 직각으로 꺾여 놓였다.
때마침 열차가 들어오다 방간산 밖으로 사라진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마을과 안산 사이로 철로가 놓여 터를 깨트릴 뻔했다.
마을이 발칵 뒤집
혔고 기필코 막아냈다.
‘勿’자 형국의 마을 앞에 철로가 놓이면 ‘혈(血)’자가 되어 피를 흘리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훗날 양동초등학교도 그래서 돌려 앉혔고 마을 앞 뾰족 첨탑 교회는 초등학교 쪽으로 옮겨서 낮게 지었다.



능선과 골골마다 차곡차곡 들어선 기와집들과 초가집들은 잘 영근 포도송이를
연상케 한다.
흡사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모양 같기도 하다.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의 관가정(觀稼亭). 신동연 기자

양동마을은 월성손씨(月城孫氏)와 여강이씨(驪江李氏)의 집성촌이다.

두 씨족 입향조(入鄕祖)의 처가마을이다. 그래서 외손(外孫)이 발복한 마을로
통한다.
손소(孫昭:1433~1484)는 맨 처음 이 마을에 들어온 류복하(柳復河)
의 무남독녀와 결혼한 후 처가 재산을 상속받아 청송에서 이곳으로 이주했다.

이번(李蕃:1463~1500)은 손소의 장녀와 결혼, 영일에서 옮겨와 대대로 살았다.
지금은 150가구 가운데 82가구가 이씨, 18가구가 손씨, 타성바지가 50호다.



‘勿’ 자 획순으로 제1획 중간 등성이 흥(興)자 모양의 기와집이 향단(香壇)이고

끝자락이 관가정(觀稼亭)이다. 가장 긴 2획은 좌청룡이자 안산(案山)이 되는데

성주산과 방간산까지 이어져 마을 앞을 감았다.
제2획이 시작하는 곳에서
내려온 제3획 능선에는 여강이씨 대종가인 무첨당(無添堂)이 있다.

제4획에 서백당(書百堂)이 자리 잡았다. 양동마을의 중심이다.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1463~1529)과 문묘에 배향된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은 손씨와 이씨,
두 가문이 자랑하는 인물들이다. 숙질(叔姪) 간인 두 사람은 서백당의 산실(産室 : 해산방)에서 태어났다.
마을의 중심자리인 서백당 안채 맨 오른쪽 방은 세 인물이 태어난다고 해서 삼현지지(三賢之地)로 불린다.

시집간 딸이 해산하기 위해 친정에 와도 절대 이 산실은 허락하지 않는다.

부정탈까봐 방문객에게도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세 번째 인물을 기다려서다.



양동마을의 세계유산(World Heritage) 가치는 크다.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마을 유형인 씨족마을 중에서 가장 오래 되었고,

터를 잘 잡아 기능과 경관 측면에서 정주환경이 완전하다.
이런 외형적 요소에
필적할 만한 정신적 유산과 가치는 무엇일까.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지만 정신적 유산과 가치는 결코 유네스코가 보존해주지 못한다.
마을회관에서 보존위원장과 이장을 만난 다음, 문화해설사 이지휴(61)씨의 안내로 골골을 누볐다.

10년 전 서울생활을 접고 귀향한 그의 다채로운 홍보활동은 매우 열정적이다.
걷고 또 걸어도 가파른 골목길은 얽히고설키고 새로운 가옥들이 숨었다가 나타난다.
작은 산속마을이지만 하루 만에는 절대로 다 답사할 수 없는 곳이 양동이다.

양동의 비밀은 어쩌면 이곳에 태를 묻은 이들도 끝내 다 캐내지 못할 것 같다.



