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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 백석

2010.11.12 11:04

arcadia 조회 수:521 추천:16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 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여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내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학풍,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1948년>





※ 삿 → 삿자리.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 쥔을 붙이었다 → 세를 들었다

※ 딜옹배기 → 둥글넙적하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질그릇

※ 북덕불 → 짚이나 풀 따위를 태워 담은 화톳불

※ 나줏손 → 저녁 무렵





바흐 / 에어 (g선상의 아리아)







평북 정주하면 소월이 있고 백석(白石·1912~1995)이 있다.

1912년 평북 정주(定州) 출생. 본명 기행(白夔行)

오산중학, 일본 도쿄 아오야마(靑山) 학원 졸업

1935년 시 ‘정주성(定州城)’ 조선일보에 발표 등단

1936년 유일한 시집 <사슴> 간행

해방 이후 고향에 머물다 1995년 별세.







1988년의 월북시인 해금 조치 이후
'백석 붐' 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백석 시인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현대시에서 드물었던 북방 정서와 언어의 한 정점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그의 절친한 친구가 소장하고 있다가 1948년에 발표했다.
해방 공간에 발표된 백석의 마지막 작품이다.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 집에 세 들어 산다(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라는 제목의 뜻에
주목해볼 때 친구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편지 형식으로 보낸 고백시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그래서일까. 소리 내어 읽노라면 그가 나직이 말을 건네는 듯

'가슴이 꽉 메여 오' 고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 이곤 한다.



'나' 라는 맨 얼굴의 시어나 '-이며'  '-해서'  '-인데' 와 같은 나열 혹은

연결어미나  '것이었다' 라는 종결어미 등의 반복이 내뿜고 있는 독특한

산문적 리듬이야말로 이 시의 백미다.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
처럼 연하여 쌔김질' 한다는 직유며,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 다는 직설이며,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 다는 역설
등 사무치지 않는 구절이 없다.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기까지의 의연한 회복 과정이
유장한 리듬과 어우러져 한 편의 인생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1942년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즈오는 기자와 교사생활을 작파하고 만주

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히 살고 있던 그를
찾아간다.
그는 가즈오에게 '나 취했노라' 라는 시를 헌정했다. 20년 후

가즈오는 "파를 드리운 백석./
백이라는 성에, 석이라고 불리는 이름의
시인./
나도 쉰세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 ('파') 라는 시를 그
에게 헌정했다.
파를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을 그를 생각한다.
쌀랑쌀랑 소리를 내며 싸락눈을 맞는다는, 이름만으로도 가슴 뻐근한 갈매나무를 생각한다.



백석은 1939년경에 만주로 가서 신경에 살다가 1040년경 잠시 서울을 다녀갔으며
1941년경에는 생계가 어려워 측량서기도 하고 소작인 생활도 하다가 독립과 더불어
신의주에 와서 무직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총32행의 길고 유장한 가락을 가진 독백체인 이 시는 그의 이러한

방랑과 궁핍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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