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 굿바이, 평양 (Goodbye, Pyeongyang)

2011.05.11 18:35

arcadia 조회 수:1087 추천:20




굿바이, 평양 (Goodbye, Pyeongyang. 2009)
























 
굿바이, 평양 · Goodbye, Pyeongyang. 2009













유투브 '굿바이,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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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평양 | (Goodbye, Pyeongyang. 2009) | 상영시간 81분



감독, 양영희(梁英姬, Yong-hi Yang, 1964).

주연, 양선화, 양건화, 양영희

양공선 (본인 역), 강정희 (본인 역), 양선화 (본인 역),

양건화 (본인 역), 양영희 (본인 / 내레이션 역)




나는 도쿄에 살고 있다.

제주도 출신인 부모님은 오사카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나의 세 오빠들과 조카들은 지금 평양에 살고 있다.

굿바이, 평양(Goodbye, Pyeongyang)



2009년 11월, 나의 아버지는 오빠들과 조카들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오사카에서 외롭게 돌아가셨다.



커피와 음악을 좋아하던, 건축가가 꿈이라던 나의 세 오빠들은 지금 평양에 살고 있습니다.
30년 전, 어린 오빠들을 북으로 보낸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기약 없는 만남과 아들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평양 조카 선화는 어느덧 어여쁜 아가씨가 되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아있는 그녀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다시 만날 그 날을 기약하며 사랑하는 가족에게 인사를 띄웁니다.

Goodbye!! Goodbye!! 평양!



梁英姬, Yong-hi Yang, 1964 | 일본

71년 북한행 선택한 세 오빠



이데올로기의 전쟁터로 여겨지는 평양. 하지만 재일동포 양영희 감독에게 평양은 그저 그리운 가족이 사는 곳일 뿐이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굿바이 평양’ 을
통해 북한에 사는 가족을 정면으로 응시한 그를 만나 남다른 가족사를 들어봤다.



“여섯 살 때 일이 지금도 생생해요. 당시 14, 16, 18세인 오빠들이 배를 타고

북조선으로 가는 날, 꽃보라가 날렸거든요. 부둣가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죠.

그곳에 가면 오빠들이 행복해질 거라고 사람들이 많이 축하해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날부터 줄곧 오빠들이 왜 거기에 갔을까, 오빠들이 과연 행복하게 살까 궁금했어요.
그만큼 그리움이 컸던 것 같아요. 그림책도 읽어주고, 음악도

들려주고, 병원도 데려다준 오빠들이 보고 싶었거든요….”



재일동포 양영희씨(47)는 1971년 진행된 북송사업을 잊지 못해 영화감독이 됐다.
세 아들을 북으로 보낸 부모 곁에 홀로 남아 그때부터 조국 분단의 아픔을 뼈저리게 실감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부모에겐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이 심한 일본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남한도 아닌
북한에 가면 더 밝은 미래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양 감독에게 트라우마(trauma)로 작용했다.



“감독은 철저하게 자기 얘기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데 저는 전자 같아요.
그만큼 그에 관한 상처가 큰 거겠죠. 조총련 커뮤니티 안에서 제약을 받는다고 느낄수록 오빠들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자유로운 저도 이렇게 갑갑한데 오빠들은 어떻게 살까 싶었죠. 그래서 점점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양 감독은 그렇게 그날을 가슴에 묻고 성장했다.
조총련 계열인 도쿄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후 조총련계 고등학교에서 2년간 국어교사로 지내며 그 사이 결혼도 했다.
그러나 결혼생활도 교직생활도 맞지 않아, 이후에는 연극 제작자와 배우로 활동하며 자유롭게 살았다.
방송국에서 일하며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아시아 국가 이곳저곳을 다니자 어느덧 인생의 분기점에 도달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할수록 제가 편향돼 보이더라고요.
북한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조국의 반쪽인 남한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요.
그래서 균형을 잡고자 뉴욕에 가기로 했어요. 왠지 그곳에 가면 한국과 가까워질 것 같았거든요.
당시 방송국에서 번 돈으로 집을 살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없어질 돈이라면, 그걸로 뭔가에 도전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죠.
그래서 서른넷이 되던 97년 뉴욕으로 향했어요.”



평소 미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던 부모들은 그의 결정에 어깃장을 놓았다.