얼마 전, 유서 깊은 향단에 돌아와 회재와 그의 아우 농재(聾齋) 이언괄의 각별한 형제애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출판을 준비 중인 이욱(52)씨는 할아버지들의 유훈을 조용히 실천하는 후손이다.
회재가 강계에 유배되자, 그의 아우 농재는 아픈 몸을 이끌고 험로로 형을 찾았다가 고향에 돌아온 직후 세상을 뜬다.
비통한 회재는 유배지에서 ‘세세토록 형제 되어 이생에서 못다 한 인연 내생에서 다시 맺어 이별 없이 살아보자’ 는 제문을 적어 보낸다.
퇴계와 율곡의 선하(先河)인 성리학자
회재(晦齋)의 인간적인 면모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마을은 외형적 보존이 아주 잘된 곳입니다. 정부 지원을 받아 하드웨어는
잘 지켜내고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존재 이유와 가치를 되찾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우리 마을이, 또 저 같은 종손이 국가와 사회에 무엇을 반대급부로 돌려줄 수 있는지 많이 고민해요.
단지 관광서비스 차원에서 그친다면 30년도 못 가서 빈 껍데기가 될 겁니다.”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흥선대원군의 편액이 걸린 무첨당 제청(祭廳)마루에서 만난
한국국학연구원 이지락(43) 객원연구원은 신중하면서도 열린 사고로 손님을 맞았다.
회재의 17대손인 그는 선인들이 왜 매화를 예찬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뜰 앞의 매화를 계속해서 지켜보다가 이른 봄날, 막
꽃망울을 터뜨리는 광경을 보고
고통과 생성의 비밀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주역 복(復)괘에서 말하는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의 순간을 체험한 것이다.



“종손은 세상사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는 게 행동철학입니다. 종가 보존을 위해서지요.
종손 1대가 자신의 생각을 곧추 펼치면 3대가 고생합니다.
그래서 석묵(錫默) 고조부께서는 한·일 강제병합이 되자,
매일 아침 홧술로 소주 한 종발씩 들이켜다가 이듬해에 생을 마감했지요.
이런 시대를 살면서 취하지 않으면 무엇 하느냐고요. 독립운동을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겁니다.”



조선 전기 씨족마을의 전형, 양동마을은 신비한 지리적 여건과 다채롭고 짜임새 있는 전통가옥으로 세계인을 부른다.
중장비를 동원하여 땅의 원형을 지워버리고 세운 주택단지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잃어버린 이상향 같은 곳이다.

※ 공동취재: 류재백 교수·대구 한의대

- 중앙일보 김종록 객원기자·작가 2010.08.01










양동마을
















하회마을









 



‘안동 하회’ 마을 이야기…







낙동강이 섬 모양으로 동 · 남 · 서쪽을 감싸 돌고 있는 독특한
지리적 형상이
손잡이 달린 숯불 다리미와 흡사한 하회마을은 전국 십승지(十勝地) 중 하나로 연화부수형 천하길지로도 일컬어 진다.



원래 하회마을의 터줏대감은 고려 중엽 맨 먼저 정착한 허씨 문중이라고 한다.
그 뒤 여말선초 공조전서 벼슬을 지낸 풍산 유씨 유종혜가 입향(入鄕)하면서 600여년 전통을 잇는 민속마을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마을을 구경하다 보면, 가옥들의 고풍스런 한적한 멋스러움들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가옥들의 방향이 동서남북을 향하여 제각각인 것도 현대라는 시간개념들을 사라지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 곳이 천하길지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 많았던 병란들의 참화가 비켜 간 것은 물론이고, 머나 먼 이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까지도 다녀갔으니 말이다.
그 뿐이가, 영화 ‘스캔들’과 드라마 ‘황진이’ 촬영지인 옥연정사까지 그 멋스러움을 자랑하고 있으니.
(그러나 하늘이 내리는 사람은 길지도 필요없나 보다. 서애 유성룡은 여기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의성에서 태어났다)



유교의 원형이 그대로 살아있는 도시 안동.
조선 문화가 이렇게 잘 보존된 지역이 또 있을까?

하회마을, 하회탈, 하회별신굿탈놀이, 도산서원, 병산서원, 봉정사, 제비원,
오천유적, 예안향교,
그 숱한 문화적 충격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하회마을 들머리에는 흥겨운 놀이마당이 신명나게 펼쳐진다.

그 질펀한 대사들을 음미하면 화회마을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백정: 셋님, 소 불알을 머그만 양기에 억시기 좋으이 데이

선비: 머라꼬, 양기에 좋다꼬. 음- 그라만 내가 사지

양반: 허허, 야가 아까 날보고 먼저 사라꼬 켓스이께네 이건 내 불알일세

선비: 아니, 이거는 내 불알일세

백정: 아이쿠, 내 불알 터지니더

할미: 쯔쯔쯔, 소 불알 하나 가지고 양반은 지 불알이라 카고,
선비도 지 불알
이라 카고, 백정놈도 지 불알이라 카이께네 대관절 이 불알은 뉘 불알이로?








