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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놀라움: 울음은 인간세상을 초월하여     

                                                                                                                

울음은 인간세상을 초월하여 하늘나라에까지 울리는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울음은 인간의 가슴에서 우러나는 절절함과 절실함으로 뭉쳐진 지극한 결정結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웃음보다는 울음으로 하나님께 호소한다. 다윗도 울고, 베드로도 울고, 예수님도 우시었다.  다윗과 베드로는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통곡을 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보시고 우시기도 하셨고(11:35). 자기 아닌 남을 생각하시고 우시었다. 주님의 울음과 인간 울음의 차이는 이렇게 다르다.

방성대곡한 울음으로 애굽 왕궁까지 들렸던 요셉 총리의 울음은 오랜 세월 쌓여온 형제들의 갈등을 녹여내는 뜨거운 사랑의 용암이 되었다. 다윗도 자기의 죄로 인한 회개의 눈물을 흘렸음은 물론, 사울 왕이 죽었을 때와 아브넬이 죽었을 때도 크게 울었다. 사울이 죽은 후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는 애가를 지어 유다지파에게 부르게 하였다. 결국 이 노래는 유다지파로 하여금 북쪽 베냐민 지파와의 통일기반을 세우도록 한 셈이다. 다윗에게는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임명권을 소중히 여긴 진실이 담겨, 백성들로 하여금 그 진실을 이해하도록까지 하였다. 7 6개월 동안 북쪽 11지파의 권력자인 아브넬이 다윗을 찾아 왔을 때 평화의 길로 안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자기의 위치를 안전하고 확고히 하기 위해 아브넬을 암살하였다. 이로 인해  다윗의 정치노선에 위기를 몰고와 다윗이 아브넬을 죽였다는 오해를 야기시켰기 때문에 다윗은 직접 애가를 지어 부르며 울었다. 그리하여 다윗에 대한 오해가 풀리게 될 뿐 아니라 공동체 분열 위기도 해소 되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도 울었다. 아픔과 소망의 눈물에 눈이 상하도록, 간이 땅에 쏟아져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참으로 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울음을 곱씹어 삼키며 단장의 아픔으로 믿음을 지켜 왔다.                                    

예수 그리스도도 우시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울음은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를 위한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오직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지극한 울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주이시기 때문에 오직 우리를 위하여만 우시었다.

저희가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21:15-17)            

이렇게 같은 말씀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시는 주님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배어 있었을 것이다. 같은 말씀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듣고 있는 베드로의 눈에도 방울 방울 눈물이 맺혀 있었을 것이다. 세 번씩이나 주님을 배신한 베드로의 가슴을 뒤흔드시며 확실한 회개의 영을 반복시키시는 간절함을 여기서도 읽을 수 있다.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에서 주님의 눈에 어린 눈물이 확실히 보이지 않는가! 이처럼 주님은 간절함과 지극함으로 베드로를 일깨우고 계신다. 베드로에게만 그러시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계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가 주님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는 대답을 못하고 있지 않는가! 주님의 사랑과 관용에 감격한 베드로의 울음을 우리도 배우자. 우리도 사랑과 관용으로 들리는 주님의 음성에 감격하자. 우리의 입술을 가다듬어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를 몇 번이고 고백하자. 그런 울음으로 우리의 생애를 말끔히 씻어내자. 하나님께서 씻어주신다(116:8;7:17).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126:5)고 약속하셨다. 이는 참으로 귀한 삶의 놀라움이다. 이처럼의 놀라움을 경험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넓고넓은 초원에서 막대기와 지팡이를 들고 주님의 양들에게 사랑의 꼴을 먹이는 참 목자의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