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만든 판소리의 역사 - 동리 신재효

2011.06.12 14:46

유봉희 조회 수:916 추천:48




학자의 고향. 사랑이 만든 판소리의 역사 - 동리 신재효. 1부 6월 5일 / 2부 6월12일

























 
1부  최초의 판소리 제작자.   桐里 申在孝 (1812~84)




















 
동리 신재효 1부 · 최초의 판소리 제작자 · 소리꾼의 길잡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형식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의 판소리.

판소리에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가장 잘 담겨 있다고 평가된다.

바로 이 판소리를 집대성하고 소리꾼을 길러낸 인물이 있었다.

동리 신재효, 소리꾼의 길잡이가 되어 … . 그는 과연 어떤 인물 이었을까?



각 지역별로 발전하던 판소리는 19세기 후반, 고창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바로 동리 신재효(桐里 申在孝)가 판소리에 특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신재효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판소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한걸음 더 판소리 사설의 개작에도 나섰다.



신재효는 자신의 집도 판소리의 교육장으로 만들어 전국에서 몰려온 소리꾼들로
넘쳐났다.
조선의 판소리는 신재효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고 있었다.



판소리의 고장인 전북 고창을 찾아가 신재효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고택과

신재효의 유품과 기록물들이 남아있는 판소리 박물관을 찾아간다. (1부 11-06-05)


1부-1 동영상 보기


1부-2 동영상 보기


1부-3 동영상 보기
















 
2부  사랑이 만든 판소리의 역사.  桐里 申在孝























조선의 판소리 이론가·개작자 | 신재효 영정





| 동리 신재효 선생의 흉상





 
동리 신재효 2부 · 사랑이 만든 판소리의 역사




지금 전해지는 판소리는 그가 있어 가능했다.

판소리를 집대성하고 숱한 인물을 길러낸 동리 신재효.
그런
그에게 진채선이라는 여인이 나타난다. 신재효는 진채선을 제자로 받아들인다.

조선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 이전까지 판소리는 남자들만의 소리였다.



고창에서 신재효(申在孝)와 진채선(陣彩仙)이 소리 공부에 열중하고 있을 무렵,

흥선대원군은 어린 아들을 고종으로 등극 시키며 권력의 핵심이 되었다.

대원군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혁 정치를 펼쳐 나갔다.
그 일환이
바로 경복중 중건이었다. 1876년 마침내 경복궁 낙성식이 열렸다.

대원군은 낙성식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의 명창들을 참가 시켰다.

신재효는 진채선을 경복궁 낙성식에 참가시킨다.

신재효는 왜 채선을 경복궁 낙성식으로 보냈던 것일까?



낙성식에 참가했던 채선은 운현궁으로 보내졌다.

진채선의 미모와 노래에 반한 대원군이 그녀를 운현궁으로 데려갔던 것이다.

당시 운현궁은 대원군의 거처, 채선과 신재효는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조선의 판소리 집대성한 이론가이자 창작자였던 신재효와

최초의 여류 명창 진채선,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러 가보자.(2부 11-06-12)


2부-1 동영상 보기


2부-2 동영상 보기


2부-3 동영상 보기






진채선(陣彩仙)

진채선(陳彩仙, 1842년 ~ ?)은 근세 조선의 판소리 여류 명창이다.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
신재효에게서 판소리 지도를 받았고 정악에도 능하였다.
경복궁 경회루 낙성연에서 출중한 기예를 발휘하여 청중을 놀라게 했고 대원군의 아낌을 받았다.
결국, 그녀는 판소리에서 최초의 여류 명창이 되었다. 그리고 《춘향가》, 《심청가》를 잘하였다.
특히, 잘하는 대목은 《춘향가》 중에서 기생 점고하는 대목이다.





동리 신재효은 소리꾼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소리꾼.
그는 우리의 소리를 알고 우리가락을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의 아픔과 그리움이

무엇인지 아는 정말 멋쟁이 풍류 쟁이다.