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제88호)


겸암정사(중요민속자료제89호)



높이 64m인 부용대 정상에 오르면 물에 떠 있는 연꽃과 같은 지형이라는 하회마을 전경을 볼 수 있다.

 

부용대 좌우에 옥연정사, 겸암정사가 있다.
옥연정사는 1586년(선조 19년) 서애 선생이 평소 가깝게 지내던 탄홍(誕弘)스님의 도움으로 지어 문중 자제의 교육과
찾아오는 손님들과의 담론을 나누던 서애 유성룡(1542∼1607)의 별서로 부용대 우측 아래쪽에 동남으로 향하고 있다.








하회마을 서편에서 마을을 돌아 굽이치는 낙동강, 하회마을을 내려가 보며 비경을 연출하고 있는 부용대 좌측 소나무 숲속에 남동향을 보고 서 있는
겸암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의 맏형인 겸암 류운룡(1539~1601)이 1567년(명종 22년)에 학문 정진과 제사 양성을 목적으로 지은 정사이다.
정사에서 내려다보면 강건너 모래사장과 송림 그리고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애는 정계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서 기거하며 당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고 전란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세를 경계하는 ‘징비록’(국보 132호)을 집필했다.








충효당(보물 제414호)



서애 유성룡 종가 충효당은 하회마을 안에서도 용맥이 내려와 멈춘 곳에 지어졌다.

충효당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손자인 졸재 유원지(1598∼1674)가 짓고, 증손자인 눌재 유의하(1616∼1698)가 확장 수리한 것이다.
행랑채는 8대손 일우 유상조(1763∼1838)가 지은 건물로 대문과 방, 광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대청에 걸려 있는 ‘충효당(忠孝堂)’ 이라고 쓴 현판은 명필가였던 허목(1595∼1682)이 쓴 것이라고 한다.
비교적 지을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조선시대 민가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정동향 대문 앞에는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곳을 방문해 심은 주목이 잘 자라고 있다.
의성에서 태어난 서애가 성장기를 보내고 벼슬길을 내던진 뒤 분을 삭이며 만년에 은거한 곳이다.








양진당(보물 제306호)



양진당은 겸암 유운룡(1539∼1601)의 집으로 매우 오래된 풍산 유씨 종가이다.
입암 유중영(1515∼1573)의 호를 빌어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유중영은 유운룡의 아버지이다.
양진당은 유운룡의 6대손 유영(1687∼1761)의 어릴 때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규모는 앞면 4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오른쪽 3칸은 대청, 왼쪽 1칸은 온돌방으로 바깥 주위에 툇마루와 난간을 둘러 마치 누(樓)집과 같은 인상을 주며 대청에는 문을 달아 3칸 모두 열 수 있게 하였다.
건물 안쪽 천장은 지붕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한석봉이 쓴 ‘양진당(養眞堂)’이란 당호와 함께 여러 현판들이 걸려 있다. 건물 안쪽 일부 재료를 만든 수법이 뛰어나고,
일반 주택으로는 제법 규모가 큰 조선시대 별당건축물 중 하나이다.









북촌택(중요민속자료 제84호)








만송림



하회마을까지 와서 안 보고 가면 섭섭한 곳. 서애 친형인 겸암(謙菴) 유운룡
(柳雲龍·1539∼1601)이 식재한 소나무들이다.
마을 서쪽에서 불어오는 살풍
을 막아 기를 보호하고 모래 바람을 막기 위해 1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는

‘만송림’이다. 입향조인 전서공, 또는 서애가 식수했다고도 전해지기도 한다.







찾아가는 길

승용차편: 안동시내에서 예천방면 국도로 약 30분 소요,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톨게이트에서는 역시 예천방면으로 약 15분 소요











입향조 전서공이 이 마을에 정착하는 데는 남모를 텃세와 고초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집을 지으려고 주초(柱礎)를 세울 때마다 까닭 없이 무너지고, 우물을 파면 불순물이 섞여 먹지 못할 물이 치솟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전서공은 기이한 꿈을 꾸게 된다. 도인 스님 한 분이 나타나
“공덕을 쌓지 않고서는 이곳에 자리 잡을 수 없다” 고 현몽하고는 사라졌다.
스님의 권유대로 먼저 살던 마을에 가 수년간 덕을 쌓은 후 다시 와
터를 잡으니 무탈했고 그 뒤부터 많은 유씨가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풍수지리학의 최종 가르침이라 할 수 있는 적덕지가(積德之家·덕을 쌓는 집안에) 필유여경(必有餘慶·반드시 경사스러운 일이 있다)의 큰 뜻이 담겨져 있다.



