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간 꽃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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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리 프뤼돔 (Sully Prudho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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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간 꽃병 (Broken vase) · 쉴리 프뤼돔
이 마편초꽃이 시든 꽃병은
부채의 바람이 닿아 금이 간 것.
살짝 스쳤을 뿐이겠지
아무소리도 나지는 않았으니
하지만 가벼운 상채기는
하루하루 수정을 좀 먹어들어
보이지는 않으나 어김없는 발걸음으로
차근차근 그 둘레를 돌아갔다
맑은 물이 방울방울 새어나오고
꽃들의 물기는 말라들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모르고 있다.
손대지말라 금이 갔으니
곱다고 쓰다듬는 손도 때론 이런 것
남의 미음을 스쳐 상처를 준다.
그러면 마음은 절로 금이 가
사랑의 꽃은 말라죽는다.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온전하나
마음은 작고도 깊은 상처가
자라고 흐느낌을 느끼나니
금이 갔으니 손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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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편초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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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lly Prudhomme (1839-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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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편초 꽃(馬鞭草 · verb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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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요즘에 들어서는 왠지 담담하고 잔잔한 시들이 더 편안하게 마음속에 부딪혀 오기도 하지마는,
아직도 나에겐 잊을 수 없이 간직해온 아끼는 애송시가 있다. 바로 "금간 꽃병"이다.
이 시는 "쉴리 프리돔"의 시인데, 부채의 바람이 닿아 금이 간 수정의 꽃병,
그 투명하고 아름다운 상처의 의미와 시들어가는 마편초 꽃의 여린 아픔,
그것은 인생과 사랑의 의미에 새로이 눈뜨이던 그 시절에 그 어느 시보다도
내 영혼을 맑게 울리면서 부딪쳐오는 수정음의 소리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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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편초 꽃은 과연 어떤 꽃일까?
그리고 맑은 물 방울 방울 새어나오는
수정 꽃병의 섬세한 상채기가 금시 예리하게 피부에 와 닿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구절은 유난히 애절하게 느껴지곤 하였다.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온전하나 마음은 작고도 깊은 상처가 자라고 흐느낌을 느끼나니 금이 갔으니 손대지 말라
얼마나 투명하고 형용할 수 없이 맑은 상채기로 수정 꽃병이 소리없이 아파하고 있는 것일까?
그 구절이 왠지 그 시절 젊은날에 남모를 나의 아픔인양 생각되기도 했었다.
나는 지금도 귀 기울이고 싶어진다.
나의 빛 바랜 노트 갈피에서 울려나와 무뎌져가는 내 영혼을 수정발같이
투명하고 아름답게 깨우쳐 주는 이 시 귀절들에...... 언제나
내 감성들을 맑고 투명하게 인도해 주는 시,
쉴리 프리돔의 "금간 꽃병", 이 시 한편을 늘 나는 연인처럼 아끼고 사랑하리라. / 김혜자 (텔런트) /
쉴리 프뤼돔 : 프랑스 시인. 본명 Rene Francois Armand Prudhomme.
파리 출생.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가 당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저명한 작가들을 제치고 시인 쉴리 프뤼돔을 1901년 제1회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던 것은 쉴리 프뤼돔의 시가 제시하는 삶의 미래가
현실적이면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의 글이 인간과 삶에 대한 사랑에 기반을 두고 보편적인 삶의 진보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가 주목했고 결국 노벨 문학상 수상을 이끌어냈던
그의 작품은 <백조> 와 <금간 꽃병> 이었다고 합니다.
《시련(1866)》 《고독(1869)》 등 내면적인 사색을 주제로 하는
그의 시는 점점 철학적 경향이 짙어지면서 《정의(1878)》 《행복(1888)》 등의 장편 <철학시>를 창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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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ken Vase
The vase where this verbena is dying
was cracked by a blow from a fan.
It must have barely brushed it,
for it made no sound.
But the slight wound,
biting into the crystal day by day,
surely, invisibly crept
slowly all around it.
The clear water leaked out drop by drop.
The flowers' sap was exhausted.
Still no one suspected anything.
Don't touch! It's broken.
Thus often does the hand we love,
barely touching the heart, wound it.
Then the heart cracks by itself
and the flower of its love dies.
Still intact in the eyes of the world,
it feels its wound, narrow and deep,
grow and softly cry.
It's broken. Don't touch!
Rene-Francois Sully-Prudhomme (1839-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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