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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에 묻어온 묵향
2007.10.16 10:16
배꽃에 묻어온 묵향
이 용 애
오랜만에 공원을 향해 아침 산책을 나섰다. 며칠동안 비가 내린 후 개인 하늘은 가슴이 싸아 하도록 깨끗하고 싱그럽다.
공원 입구에 배꽃 나무(Flowering Pear)가 눈꽃을 뒤집어 쓴 듯, 하얀 꽃을 온몸에 소복이 담고 함빡 웃고 섰다. 바람이 살짝 스치자 호들갑스런 꽃잎들이 팔랑팔랑 공중에서 춤을 추며 아래로 내려간다. 그 순간 내가 어렸을 때, 하얗게 핀 매화꽃 화분 옆에서 단정한 모습으로 붓글씨를 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른봄 손수 정성 들여 가꾸신 매화꽃 향기가 살살 풍기는 방에서 붓글씨에 몰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묵향과 어우러져 어린 내겐 더할 수 없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십 오 년 전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할 겨를도 없이, 내 이민 살이 에만 골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운명하셨다는 비보를 받았다. 아침에 자리에 누우셔서 그날 저녁에 돌아가셨단다. 며칠 전에 보내주신 편지 답장도 아직 못 드렸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시다니....가슴이 천 갈래로 찢어지는 아픔 속에 흐느꼈다. 그 무렵 우리는 신청한 영주 비자가 도중에 잘못되어 어렵게 다시 수속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체류비자는 이미 끊겨 있었다. 아버지께서 운명하셨는데도 갈 수가 없는 처지였다.
산책에서 돌아온 나는 그 때의 서러움으로 젖어들어, 벽에 걸린 아버지의 친필 액자로 다가섰다. 이십여 년 전에 이 친필을 내게 보내 주셨다. 서울 근교에 있는 '아차산'에 친구분과 함께 올라서, 그 산의 역사적 배경과 경관을 묘사하고, 당신의 생을 마감하는 길목에서의 심경을 쓰신 글이다. 또 아버지께서는 외손주들에게 기초 한자(漢字) 이천 자를 써서 보내 주셨다. 한자로 손수 책을 엮어 '초정'(初程)이라는 이름을 붙인 책과 다섯 권의 노트에 나누어 쓰고, 마지막 책에는 한글로 된 명심 구 (銘心 句)도 몇 편 써 넣으셨다.
정성어린 아버지의 친필을 대하는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 하며 주체 할 수 없이 눈물이 솟아올랐다. 한 획 한 획 쓰시며 아버지는 우리가족을 다시 만날 날을 얼마나 고대하셨을까? 늘 걱정과 그리움의 멍을 남겨드린 이 불효 자식을 애타게 그리워 하셨을 테지.... . 또렷한 아버지의 글씨가 흐릿하게 어른거렸다.
어려서 나는 몸이 약해, 잦은 병치레로 부모님의 속을 태워 드렸다. 환절기엔 의례 감기는 도맡아서 앓고, 위가 약한데다 음식을 급히 먹는 버릇이 있어 체하기도 잘 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는 학질에 걸려 오래 앓았다. 하루는 멀쩡하고 하루는 오한과 고열에 시달렸다.
그런 와중에도 학교에 가겠다고 고집해서, 학교에서 오한과 고열로 떨고 있으면,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께서 급사의 자전거 뒤에 실어 집으로 보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육 학년 땐, 홍역을 심하게 앓은 후유증으로 폐렴에 걸렸다. 부모님은 고열과 호흡곤란으로 사경을 헤매는 내가 누운 자리에 홑이불로 포장을 치고, 그 안에서 물을 끓여 수증기를 쏘여주며, 꼬박 밤을 밝혀 나를 보살피셨다. 그 날밤 아버지는 내가 잘못 될 것 같다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뒤에 어머니가 얘기 해 주셨다.
커서 상급학교에 다닐 때, 시험이 임박해서 밤늦게 공부하노라면 아버지는 몇 번 씩 내 방문밖에 오셔서, 공부 그만하고 어서 자라고 타이르셨다. 공부보다는 내 건강을 더 염려 하셨던 아버지의 사랑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야속하게만 여겼던 철부지가, 후에 내 자식이 밤을 밝혀 공부할 때 그 아이의 건강이 염려되어 가슴을 조여 보고서야 깨닫게 되니, 때늦은 깨우침에 가슴이 메어진다.
아버지는 새벽 일찍 일어나 붓글씨를 쓰면서 하루를 시작하셨다. 봄을 시샘하는 눈발이 흩날리던 아침, 일년 내 정성을 들이신 매화꽃이 하얗게 핀 아버지 방으로 나를 불러, 향기를 맡아보라고 하셨다. 그 때 나는 꽃향기와 함께 방안에 은은히 흐르는 향긋하면서도 쌉쌀한 먹 냄새를 함께 맡으며 기분이 차분해 지는 것 같았다.