유성룡은 퇴계 이황의 문인이며, 김성일과 동문수학하였다.

명종 21년(1566)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예문관검열, 공조좌랑, 이조좌랑 등의 벼슬을 거쳐 삼정승을 모두 지냈다.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알고 장군인 권율과 이순신을 중용하도록 추천하였고, 화포 등 각종 무기의 제조, 성곽을 세울 것을 건의하고 군비확충에 노력하였다.
또한 도학·문장·글씨 등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그가 죽은 후 문충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안동의 병산서원 등에 모셔졌다.



징비록을  저술한 시기는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유성룡이 조정에서
물러나 향리에서 지낼 때 전란 중의 득실을 기록한 것이다.
내용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과의 관계, 명나라의 구원병 파견 및 제해권의 장악에 대한 전황 등이 가장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필사본『징비록』은 조수익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필자
손자의 요청으로 인조 25년(1647)에 16권 7책으로 간행하였다.
또한 이것은 숙종 21년(1695) 일본 경도 야마토야에서도 간행되었으며, 1712년에는 조정에서『징비록』의 일본유출을 금할 정도로 귀중한 사료로 평가 받았다.
이 책은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난중일기』와 함께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하회마을일대

※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31일(한국은 8월1일) 등재된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마을유형인
씨족마을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됐고, 또
경관이 가장 탁월한 곳으로 꼽힌다.
씨족마을이란 장자 상속을 기반으로 같은 성씨(姓氏)의 혈연집단이 대를 이어 모여 사는 유교문화 특유의 마을을 말한다.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유씨가, 경주 양동마을은 월성손씨와 여강이씨가 모인
씨족마을이다.



조선 전기에 형성된 두 마을은 '개척입향' (開拓入鄕)과 '처가입향' (妻家入鄕)이라고 해서 씨족마을이 만들어지는 두 가지 전형적인 모습을 각각 대표한다.
하회마을이 새로운 살 곳을 찾아 이주해 정착한 개척입향의 사례라면, 양동마을은 혼인을 통해 처가에 들어와 살면서 자리를 잡은 처가입향의 사례가 된다.

이후 수백년을 거치면서 대표적인 양반마을인 두 마을 문중 간에 빈번하게 혼인이 이뤄지기도 했다.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 (Historic Villages of Korea : Hahoe and Yangdong) 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두 마을은
씨족마을이라는 점을 빼고도 공통점이 많다.



◇ 풍수 길지(吉地)에 자리잡아 자연과 조화된 경관



먼저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모두 풍수사상에 따른 길지(吉地)에 자리를 잡았다.
하회마을은 물이 마을을 섬처럼 둘러싼 형태로, 연꽃이 물에 떠 있는 모습과 같다는 연화부수형 (蓮花浮水形)의 명당이다.
하회 (河回)마을이라는 이름도
강 (河)이 마을을 감싸고 돈다(回)는 뜻을 담았다. (위 左 사진참조)

양동마을은 여러 작은 골짜기가 나란히 흐르는 이른바 '물(勿)' 자 형
터를 차지한다. (위 右 사진참조)



이들 마을은 이중환의 '택리지' 에서 길지(吉地)로 언급됐고,
일제시대 일본
학자인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저서 '조선의 풍수' 에도 '삼남의 4대길지' 에 포함됐다.

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풍수의 원칙을 따라 구조화했기 때문에 지형과 조화하고 자연과 일체화한 경관을 이루며,
'농경지-거주지-유보지' 등 생산공간-생활공간-의식공간으로 나뉘어 유교적 의식이 강조되는 독특한 특징도 갖췄다.



특히 의식공간에는 정자 등을 세워 자연을 조망할 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 사교의 장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지은 시나 기문 등을 새긴 목판도 아직 남아 있다.



◇ 오랜 역사 속 문화재도 많아



두 마을의 역사가 600여 년에 이르는 만큼 중요한 문화재도 많이 소장한다.

