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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싦의 놀라움> 죄짓는 일에

2016.12.25 06:59

최선호 조회 수:2

 

 

삶의 놀라움 :  죄 짓는 일에                                                                          

 

죄 짓는 일에 두려움이나 싫증을 못 느끼는 사람들은, 죄 짓는 일을 적당히 좋아 하거나 아예

무감각한 사람들은, 아주 쉽게, 당연지사로 여기고 그런 행위에 몸과 마음을 적셔 오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일에 시간과 물질을 기울여 온 사람들은, 자연스럽거나 필연이나 우연이나 간에

 삶에서 일어나는 아무런 반응도 없는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그런 속에서 눈을 더욱 밝게

 떠 보라.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라. 삶의 놀라움을 맴돌며 사색에 푹 잠겨 보라. 잠 들지 못하는

 시간 모두를 총알처럼 겨누어 삶의 놀라움에 나를 던져 보라. 인격의 목 쉰 외침이 삶의 어느

 구석에서 지극히 간절한 소리로 울려 나올 것이다. 

삶의 놀라움은 삶의 놀라움 그대로의 아름다운 감동의 특성을 지니고 다가와서 나를 흔들어 댈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유익한 놀라움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 놓일지라도 이미 만났던 다른 놀라움과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주관적이거나 감동적이거나 또 다른 어떤 영역이거나 안겨오는 무한한 가능성에 감동을 되풀이 하게 된다. 그것들은 나의 내면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들이다. 마치 국가의 내란이나 외환을 겪었을 때 오는 변화에 비견해 본대도 무관하지 않다. 이런 현실적이거나 역사성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나날이 겪는 삶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거기에 맞닿아 주는 놀라움도 천차만별이다. 그만큼 뚜렷한 개성들을 지니고 있으니, 그리고 그 개성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성정에도 만만치 않은 개성이 켜켜로 쌓여 있으니, 이 개성들이 만나서 발산하는 빛깔과 방향도 역시 천차만별이다. 이런 것들이 바람직하게 어울릴 때 비로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남을 만나게 된다.

놀라움 자체의 영역의 넓이와 지극한 감동의 폭과 다양하고 다면적인 변화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감각적이거나 정서적이거나 심지어 물리적에까지라도 융화되는 총체적인 힘을 발산한다. 이런 놀라움으로 그 사람의 삶이 변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가운데 그 사람의 격格이 달라지고 그 사람에 딸린 여운餘韻 또는 정精이나 기氣까지도 폭이나 깊이를 더하면서 그의 영靈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킨다.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놀라움이야말로 놀라움다운 놀라움으로 우리의 삶을 삶다운 삶으로 더욱 아름답게 장식한다. 이럴 때 우리는 끝없는 희열과 경탄을 느끼게 되며, 우리 인간의 영혼을 기울여 창조의 기능을 진작시키는 절묘성을 부여 받는다. 이런 가운데 다가오는 감지력으로 자연 속에 넘실대는 우주의 무궁한 비법을 터득하고 영혼의 미세한 언어까지 부등켜 안는 경지에도 이르게 된다. 이럴 때 다시 하늘을 우러러 보라. 바다에 나가 보라. 산에 올라 보라. 그리고 내가 받은 놀라움을 읊조려 보라. 심미적 계시이거나 무엇으로든지 내 가슴은 한없이 벅찰 것이다. 인간의 세계를 능가하는 자연으로부터 오는 무한량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이런 변화에 이르도록 하지 못하는 놀라움은 실상 놀라움이 아니다. 다만 그런 자극일 뿐, 건설이나 창조력이 없는 허상이다. 놀라움이면 다 놀라움임에는 틀림이 없겠으나 여기서 찾는 놀라움은 놀라움이면 다 놀라움인 것을 넘어서서 놀라움 중에서도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응축되고 상징적으로 자연의 이치가 서린 삶의 가치를 함유한 무궁 무진한 놀라움임을 알아야 할 일이다.  

버크민스터 풀러는 “하나님을 동사動詞”라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을 동사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놀라움”도 동사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끊임없이 심령을 움직이고 있음에랴! “삶”도 “놀라움”도 동사의 뿌리를 내리고 있음에 만약 “삶의 놀라움”이 없다면 이 세상에 동사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동사야말로 우주를 살아 있게 만드는 영원한 움직임이니까. 어떤 것이든지 죽음에서 생명에로 이동시키려면 살아 움직이는 능력을 이입해야 한다. 율법의 것을 복음으로 이동시키듯이… 이런 일에는 언제나 뜨거운 감동이 눈물과 함께 은혜로 배어 들게 마련이다. 마치 십자가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