그는 판소리를 체계화한 장본인이기도하다.


일반적으로 판소리는 호남지방에서, 그것도 호남의 무속(巫俗)에서 기원 하였을 것으로 본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양자가 서로 유사하므로, 판소리 발생의 초기 광대가 대게 호남출신의 무속 인이 많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 연행의 방식이 무속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고전문학의향기 중에서)



특히 구미가 당기는 것은 [변강쇠가]다. 일명 ‘가루지기타령’은 중부지방에서 불렀으나,
황해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변강쇠가]는 우리문화유산 가운데 찾아보기 어려운 성애(性愛)묘사의 극치를 보여준다.
특히 옹녀와 강쇠가 대낮에 청석관(靑石關)에서 만나 당일치기 혼례를 육체적 교섭으로 시작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기물타령(器物打令)에서는 남녀의 성기를 노골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가락과 가사가 남아있지 않다)


    얽고 검고 키 큰 구레나룻 그것조차 길고 넓다

    젊지 않은 놈이 밤마다 배에 올라 조그만 구멍에 큰 연장

    넣어두고 훌근할적 할 제는 애정은 커니(커녕)와 태산이

    덮누르는 듯 잔방귀 소리에 젖 먹던 힘이 다 쓰이노매라

    아무나 이놈을 데려다가 백년동주(百年同住)하고 영영

    아니 온들 어느 개딸년이 시앗(첩) 새옴(질투 · 샘)하리오







 
동리 신재효 (桐里 申在孝 | 조선 판소리 이론가 · 개작가 · 후원자)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백원(百源), 호는 동리(桐里). 그의 가계(家系)는 본래
경기도 고양(高陽)이었으나,
서울에서 경주인(京主人)을 지내던 아버지 광흡
(光洽)이 고창에 내려와 관약방(官藥房)을 경영하면서부터 고창에 살게 되었다.

7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철종 때 고창현감이던 이익상(李益相) 밑에서
이방으로 일하다가 호장(戶長)에 올랐다.
1,000석을 추수할 정도의 부호였던
그는 1876년(고종13년) 흉년에 구휼미를 내어 이듬해 통정대부(通政大夫)
품계를 받았다.



향리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고창지방 관청에서 열렸던 잔치에 판소리 광대를 포함한 각종 연예인들을 동원했던 경험과
자신의 넉넉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판소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판소리 광대들의 후원 및 이론적 지도자로서 이름이 높았는데,
동편제(東便制)의 명창 김세종(金世宗)이 소리 선생으로 초빙되어 판소리 전문교육을 도왔다.
이날치(李捺致)·박만순(朴萬順)·전해종(全海宗)·정창업(丁昌業)·김창록(金昌祿) 같은 명창들이 그의 지원과 이론적 지도를 받았다.






진채선(陣彩仙)의 살아생전 모습

그밖에 진채선(陣彩仙) · 허금파(許錦波)와 같은
최초의 여류 명창을 길러내기도 했다.
그는 장단에
충실하고 박자 변화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동편제와,
잔가락이 많고 박자 변화가 많은 서편제(西便制)에서 각기 장점을 취해 판소리 이론을 정립했다.



〈광대가 廣大歌〉에서 판소리 사설과 창곡, 창자의 인물됨과 연기능력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판소리 4대법례를 제시했다.
만년에는 향리직에서 물러나 판소리 12마당 가운데 〈춘향가〉·〈심청가〉·〈박타령〉·〈토별가〉·〈적벽가〉·〈변강쇠가〉의 6마당을 골라
그 사설을 개작, 정착시켰다. 이같은 작업은 당시 광대들 사이에서 전승되던 작품들을 일단 정리하고 후대에의 전승을 매개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조선 후기 상하층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며 판소리 사설을 합리적·사실적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당대 하층민이 이룩한 발랄한 현실인식이 보수적 지향이 강한 유가적(儒家的) 합리주의에 의해 상당 부분 거세되었다는 한계를 함께 지닌다.
판소리 개작 외에도 〈치산가 治産歌〉·〈오섬가 烏蟾歌〉·〈방아타령〉·〈갈처사 십보가 葛處士十步歌〉 등을 비롯해 허두가(虛頭歌) 30여 편을 지었다.
이들은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신오위장본 申五衛將本〉에 개작한 판소리 6마당과 함께 실려 있다.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하거리(下巨里)에 그를 기리는 유애비(遺愛碑)가 남아 있으며, 묘소는 고창읍 성두리
(星斗里)에 있다.