하회마을에 있는 풍산유씨 종가인 양진당과 서애 유성룡의 생가인 충효당,

양동마을에 있는 이언적의 향단(香壇)과 독락당ㆍ관가정ㆍ무첨당 등 건물 6채가 현재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이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건축물만도 하회마을에 9건, 양동마을에 12건이 있을 정도다.
한 마을에 이렇게 많은 국가지정문화재가 있는 것은 유례가 없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족보와 문헌자료도 풍부하다.
하회마을에 있는 유성룡의 '징비록' (국보132호) 과
양동마을의 금속활자본
'통감속편' (국보283호) 등은 각각 역사적ㆍ인쇄사 측면에서 중요하다.
양동
마을의 손씨가문이 보관하는 '손소 영정'(보물1216호) 역시 15세기 말에 그린 초상화로 큰 의미가 있다.
그 밖에도 개인 사이에 주고받은 간찰과 매매 계약
문서, 관혼상제 관련 문서, 상속이나 분쟁과 관련된 문서 등도 잘 보관돼 있다.



무형문화유산도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두 마을에서 모두 전통적인 방식의

관혼상제가 이어진다는 점은 왕실의 종묘제례에 비길 만한 소중한 가치가 있다.
하회마을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중요무형문화재 69호)는 빼놓을 수 없으며,

이에서 사용하는 '하회탈 및 병산탈' (국보 121호)도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 밖에 줄불놀이와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도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마을 전체를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각각 중요민속자료 122호와 189호로 지정된 이들 두 마을은,
단순한 문화유산들의 조합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살아있는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 세계 속의 하회ㆍ양동마을



하회마을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필두로, '아버지 부시' 와 '아들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자가
각각 차례로 방문하면서 세계 정상급 귀빈 방문 코스로 유명해졌다.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은 하회마을에서 생일상을 받고, 한국 관습에 따라 신발을 벗고 방 안에 들어가는 모습이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면서 하회마을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

이에 지금도 하회마을에는 영국 여왕에 대한 기념관이 세워져 있을 정도다.



양동마을도 중국과 캐나다 등 여러 나라 방송에서 영상취재를 올 정도로
'국제적인 인기'를 누린다.



이와 같은 공통점을 고려해 문화재청은 두 마을을 한데 묶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했고,
세계유산위원회도 이를 고려해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보류' 권고를 뒤엎고
등재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연합뉴스)













 

‘안동 하회 · 경주 양동’, 세계문화유산 등재…





한국의 대표적 역사마을인 ‘안동 하회마을’ 과 ‘경주 양동마을’ 이 2010년

8월 1일 브라질에서 열린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결정되었다.



문화재청은 지난 7월 31일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34차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 와 양동' 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고 2일 밝혔다.



세계유산 제도

국제교육과학문화기구연합인 유네스코가 ‘세계유산협약’ 에 의거해
세계적인 가치가 인정되는 인류공동의 유형유산을 심사해 지정하는 것으로 문화와 자연,
복합유산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유산 현황은 문화유산 689건을 비롯해
자연유산 176, 복합유산 25 등 총 890건이 등재된 상태다.



이 마을이 등재된 추진경과에는 지난98년 하회와 2001년 양동에 각각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하는 한편 2008년 3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두 마을을

동반 등재추진 결정하고, 이듬해 1월에 관계기관 간 업무협약 및 등재신청서

제출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6월에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총회 참석해
홍보와 9월에 ICOMOS 현지실사를 한데이어 12월에는 ICOMOS 검토에 따른 보완자료 요청해
올해 2월 ICOMOS 보완자료 제출했다



유네스코는 등재 결의안에서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 와 양동’ 은

주거 건축물과, 정자, 정사(精舍 : 학문과 휴식의 공간), 서원 등의
전통 건축물들의 조화와 그 배치 방법 및 전통적 주거문화가 조선시대의 사회 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이 오랜 세월 동안 온전하게 지속되고 있는 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또한 문집, 예술작품과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학술 및 문화적 성과물과 공동체 놀이, 세시풍속 및 전통 관혼상제 등
주민들의 생활과 신앙에 관계된 무형유산이 세대를 이어 전승되고 있는 것도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등재 결의안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 와 양동’ 의 지속가능한 보존과 발전을 위해
마을과 주민의 수용 능력을 고려한
관광관리 계획을 수립·시행할 것 등을 함께 권고했다.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 의 세계유산 등재로
우리나라는 이제 총 10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특히 이번 세계유산 등재는 2009년 조선왕릉의 경우와
달리 자문기구의 권고가
등재 보류(Refer)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사전 준비와 관계기관과의 긴밀한 협조,
21개 세계유산위원국에 대한 지지
교섭 활동 등을 통해 어렵게 이루어낸 결실이기에 그 의의가 더욱 크다" 고
설명했다.