하지만 양 감독은 자신이 “후회하는 걸 싫어하고, 표현에 대한 욕구가 강하며,

아이디어가 생기면 곧바로 실행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이에 굴하지 않고

그곳에서 6년을 버텼다. 그리고 뉴욕 뉴스쿨대학에서 영화를 배우며 미디어학
석사 과정도 마쳤다.



가족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 즈음이다.

그저 아프기만 했던 가족사가 어느새 이야깃거리로 다가온 것이다.

평양에 갈 때마다 친근감보다 위화감을 느끼고, 조국이 뭔지 이해할 수 없던

마음을 세상에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81년부터 북한을 드나들기 시작해 95년 처음으로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가족들의 모습을 찍었다.



물론 영상으로 찍었다고 곧바로 영화화할 수는 없었다.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의 ‘수위’와 가족에게 해가 가지 않을 ‘수준’을 조절해야
했기 때문이다.
양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평양에 다녀온 후부터 가족들에게 닥칠 수 있는 불이익을 걱정하며 매일같이 고민했다.
그러다 아버지를 주제로 한 영화 ‘디어 평양’(2006)을 먼저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김일성 장군님을 위해서 자녀들을 키우자”고 말할 정도로 북한체제의 열혈 지지자였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이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겼다.
덕분에 그는 베를린국제영화제 넷팩상,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등을 수상하며 영화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2010년 상반기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작품(Korean Film Council)

14회 부산국제영화제(2009) 수상

Staff : Executive Producer, Choi Hyun Mook

Production director, Lee Yong Kwan

Producer, Kim Jung Gon

Director/Cinematograph/Script, Yang Yonghi (양용희)





영화 "굿바이 평양" ‥ 북송교포 삶, 13년 간의 기록





6~70년대 북한이 전후 노동력 부족문제 해결을 위해 조총련계 재일교포

귀환을 추진했습니다. 이른바 '조국귀환 사업'인데요. 이때 북한으로 건너간

한 가족을 통해 북송교포들의 삶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옵니다.



1971년, 조총련 간부인 아버지는 어린 세 아들을 북한으로 보냅니다.

재일동포라고 해서 차별받던 그에게 "모든 인민은 평등하다" 는 북한은

낙원이었습니다. 하지만 큰 아들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고,

부모는 가난에 허덕이는 아들, 손자를 위해 북한에 생필품을 보내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남아 있던 막내딸은 13년 간 평양과 오사카를 오가며
가족간의 애틋한 사랑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양영희/영화 '굿바이 평양' 감독

"매번 테이프를 일본으로 가져갈 때 1초도 빼지 않고 검열했습니다.

왜 이렇게 테이프가 많으냐고 따지면 이 테이프는 내 일기장이다.."



영화 <굿바이 평양>은 196~70년 대에 이른바 '조국 귀환 사업'이라고 해서

북한으로 건너간 재일동포 9만 명이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지를

감독의 어린 조카, 선화의 성장 과정에 담아 보여줍니다.



2006년 첫 작품 <디어 평양>를 만들 때부터 북한은 양영희 감독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3년 전 양 감독이 한국 국적을 얻자 북한 방문을 금지시켰습니다.


"찬양을 안 하는 영화를 만들고 재미없다고 그래서 사죄문을 쓰라고 하셨어요.
사죄문을 쓴다면 처음부터 안 만들잖아요.
그래서 사죄문 쓰는 대신에 또 한 편 만들었어요."
<굿바이 평양>은 다시는 갈 수 없게 된 금단의 땅을 향한 마지막 인사지만,
사랑하는 선화, 그리고 가족들과 꼭 다시 만나겠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 MBC뉴스 김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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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평양]은 [디어 평양]과 쌍둥이 같은 작품이다.

지금 개봉했다고 [디어 평양] 개봉 후에 촬영한 작품은 아니란 얘기다.

전작에서 양영희 감독이 본인을 주체와 대상으로 함께 바라보았다면

[굿바이, 평양]에선 주체와 대상의 초점을 조카인 양선화에게 맞추고 있다.