신재효 생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 중요 민속자료 제39호


















조선후기의 판소리 연구가로 이름 높았던 신재효(申在孝)선생은

우리 문화의 한 부분에서 빛나고 있는 판소리를 정리하고 발전시켰다.



45세를 전후하여 판소리의 사설을 정리하는 한편 창작생활에도

힘썼던 그는 판소리의 이론적 체계를 모색하여 '광대가'를 지어

인물, 사설, 득음(得音), 너름새라는 4대법례를 마련하였다.










고창읍내 홍문거리 /

두춘나무 무지기안 /

시내우에 정자짓고 /

정자겨태 포도시렁 /

포도끄테 연못이라 /

<자서가 중에서>




전형적인 판소리의 율조로 이루어진 '자서가'는 조선 후기의 판소리 연구가인
신재효가 살았던 고택의 앞마당에 세워진 동리가비(桐里歌碑)에 새겨져 있다.
노래비에 담겨진 내용은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의 집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꼼꼼히 읽어보고 집주변을 둘러보면 노랫말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성을 밟으면 무병장수한다는 고창읍성의 입구에 있는 신재효의 고택은 중요
민속자료 제39호로 185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899년에 다시
보수를 하였다고 전해지지만 현재에는 초가지붕의 사랑채만이 남아 있다.




본래 안채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이 한 곽(廓)을 이루었다고 하는 이 건물은 북향으로 전형적인
전라도 풍의 일자형(一字形)이다.
건물 오른쪽에는 사각형의 작은 연못이 있고
왼쪽 끝에는 우물이 남아 있으며 집 뒤쪽, 그러니까 지금의 경찰서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가 노래했던 자서가의 내용과 얼추 맞아 들어가는 것 같다.



지금 그의 집에서 시내를 건너면 이 고장 사람들의 소중한 공연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는 동리회관이 있다.
동리회관은 제법 규모가 있는 원형극장으로 판소리 공연 이외에도 여러 가지 문화행사장으로 쓰이고 있다.



조선후기의 판소리 연구가로 이름 높았던 신재효(申在孝)선생은 우리 문화의 한 부분에서 빛나고 있는 판소리를 정리하고 발전시켰다.
45세를 전후하여 판소리의 사설을 정리하는 한편 창작생활에도 힘썼던 그는 판소리의 이론적 체계를
모색하여 '광대가'를 지어

인물, 사설, 득음(得音), 너름새라는 4대법례를 마련하였다.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고 낙성연을 할 때 '경복궁 타령' '방아타령' 등을 지어
제자인 진채선(陳彩仙)에게 부르게 하여, 여자도 판소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만년에는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별가' '적벽가' '변강쇠가'의 판소리 여섯 마당을 골라 그 사설을 개작하여,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구성을 갖추고 전형적이면서도 수식적인 문투를 활용하였다.



따라서 하층계급 특유의 신랄한 현실비판이 약화되기는 하였으나, 중인계급으로서 지닌 비판적 의식이 부각되고
사실적인 묘사와 남녀관계의 비속한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이로써 판소리가 신분을 넘어서 민족문학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훗날 얻고 있다.
지금도 고창에 가면 그 판소리의 본향(本鄕)을 방문하는 느낌은 여전하다.