충주 대소원에서 몰락한 선비 집의 이대 독자로 태어난 아버지는, 열 여섯 살에 한 살 위인 어머니와 혼인해서 슬하에 오 남매를 두셨다. 위로 아들 형제를 보셨을 때는 독자를 면했다고 기뻐 하셨고, 내가 태어나던 날엔 삼 대 만에 얻은 귀한 딸이라고 좋아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청주 도립 사범학교를 졸업 한 후, 음성 금왕 보통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셨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신 아버지는 일본인 교장과 교사들의 조선 학생에 대한 비인도적인 처사에 맞서는 일이 잦으셨다. 그 일로 인해, 일 이년에 한번 씩 전근을 다니다가 결국은 교직을 박탈 당하셨다. 그 때 아버지는 그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건강에 결함이 있다는 생트집에, 어쩔 수 없이 억울하게 당해야만 하는 나라 없는 백성의 울분을 오랫동안 삭이지 못하고 힘들어 하셨다.
그로부터 일 년여 후 광복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기쁨은 남달랐다. 일본인들과 부딪혀 분노하고 좌절했던 교단이 아닌, 내 나라 글과 말을 마음놓고 가르칠 수 있는 교육 현장으로 복귀하셨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서울에서 고등학교 교단에 서시게 되었다.
교사 재직 시절에는 물론, 육십 오 세에 퇴직하신 후에도 새벽에 붓글씨 쓰는 일은 계속 되었고, 팔십 세로 돌아가시던 날 새벽까지 멈추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간혹 내게 먹을 갈라고 하실 때가 있었다. 반듯한 자세로 왼손을 오른손 팔꿈치에 받치고 온 신경을 붓끝에 모아, 심혈을 기울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이제야 한 획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붓글씨를 내게 남기신 뜻을 알 것 같다. 삶은 어떤 한 모서리라도 함부로 넘길 수 없음을 일깨워 주시려는 깊은 사랑에 목이 메인다. 책장 서랍에 고이 싸서 넣어둔, 아버지께서 남기신 여섯 권의 노트를 꺼내서 펼쳐 본다. 묵은 책 냄새 속에서 묵향이 가슴으로 훅 밀려온다.
내게는 이 친필 액자와 책이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이고 소중한 유산이다. 오늘 저녁에 딸아이가 돌아오면, 아버지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 때 십 오 년 전처럼 지금도 오갈 수 없는 먼 곳에 계신 아버지가 그립다. 가슴 저리게 그립다.
--< 문학세계 >98 겨울 --
이 용 애
오랜만에 공원을 향해 아침 산책을 나섰다. 며칠동안 비가 내린 후 개인 하늘은 가슴이 싸아 하도록 깨끗하고 싱그럽다.
공원 입구에 배꽃 나무(Flowering Pear)가 눈꽃을 뒤집어 쓴 듯, 하얀 꽃을 온몸에 소복이 담고 함빡 웃고 섰다. 바람이 살짝 스치자 호들갑스런 꽃잎들이 팔랑팔랑 공중에서 춤을 추며 아래로 내려간다. 그 순간 내가 어렸을 때, 하얗게 핀 매화꽃 화분 옆에서 단정한 모습으로 붓글씨를 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른봄 손수 정성 들여 가꾸신 매화꽃 향기가 살살 풍기는 방에서 붓글씨에 몰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묵향과 어우러져 어린 내겐 더할 수 없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십 오 년 전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할 겨를도 없이, 내 이민 살이 에만 골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운명하셨다는 비보를 받았다. 아침에 자리에 누우셔서 그날 저녁에 돌아가셨단다. 며칠 전에 보내주신 편지 답장도 아직 못 드렸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시다니....가슴이 천 갈래로 찢어지는 아픔 속에 흐느꼈다. 그 무렵 우리는 신청한 영주 비자가 도중에 잘못되어 어렵게 다시 수속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체류비자는 이미 끊겨 있었다. 아버지께서 운명하셨는데도 갈 수가 없는 처지였다.
산책에서 돌아온 나는 그 때의 서러움으로 젖어들어, 벽에 걸린 아버지의 친필 액자로 다가섰다. 이십여 년 전에 이 친필을 내게 보내 주셨다. 서울 근교에 있는 '아차산'에 친구분과 함께 올라서, 그 산의 역사적 배경과 경관을 묘사하고, 당신의 생을 마감하는 길목에서의 심경을 쓰신 글이다. 또 아버지께서는 외손주들에게 기초 한자(漢字) 이천 자를 써서 보내 주셨다. 한자로 손수 책을 엮어 '초정'(初程)이라는 이름을 붙인 책과 다섯 권의 노트에 나누어 쓰고, 마지막 책에는 한글로 된 명심 구 (銘心 句)도 몇 편 써 넣으셨다.
