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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U 수사학 설교 리포트
2016.12.22 08:46
월드미션대학교
World Mission University
수사학 설교 리포트 |
학 과 목 : 수사학
담당교수 : 최 선 호 교수님
제 출 자 : 여 현 정
제출일자 : 2009년 12월 6일
제목 : 주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본문 : 마가복음 8:27-8:31)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나가실 때 노중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여쭈어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매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계하시고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드러 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은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 하리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서론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의 목적을 비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복음서의 첫 문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자신의 중심 주제를 언급했다. 본문 8장 29절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라는 고백이 있기까지 예수님의 가족과 무리의 종교 지도자들과 일반 백성들 심지어 선택된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진정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가는 만민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심을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드러내셨습니다. 이 베드로의 고백이 오늘 우리 교회의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고백과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지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본론
1.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습니다.
8장 27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빌립보 여러 마을로 다니시면서 노중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들었는지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28절에 제자들의 대답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 하나라 하나이다.”
제자들의 말대로라면 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곧 이어 29절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지자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시나요. NRSV 성경에서는 “주는 메시야시니이다”로 번역하였습니다. 다르게 번역하면 당신은 “그리스도시니이다”입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 단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둘 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약속된 왕이며 구원자로 믿는 자신의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이제 문제는 예수님이 어떤 종류의 왕이 되실 것인지를 제자들이 알도록 돕는데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은 자기 나라를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정복자와 해방자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종류의 정복자와 해방자로 오셔서 죄를 정복하고, 죄의 속박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실 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3번이나 자신은 곧 고난당할 것이며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심으로써 앞으로 닥칠 일을 제자들에게 미리 준비시키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에게도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시점에서 제자들은 물론이고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 모두가 아무도 베드로의 고백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 오셨지만 정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에 의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그 후에 부활하신 후에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되어야만 그들은 복음을 세계에 전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베드로와 같은 고백을 하고 있는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곧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은 어쩌면 우리의 준비되지 못한 것으로 인해 지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온 땅에 복음이 증거 되어야 주님이 오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우리 자신이 적극적으로 이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은 주님 재림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2.예수님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복음서의 저자들인 마태와 누가도 그랬지만 마가역시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십자가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과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었고 메시야가 나타나면 그는 정치적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고 모두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억압 속에 있는 자신들을 위해 메시야가 단순히 해방자로 왕으로 오셔서 모든 걸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백성들을 죄에서 건질 것”이라는 생각은 깊이 간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의 압제를 깨뜨리고 이스라엘을 열방 중에 으뜸으로 일으킬 메시야만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자는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드러 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라고 말했을 때 베드로 반응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메시야의 고난과 죽음을 그 당시 받아드리기가 어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31절에 나오는 인자는 예수님이 자신을 명명하는 데 즐겨 사용하시던 호칭입니다. 이 호칭은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라는 이름 외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자란 칭호는 죄를 사하시는 권위와 죽음과 부활의 입증을 받은 강력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해 성령님의 감동 없이 인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참된 목적을 그들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낮고 천한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화려한 왕궁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마구간이었고, 태어나자마자 피난길에 올라야 하는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고도 예수님의 삶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파란 만장한 삶을 사셨습니다. 협박과 위협에 시달리셔야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수 없는 중상모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참으로 억울한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죽이려고 모함하는 세력들이 가득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말하는데도 그들은 거짓이라고 누명을 씌웠습니다. 대 제사장과 총독 앞에 섰지만 거짓 증인들과 군중심리에 휩쓸린 세력 앞에서 변론한번 제대로 못하시고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아니 아예 변명을 안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순한 어린양처럼 우리의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말없이 순종하셨습니다. 그들은 승리자처럼 하나님의 아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십자가를 지워 온갖 수치와 모욕과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제자들도 배신하고 도망쳐 버린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의지할 수 없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고통과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골고다 언덕길을 채찍에 맞으며 쓰러지고 또 쓰러지며 올라가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조롱하는 그들 앞에서도 한마디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나의 죄를 위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토록 큰 아픔과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타는 목마름, 못에 박힌 아픔과 고통과 아우성치는 유대 백성들의 조롱 섞인 함성소리, 옆에 함께 매달린 한 강도의 조롱까지 주님은 나를 지옥불로 달려가는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참아내셨습니다. 여러분과 나를 위해 마지막 물 한 방울 피한방울 남기지 않고 다 쏟아주셨습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시며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심 속에 우리의 죄악은 다 해결되어진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를 죄악가운데서 건져내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계십니까?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하심도 없다는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신 것을 믿으십니까? 사망권세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베드로의 고백이 오늘 여러분과 저의 고백이기를 원합니다.
3.예수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8장 34절에서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은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 하리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고 물으시면서 자신을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야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 앞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맡은 사명을 위해서는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위로와 용기가 되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자주 박해를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 태도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기꺼이 자기를 부인하려는 태도와 둘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려는 태도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진정한 자아와 하나님의 관심을 발견하고 확신하기 위해 눈앞의 물질적인 만족을 포기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자발적으로 이기적인 욕심이나 세속적인 안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요구하신 겸손과 복종을 보여 주는 생생한 본보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기 위해 그들의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의 추종자들에 관한 그림을 사용하실 때 제자들과 무리와 로마의 사람들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로마 사람들이 흉악범을 처형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죄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처형 장소로 올라가는데 이는 로마의 권력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사회적, 정치적, 압제와 추방에 직면하면서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뜻하며 결코 뒤돌아보지 않고 예수님만 따르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진정한 죽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복음 때문에 어떤 결과를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의 뜻을 따를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8장 35절에서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을 주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 하리니” 다시 말하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죽으리라는 역설적인 삶에 대해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을 가리키는 헬라어 단어 푸쉬케는 영혼을 가리키며 이는 모든 꿈과 희망과 목표와 관련한 성품을 포함하는 사람의 한 부분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 욕망과 목표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기 생명을 구원코자 하는 사람은 결국엔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잃을 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충만한 생명까지 잃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기꺼이 그리스도와 주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잃고자 하는 자는 생명을 구원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잃는 다는 것은 그 대가가 죽음일지라도 그리스도를 부인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복음을 위해 자기 생명을 잃는 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고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을 암시해주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욕망과 생명을 하나님의 손에 기꺼이 내려놓는 다는 것은 우리가 이 땅위에서 우리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여 얻을 수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음을 알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삶이나 자기만족의 삶에 이끌리기보다는 주님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온전히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창조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삶이 무엇인지를 내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주님을 믿는 고백을 삶으로 드러내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고난이나 죽음일지라도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릴 때 주님께서는 선하게 인도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아들 같이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바로 이 길이 축복된 길이고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고난 받을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생명을 내어놓을 자세가 되어있습니까? 지금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반드시 구원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결론
주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보느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고백하시겠습니까? 바로 베드로의 고백이 오늘 여러분과 나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해 온갖 고난과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 매달려 고통 속에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나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입니다. 내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우리 죄는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다면 이 시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과 함께 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고백이야 말로 죄를 용서받고 지옥 길에서 천국길로 돌아서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성도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 주님을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해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놀라운 생명의 축제에 초대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얻어지는 영원한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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