 
판소리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 중 사람의 발성이 주가 되는 음악을 보통 그냥 ‘소리’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런 소리를 잘하는 사람을 ‘소리꾼’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우리의 전통 ‘소리’는 크게 판소리와 민요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가사, 시조 등의 소리가 있지만, 판소리와 민요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민요는 서민들의 삶 속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소리로,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소리입니다.
창부타령, 육자백이 등의 통속민요가 있고, 상여소리나
아리랑 같은 토속민요 그리고 모심기소리,
노젓는 소리, 베틀가 등의 노동요가 모두 민요에 해당하는 소리입니다.



판소리는 민요와는 달리 공연을 위한 소리라 할 수 있습니다.

소리꾼 (唱者라 부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고수(鼓手)의 북소리에 맞추어

줄거리가 있는 긴 이야기를 소리로 표현하는 장르가 판소리입니다.

이 판소리는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됩니다. 노래에 해당하는 소리, 노래가 아닌
말로 이야기를 하는 아니리,
몸짓으로 이야기의 끌어가는 발림(너름새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고수가 소리꾼의 흥을 추켜주는 추임새가 그것입니다.



현재 전해지는 판소리는 춘향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심청가의 다섯 바탕
이 있습니다.
소리꾼과 고수가 호흡을 맞춰 이런 긴 이야기를 소리로 들려주는 것이 판소리입니다.
판소리는 모노 오페라의 성격을 띠고 있는 공연 예술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전통 예술인 것입니다.
판소리의 이런 극 공연적인 성격을 활용해 만든 영화가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입니다.
영화에서 비록 배우가 직접 소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전통 판소리를 영화라는 장르로 끌어들인
의미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판소리의 역사와 유파



판소리는 대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뒤인 1700년대 초, 서민층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난 음악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공연이 이루어지다가 1800년대로 접어들어 양반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기 시작하면서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1800년대 초, 판소리는 1차 절정기를 맞게 되어
이때 여덟 명의 명창을 배출하는데,
이를 전기 8명창이라 부르고 이 시기를
전기 8명창시대라 부릅니다.
이 전기 8명창 중 특히 유명한 사람은 가왕(歌王)이라 불렸다는 송흥록이 있습니다.
또 이때가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등 판소리의 편제 분류가 시작되어 명창들의 독특한 창법이 나타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운봉의 가왕 송홍록이 동편제의 시조가 되고, 보성의 박유전이 서편제의 시조 그리고 여주의 염계달이 중고제의 시조가 됩니다.



동편제와 서편제는 창법의 차이가 뚜렷합니다. 동편제가 호쾌하고 힘찬 소리를 바탕으로 하며
끝 마디도 장식음 단호하게 끝내는 소리라면, 서편제는 구성지고 애잔한 소리에 장식음이나 기교음이 많이 들어가는 소리입니다.
요즘 음악과
비교하자면 동편제를 힘찬 록 음악에 그리고 서편제는 분위기 있는 R&B에 비유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동편제와 서편제는 큰 줄기를 이루게 되는데
전라도 지방의 섬진강을 경계로 서쪽이 주로 서편제 동쪽은 주로 동편제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중고제는 경기 남부와 충청도 지방의 판소리로
동편제와 서편제의 중간쯤 도는 소리라고 합니다.



18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어 또 다시 새로운 여덟 명의 명창이 배출되는데, 이 시기를 후기 8명창 시대라 합니다.
이시기에 들어서 각 유파적 색채가 무르익어 판소리의 절정기를 맡게 됩니다.
신재효 선생이 판소리 여섯 마당을 정리한 시기도 바로 이 후기 8명창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판소리는 주로 왕실과 양반들을 대상으로 하던 판소리여서
서민들의 생활상이나 의식을 반영하던
초기 판소리의 형태가 많이 지워진 때라고 합니다.



그후 전기 5명창 시대를 거치고 일제시대로 접어들며 판소리도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쇠퇴를 거듭하던 판소리는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또 우리 문화의 관심이 커지면서
다시 부활을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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