정성어린 아버지의 친필을 대하는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 하며 주체 할 수 없이 눈물이 솟아올랐다. 한 획 한 획 쓰시며 아버지는 우리가족을 다시 만날 날을 얼마나 고대하셨을까? 늘 걱정과 그리움의 멍을 남겨드린 이 불효 자식을 애타게 그리워 하셨을 테지.... . 또렷한 아버지의 글씨가 흐릿하게 어른거렸다.
어려서 나는 몸이 약해, 잦은 병치레로 부모님의 속을 태워 드렸다. 환절기엔 의례 감기는 도맡아서 앓고, 위가 약한데다 음식을 급히 먹는 버릇이 있어 체하기도 잘 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는 학질에 걸려 오래 앓았다. 하루는 멀쩡하고 하루는 오한과 고열에 시달렸다.
그런 와중에도 학교에 가겠다고 고집해서, 학교에서 오한과 고열로 떨고 있으면,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께서 급사의 자전거 뒤에 실어 집으로 보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육 학년 땐, 홍역을 심하게 앓은 후유증으로 폐렴에 걸렸다. 부모님은 고열과 호흡곤란으로 사경을 헤매는 내가 누운 자리에 홑이불로 포장을 치고, 그 안에서 물을 끓여 수증기를 쏘여주며, 꼬박 밤을 밝혀 나를 보살피셨다. 그 날밤 아버지는 내가 잘못 될 것 같다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뒤에 어머니가 얘기 해 주셨다.
커서 상급학교에 다닐 때, 시험이 임박해서 밤늦게 공부하노라면 아버지는 몇 번 씩 내 방문밖에 오셔서, 공부 그만하고 어서 자라고 타이르셨다. 공부보다는 내 건강을 더 염려 하셨던 아버지의 사랑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야속하게만 여겼던 철부지가, 후에 내 자식이 밤을 밝혀 공부할 때 그 아이의 건강이 염려되어 가슴을 조여 보고서야 깨닫게 되니, 때늦은 깨우침에 가슴이 메어진다.
아버지는 새벽 일찍 일어나 붓글씨를 쓰면서 하루를 시작하셨다. 봄을 시샘하는 눈발이 흩날리던 아침, 일년 내 정성을 들이신 매화꽃이 하얗게 핀 아버지 방으로 나를 불러, 향기를 맡아보라고 하셨다. 그 때 나는 꽃향기와 함께 방안에 은은히 흐르는 향긋하면서도 쌉쌀한 먹 냄새를 함께 맡으며 기분이 차분해 지는 것 같았다.
충주 대소원에서 몰락한 선비 집의 이대 독자로 태어난 아버지는, 열 여섯 살에 한 살 위인 어머니와 혼인해서 슬하에 오 남매를 두셨다. 위로 아들 형제를 보셨을 때는 독자를 면했다고 기뻐 하셨고, 내가 태어나던 날엔 삼 대 만에 얻은 귀한 딸이라고 좋아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청주 도립 사범학교를 졸업 한 후, 음성 금왕 보통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셨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신 아버지는 일본인 교장과 교사들의 조선 학생에 대한 비인도적인 처사에 맞서는 일이 잦으셨다. 그 일로 인해, 일 이년에 한번 씩 전근을 다니다가 결국은 교직을 박탈 당하셨다. 그 때 아버지는 그들이 억지로 만들어낸, 건강에 결함이 있다는 생트집에, 어쩔 수 없이 억울하게 당해야만 하는 나라 없는 백성의 울분을 오랫동안 삭이지 못하고 힘들어 하셨다.
그로부터 일 년여 후 광복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기쁨은 남달랐다. 일본인들과 부딪혀 분노하고 좌절했던 교단이 아닌, 내 나라 글과 말을 마음놓고 가르칠 수 있는 교육 현장으로 복귀하셨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서울에서 고등학교 교단에 서시게 되었다.
교사 재직 시절에는 물론, 육십 오 세에 퇴직하신 후에도 새벽에 붓글씨 쓰는 일은 계속 되었고, 팔십 세로 돌아가시던 날 새벽까지 멈추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간혹 내게 먹을 갈라고 하실 때가 있었다. 반듯한 자세로 왼손을 오른손 팔꿈치에 받치고 온 신경을 붓끝에 모아, 심혈을 기울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이제야 한 획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붓글씨를 내게 남기신 뜻을 알 것 같다. 삶은 어떤 한 모서리라도 함부로 넘길 수 없음을 일깨워 주시려는 깊은 사랑에 목이 메인다. 책장 서랍에 고이 싸서 넣어둔, 아버지께서 남기신 여섯 권의 노트를 꺼내서 펼쳐 본다. 묵은 책 냄새 속에서 묵향이 가슴으로 훅 밀려온다.
내게는 이 친필 액자와 책이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이고 소중한 유산이다. 오늘 저녁에 딸아이가 돌아오면, 아버지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 때 십 오 년 전처럼 지금도 오갈 수 없는 먼 곳에 계신 아버지가 그립다. 가슴 저리게 그립다.
--< 문학세계 >98 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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