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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스트 ‘두 개의 전설’ · 프란치스코의 기적을 소리로 그려내다
새들에게 설교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그린 아시시 대성당의 프레스코畵. 지오토, 1299
프란치스코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생태계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되었다.
… 성인 프란치스코의 삶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그는 자연계와 교감하는 신통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프란치스코가 동료 수사들과 길을 걷고 있었는데 길가의 나무에 새가 가득 앉아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수사들에게 “제가 자매들인 새들에게 설교하는 동안 잠시 기다려 주세요” 하고는
새들에게 가서 설교하였다. 새들은 프란치스코 주위로 날아와서 설교가 끝날 때까지
한 마리도 날아가지 않고 조용히 들었다고 한다.
    리스트 ‘두 개의 전설’ Liszt, Deux Legendes, S.175
     Franz Liszt (1811-1886)
     Tamas Vasary, piano / Live in Budapest, 1982
백건우 Kun woo Paik - Liszt, Deux Legendes No.1
백건우 Kun woo Paik - Liszt, Deux Legendes No.2
리스트 ‘두 개의 전설’… 프란치스코의 기적을 소리로 그려내다
2014년 8월 16일 오전 10시쯤 시청에서 경복궁쪽을 향하면 광화문을 배경으로
피아니스트 백건우(세례명 요셉마리)가 교황 헌정곡으로 프란츠 리스트의 ‘두 개의 전설’ 중
첫째 곡인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8분간 연주하면 덮개가 없는
무개차(오픈 카)에 올라탄 붉은 제의 차림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아르헨티나 가톨릭교구장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 추기경은 2013년 3월 바티칸으로 떠났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건강상의 이유로 2월말 사임해 새 교황을 뽑아야했기 때문이다. 생존한 교황의 사임은 15세기 이래 없었던 일로 매우
이례적이었다. 3월 12일부터 진행된 콘클라베(교황선거)는 쉽게 결말이 나지 않았다.
이틀간 다섯 번의 투표가 끝난 뒤에야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은 바로 그,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었다.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출신,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주 출신 교황이었다.
바티칸 현지에서도, 세계의 유력 언론도 새 교황 후보군에 그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없었다. 아마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의 바티칸행은 결과적으로 영원한 이주가 되었다.

교황은 즉위명으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했다.
출생한 도시 이름을 붙여 ‘아시시의 프란치스코(1181 또는 1182~1226)’라 불리는
이 성인은 사제 서품을 받은 적도 없지만 청빈, 겸손, 소박함의 대명사로 가톨릭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교황 즉위명으로 프란치스코를
고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추기경 신분으로 작은 아파트에 살며
요리도 직접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한 아르헨티나에서의 생활이 프란치스코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빌헬름 켐프가 연주한 ‘두개의 전설’ 음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매우 정력적인 모습으로 그린 자켓이 인상적이다.

성인 프란치스코의 삶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그는 자연계와 교감하는 신통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프란치스코가 동료 수사들과 길을 걷고 있었는데 길가의 나무에 새가 가득
앉아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수사들에게 “제가 자매들인 새들에게 설교하는 동안 잠시
기다려 주세요” 하고는 새들에게 가서 설교하였다. 새들은 프란치스코 주위로 날아와서 설교가 끝날 때까지 한 마리도 날아가지 않고 조용히 들었다고 한다. 이 전설 덕분인지
프란치스코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생태계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되었다.

가톨릭 역사에는 또 다른 성인 프란치스코의 전설이 전해진다.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는 시칠리아섬으로 건너가기 위해 이탈리아 발끝
메시나에서 배를 타려고 했다. 그러나 주머니에는 배 삯이 없었다. 사공이 말했다.
“그대가 성인이라면 물 위를 걸을 수 있겠지.” 프란치스코는 망토를 벗어 물 위에
펼친 뒤 일부를 돛으로 세우고 지팡이로 지탱해 건너편으로 무사히 건너갔다.

이 전설들이 장년의 프란츠 리스트(1811~1886)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리스트는 1861년에 50세를 넘겼다. 무대에 오르기만 해도 여자들이 까무러치던 피아노 비르투오소의 추억은 옛일이 되었다. 명예와 자식들을 잃고 새로운 결혼도 좌절됐다.
속세의 행복이 덧없다고 생각했는지 리스트는 종교적 열정에 빠져 들었고
옷은 검은 사제복만 입었다. 1863년에는 수도회에 입회했는데 이 시기에
두 성인의 전설을 주제로 한 피아노곡 ‘두 개의 전설’을 쓰게 되었다.

두 곡은 모두 10분 남짓 한 짧은 음악이지만 리스트 특유의 기교와 색채감이 넘친다.
소리로 그린 그림 같다. ‘새에게 설교하는 프란치스코’ 는 가지마다 새가 앉은 숲에
들어선 느낌이다. 빠르고 맑은 소리로 건반을 두드리는 트릴은 영락없는 새들의 지저귐
이다. 중간에 폭발하듯 부풀어 오르는 소리는 리스트가 느낀 종교적 희열이 아닌가 싶다. ‘물 위를 걷는 프란치스코’ 에서는 흔들리는 물결, 바다에 부는 거친 바람이
불안과 긴장을 고조시킨다. 위태롭게 물 위를 걷는 성인이 보이는 듯하다. 이윽고
평화로운 선율이 흐르면 프란치스코가 무사히 물 건너편에 도착했음을 알게 된다.

이 곡의 가장 권위 있는 해석자는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1895~1991)다.
켐프는 흔히 정석적인 베토벤 해석자로 알려져 있고 모차르트 · 슈베르트 · 슈만 등
독일계 작곡가의 곡도 탁월하게 연주한다. 그러나 그는 정신적으로 프란츠 리스트의
숨결을 이어받은 사람이다. 어려서 사사한 스승이 리스트의 사위였던 한스 폰 뷜로우의 애제자 하인리히 바르트였고 젊어서 존경한 피아니스트가 리스트의 제자인 부조니였다. 켐프는 ‘두 개의 전설’ 을 몇 차례 녹음했는데 누구보다 탁월하다.

그의 음반 중 1970년대에 DG에서 녹음한 게 연주와 음질 모두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53년 데카에서 낸 것이다. 60년을 훌쩍 넘긴 녹음이라 음질이 열악하고
사이즈도 작은 10인치 LP다. 하지만 젊은 시절 켐프의 싱싱한 힘을 느낄 수 있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매우 정력적인 모습으로 그린 자켓이 인상적이라 애지중지한다.

‘두 개의 전설’ 을 들을 때 내가 떠올리는 프란치스코는 새에게 설교하거나
물 위를 걷는 성인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교황이다.
지난해 어이없는 참사를 당해 온 국민이 비탄에 젖어 있을 때 교황은 먼 곳에서
날아 와 넉넉한 품으로 우리를 보듬었다. 나도 먼발치에서 그분을 봤다.
서소문 천주교 순교성지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둥근 뒷모습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었다. 그날 이후 외신을 타고 들어오는 사진이나 TV에서 그 원만한 얼굴을 만나면
켐프의 음반을 꺼내 추억을 되새기듯 새의 지저귐을 듣곤 했다.

교황은 여러 외국어를 잘 하시지만 새에게까지 설교를 할 것 같지는 않고
육중한 몸무게 탓에 물 위를 걷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지중해를 떠도는 난민에 대한 대책을 누구보다 강력히 촉구하고
바티칸 주변 노숙자들을 위해 샤워시설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 중앙선데이 제428호 | 최정동 기자 |
리스트 ‘두 개의 전설’: 프란치스코의 기적을 소리로 그려내다 | 201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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