 

 하회 · 양동마을 경사 …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모든 경사(慶事)에는 축하와 함께 뒷감당을 잘할 의무가 따르게 마련이다.

해인사 장경판전 · 종묘 · 조선왕릉 등 기존 9곳에 이어, 10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조선시대 양반 씨족마을인 두 곳은 이제 한국을 넘어 전 인류가
보존
해야 할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앞으로의 과제는 조상들이 남겨준
보물들을 잘 지키고 가꾸는 일이다.
지자체와 지역 주민의 힘만으로는 벅차다.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



하회마을은 각종 건축물 · 관혼상제 · 탈놀이에서 고서적 · 문서 · 그림에
이르기
까지 마을 전체가 문화재 덩어리다.
석굴암 · 불국사, 경주역사지구 등 이미 2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경주는 조선 전기에 형성된 양동마을을
새로 선보임으로
써 ‘경주 = 신라’ 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덤까지 누리게 됐다.
그러나 세계유산 등재에는 유산의 철저한 보존 · 유지와 개발 제한이라는 대가가 뒤따른다.
자칫하면
교량공사를 함부로 벌였다가 지난해 세계유산 자격을 박탈당한 독일 엘베 계곡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다.



두 마을을 세계유산의 격(格)에 걸맞은 문화관광지로 발전시키는 동시, 주민 이익도 극대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하회마을이 문화재 훼손을 막고 관광 편의를 꾀하는 차원에서 오는 15일부터 입장객을 하루 5000명으로 제한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안동시내에 특급호텔이 단 한 곳도 없는 등 외국 관광객에게 소개하기조차 부끄러운 관광 인프라는 시급히 보완해야 할 것이다.

하회 · 양동 마을에 600년째 전해 내려오는 조선 선비문화를 현대적인 감각의 ‘스토리’ 로 재탄생시키는 등 다양하고 참신한 관광 콘텐트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정부의 정책적인 뒷받침을 촉구한다.



하회 · 양동마을 말고도 남한산성, 울산 대곡천 암각화군, 창녕 우포늪, 순천 낙안읍성, 비무장지대 등
지자체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곳이 꽤 많다.
두 마을의 경사가 모범적인 세계유산 관리 사례로 이어져 다른
지자체들에도 커다란 자극이 되길 바란다.
- 중앙일보 사설 2010-08-03





 

 안동 하회, 경주 양동마을 · 유네스코 세계유산




   “전통 건축물 자연과 조화 … 조선시대 문화 잘 보여줘”

    세시풍속 전승도 높게 평가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1일(한국시간)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34차 회의에서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확정했다.
지난해 조선왕릉 40기가 한꺼번에 등재된 데 이은 경사다. 이로써 한국은 열 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WHC는 “가옥과 정자 · 정사(精舍 : 학문과 휴식의 공간) · 서원 등 전통 건축물의
조화와 배치 방법 및 주거문화가
조선시대의 사회 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며
“오랜 세월 동안 온전하게 지속되고 있는 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 고 밝혔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학술적·문화적 성과물, 공동체 놀이, 세시풍속 및 전통 관혼상제 등이 전승되는 점도 높게 평가했다.








세계문화유산에 새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위)과 안동 하회마을(아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한옥과 초가가 주변의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아늑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나뭇가지처럼 큰 길에 작은 길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집과 집을 잇는다. [신동연 기자, 안동시 제공]






   하회 · 양동마을은 지금 입장료 깎아주고 기념품 주고
… 잔칫집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1일 하루 잔치 분위기였다.

하회마을 입구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확정’이란 축하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하회마을관리사무소는 입장료 50%를 감면하고 축하 탈춤공연을 벌였다.

오전 11시엔 권영세 안동시장 등 20여 명이 마을 입구에서 입장객

1000여 명에게 하회탈 목걸이를 기념선물로 전달했다.



30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마을 안 골목길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붐볐다.