양영희 감독은 선화가 자신의 분신 같다고 했다. 세 오빠의 자녀들 중 둘째 오빠의 딸 선화만이 유일한 여자아이기 때문이다.
오빠들은 모두 평양에서 살아가고,
자신만이 부모님과 일본에 남아있기에 그들은 가족이지만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
이나
생각과 사상의 차이도 멀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빠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막내동생 영희를 좋아해주었고, 웃음으로 맞아 주었다.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에서 그들은 큰 갈등을 겪고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냈던 것 자체가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양영희 감독은 [디어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정치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전작인 [디어 평양]에서 양영희 감독은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다 영화 후반에 가서
세 아들을 일본에 보낸 것을 후회하느냐고 묻지만, 그 아들들인 세 오빠에겐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굿바이, 평양]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세 오빠에게 물어 보았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장면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다. 물론 그것은 북한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동생으로서 배려했을 수도 있고,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카메라를 들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양영희 감독은 2005년 마지막으로 북한을 방문했고, [디어 평양]이 개봉한 2007년 이후 북한 입국이 금지되어있기 때문에
[굿바이, 평양]은 2005년까지 찍어 놓은 자료화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화의 어렸을 적 모습과 중학생까지의 모습만을
우리는 볼 수가 있다. 선화는 지금 대학생이 되었고, 현재의 선화를 온전히 카메라에 담을 수 없기에

대학생이 된 선화의 생각은 우리가 알 수가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2007년 [디어 평양]이 개봉을 하고, [굿바이, 평양]이 개봉할 때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디어 평양]에서 양영희 감독과 함께 매우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 아버지
양공순은 오랜 투병생활 끝에
2009년 눈을 감았고, 큰 오빠는 오랜 세월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하지만 [굿바이, 평양]은 자신의 가족을 모두 담는 것이 아니라 양영희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 선화에 초점을 맞춘다.
원래 영화의 제목이 [선화, 또 하나의 나]였던 것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선화의 삶이 자신을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기에 선화를 찍은 자료가 바로 [굿바이, 평양]이 된 것이다.
[디어 평양]이 완전하게 자신의 질문으로 정체성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영화였다면
[굿바이, 평양]은 자신과 선화 두 인물에 대한 공존에 관한 영화다.



이데올로기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모든 것이 통제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북한에서의 삶을 살고 있는 선화를 자신과 비교하면서
양영희 감독은 중심부로
찾아 들어가려 한다. 중학생이 된 선화와 양영희 감독은 평양 대극장 앞에서 대화를 하는데
이때 선화는 카메라를 꺼주길 바란다. 화면이 검게 변하고 자막이 뜬다. 양영희 감독은 연극에 대해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
선화는 그것에 대답을 하는
자막이 흐르는 것이다. 선화의 말은 누구나 쉽게 질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고,
고모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양영희는 이때의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화를 생각하면 마음 아파했고, 더 좋은 환경에 대해 말해주곤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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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감독이 정치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일한국인(조선인)의 신분
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아도
결국 정치적으로 묶일 수밖에 없는 위치에 노출 되어있다. 선화가 자신과 같은 힘든 시기를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양영희 감독은 말한다.
양영희 감독은 '연예인' 기질이 있는 선화를 마음껏 드러낸다. 선화는 카메라 앞에서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선화가 아주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이 선화를 카메라에
담는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굿바이, 평양]은 전작인 [디어 평양]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
양영희 감독의 가족사와 개인사는 절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다. 전작이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자신을 말하고 증명해 보이는 시간들이었다면,
[굿바이, 평양]은 자신의 딸 같은 선화에게 자신이 받았던 고통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고모의 간절함이 묻어 있다.
양영희 감독은 계속 선화를 못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고 다시 만나서 양영희 감독이 생각하는 그런 아름다운 삶으로 살아갈 것이다.

선화의 북한에서의 삶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하려는 고모의 마음도 있다는 것을 [굿바이, 평양]은 말하고 있다.



선화가 성장을 해 양영희 감독의 나이 정도가 되었을 때 자신의 모습과 사회에 대한 고통스런 질문을 던지는 것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가 않기 때문에 양영희 감독은 [굿바이, 평양]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양영희 감독은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영화를 끝내고, 선화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 자신의 꿈을 이루길 기도한다.
아버지는 쓸쓸하게 오사카에서 죽음을 맞았지만, 언젠가 그들은 웃으면서 함께 만날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대학생이 된 선화나 결혼을 한 선화 혹은 엄마가 된 선화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안타깝게 헤어지는 평양을 원치 않는다. 다시 한 번 평양의 이름을 부르면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다큐멘터리를 계속 기다리겠다.
(조성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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