서울에서 온 박나영(23·여·광운대3)씨는 “경주를 거쳐 하회마을로 왔는데
두 지역의 민속마을이 세계문화유산이 됐다니 반가운 우연” 이라며
“이제는 한옥 한 채가 그 전과 달라 보인다” 고 말했다. 마을 가장 안쪽에 자리잡은
충효당에서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14대 종손 류영하(84)씨를 만났다.
류씨는 “평생의 소원 하나가 마침내 이루어졌다” 며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30년 전 하회
마을보존회를 처음 만들고 20년 전부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해 왔다.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양동마을. 이날 마을회관 앞에서 한바탕 풍물패의 공연이 펼쳐졌다.
이 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자축하는 행사다.
주민들은 “축하한다. 잘됐다” 는 인사말을 나누는 등 마을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유네스코 실사단 방문 때는 월성 손씨 집안의 종부(宗婦)인 이정희(71)씨가 양반가 최고 밥상인 9첩 반상을 실사단에 대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마을의 여강 이씨 종손인 이지락(42)씨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면서도
“어떻게 하면 전통문화와 정신을 알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출신인 조선시대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의 17대
종손이다.
양동마을에는 연간 20만∼25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 가운데 10% 정도가 외국인이다.

- 중앙일보 안동·경주=송의호·홍권삼 기자 2010.08.02




◆ 자연과 어우러진 조선 전기 씨족마을 =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모인 씨족마을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해 조선시대 명망이 높았다.
하회는 물이 마을을 섬처럼 둘러싸는 ‘연화부수(蓮花浮水)’형,
양동은 작은 골짜기가 여럿 나란히 놓인 ‘勿(물)’자형 지형에 자리잡은 풍수 길지다.
마을 내의 길은 자연지형과 물길을 따라 조성됐다. 건축물 역시 지형에 조화돼 자연과 어우러졌다.



15~16세기에 지은 두 마을의 종가를 포함해 하회에 보물로 지정된 가옥이 2건, 양동에는 4건이 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건축물도 하회 9건, 양동 12건으로 조선시대 건축사의 귀중한 자료다.
국보 132호 류성룡의 ‘징비록’(하회마을), 국보 283호인 금속활자본 ‘통감속편’(양동마을) 등 기록유산도 풍부하다.
족보, 마을의 재산과 관련된 문서, 각종 문집, 계약·소송 등에 대한 문서, 관혼상제 관련 문서와 간찰(편지) 등이 남아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등 무형유산도 예술적 가치가 높다.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하회마을에 방문해 한국식 생일상을 받으면서 세계인의 이목을 끈 바 있다.



◆ ‘보류’에서 ‘등재’로 =

당초 WHC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두 마을에 대해 ‘보류(refer)’ 의견을 제출했다.
행정구역이 다른 두 마을을 통합 관리하는 체계가 없다는 점을 우려해서다. WHC는 통상 ICOMOS의 의견을 따른다.
그러나 문화재청과 경상북도가 4월 두 마을의 통합 관리체인 ‘역사마을보존협의회’를 구성함으로써 극적으로 등재를 성사시켰다.
문화재청은 “주민들이 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 세계유산 (World Heritage) =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1972년 채택한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 에 따라
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후세에 전수해야 할 탁월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유산.
문화유산·자연유산·복합유산으로 구분된다.
전 세계적으로 890여 건의 세계유산이 등재됐으며, 제34차 회의에서 총 39건을 심사해 추가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 중앙일보 이경희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2010.8.2





















 

‘하회 · 양동’ 마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 주역 2인






류성룡 14대 종손 류영하옹


하회마을 지키기 30년, 류성룡 14대 종손 류영하옹



“세상 살면서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이제 그 중 하나를 해냈소.”



8월 1일 오후 3시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
충효당을 찾았을 때
서애 류성룡(柳成龍·1542∼1607)
선생의 14대 종손 류영하(84) 옹은 이렇게 말했다.

하회마을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서애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이순신, 권율 장군
등 인물을 등용해 전란을 수습한 명신이다.



류 옹은 “30년 전쯤 내 손으로 하회마을보존회를 처음 만들고,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보존 가치를 설명한 게 시작이었다” 고 유치과정을 회고했다.

당시 새마을 사업으로 하회마을의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려 할 때는 제지에

나섰다. 하회마을 입장료를 받기 시작한 것도 그때다. 보존회는 10년 정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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