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 승효상의 我記宅處 … 2

2011.09.14 16:24

arcadia 조회 수:2280 추천:81




[승효상의 ‘我記宅處’] · 오늘은 ‘오늘 피는 꽃’ 바라보세요 … 6 - 10 회 … 2011-08-27



































































     

오늘은 ‘오늘 피는 꽃’ 바라보세요  


















  • 오늘은 ‘오늘 피는 꽃’ 바라보세요








  • 배롱나무(木백일홍)의 붉은 꽃.

    어떤 곳을 여행할 때, 그 장소의 면적이나 크기에 대한 감각이 있으면
    그 현실을 훨씬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물론 자기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예컨대 나는 우리나라의 면적이나 서울의 크기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사는 집이나 일하는 사무실의 치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안다.
    지구 둘레나 지구의 면적까지 알고 있으니 지나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런 치수를 기억한다는 것은 공간과 위치에 대한 감각을 인식한다는 말이어서 어느 곳을 가든지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게 된다.



    몽골에 갔을 때다. 몽골은 면적이 - 내 방식으로 따지자면 - 4740억 평이나 되어 한반도의 7배에 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인구가 불과 270만 명이라 우리나라 남북한 총인구 7200만 명의 4%밖에 되지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면적은 1억4000만 평으로
    2억 평의 서울보다 크게 작지는 않은데 전체 인구의 반이 산다고 했다.
    그러니 나머지 백수십
    만 명에 불과한 인구가 5000억 평에 가까운 면적에 살고 있어
    평균적으로
    따지면 1인당 거의 40만 평의 땅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경우 한 사람당 800평꼴이니 상상해 보시라.



    이 몽골에 20년 넘게 1년에도 몇 차례를 여행하는 한국인이 있다.

    대구에서 철강사업을 하는 유재성 회장이라는 분인데, 그 멀건 곳에 왜 그렇게 자주 다니는지를 알지 못했다.
    드디어 6년 전에 몽골로 나를 처음 초대했다.
    몽골의 초원은 생각보다 광활했다.
    한참을 달려야 양과 염소 떼를 기르는 가족이 사는 게르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한 가족이 관리하는 영역이 어림잡아 1000만 평의 넓이쯤으로 보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대대손손 한
    지점에서만 고독한 삶을 사는 저들은 이 자연과 가축의 관리자적 사명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닐까.



    그곳에서 유 회장으로부터 감동적인 얘기를 들었다.

    몽골의 초원은 겨울이 워낙 길어 눈이 쌓이면 5월이 되어야 녹는다고 했다.

    초원의 풀을 뜯어 먹고 사는 동물들에게는 재앙의 기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동물들은 눈이 오기 전에 풀을 먹을 수 있는 한 먹어서 자기 몸을 3배 이상으로 불려놓는다.
    그러곤 긴긴 겨울 동안 몸에 비축된 지방을 소진하며
    버틴다는 것이다.
    드디어 봄이 오면 동물의 몸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있는데,
    그때 초원에 남아있는 눈을 들치고 나오는 최초의 풀은 약 성분이 있어 이 약초를 뜯어 먹으며 건강을 신속히 회복한다.
    힘을 얻은 동물이 봄풀이 솟아 나오도록 언 땅을 헤집으면, 초원은 다시 온갖 풀과 야생화로 뒤덮이게 된다고 했다.

    아, 이런 생명의 신비라니….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핑 돌 정도의
    감동을 받았다.
    그 이후로 본 몽골의 광활한 초원은 그냥 초원이 아니었다.
    그 원시적 적막은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유 회장이 자주 여기를 찾는
    이유가 납득되었다.



    지난 6월 유 회장은 나와 건축가 몇 명을 그곳에 다시 초대했다.

    나를 제외하면 모두 초행이었다. 6월 말은 야생화가 가장 많이 피어 있는 때였다.
    동행한 조경가 정영선 선생은 초원에 가득한 야생화의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 선생으로부터 꽃 이름을 들어 알게 되었다.
    백리향, 양지꽃, 물매화, 말나리, 미나리아재비, 할미꽃, 앵초, 엉겅퀴, 원추리가 10만 평, 100만 평의 단위로 펼쳐져 있었다.
    어떤 꽃은 한국에서 비싸기도 하지만 구하기도 힘든데 여기는 지천이라고 놀라워했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들판은 푸르게 되었다가 백색으로 뒤덮였다가 붉은 꽃이 다시 올라와 물들이는 등,
    초원에서 전개되는 꽃들 간의 생태적 드라마를 들으면서 그 놀라운 섭리와 질서에 대해 우리 모두 말을 잃었다.
    신의 정원이었으며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건축은 여기서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풍경을 보는 게 여행의 마지막 단계라고 했다. 크게 깨달은 게 있었다.
    꽃 이름을 아는 게 그 꽃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며 그 속에 내재된 자연의 질서를 깨닫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면 그 꽃을 다시 보았고 더욱 아름다웠다.



    나는 다음 주 개막을 앞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일을 맡아 한 달 전부터 광주에 거주하고 있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 상황과 전시 성과에
    대한 중압감으로 내 몸은 이미 지쳐 있다.
    이런 나를 위로하는 게 있다.
    광주지역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배롱나무(또는 목백일홍)의 붉은 꽃이다.

    내 평생 이렇게 많은 붉은 꽃을 본 적이 없다. 어떤 곳은 산이며 계곡이며 온통 다 붉다.
    배롱나무가 가로수로도 쓰일 정도이다. 그야말로 ‘천지 삐까리’ 다.

    비엔날레의 성공 여부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백일의 생명이 다하면 사라질 저 붉은 꽃을 보는 일이 내겐 지금 당장 더 급한 일 아닌가.
    광주로 오시라. 오늘 배롱나무 붉은 꽃을 보는 일이 우리 삶의 윤택함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덧붙이자면, 광주는 그 크기와 인구가 울란바토르와 거의 똑같다.



    - 중앙일보 [승효상의 ‘我記宅處’]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 2011.08.27
















         

    종묘정전 · 병산서원 · 선암사 … 느긋이 걸어보시죠  


















  • 종묘정전 · 병산서원 · 선암사 … 느긋이 걸어보시죠




  • 이 여름 휴가철, 건축을 주제로 보내시면 어떠신지...

    그런 특별한 분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옛 건축 몇 군데를 알려드리고 싶다.

    좋은 사색의 시간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건축에 대한 나의 생각과 방법은 우리의 옛 건축으로부터 영향받은 게 너무도 많다.
    공간의 의미와
    비움의 아름다움을 배웠고, 우리 삶에 맞는 건물의 치수와 크기를 배웠으며,

    자연 속에 서는 건물의 좌향(坐向)과 집합하는 방법을 배웠다.
    지금도 간혹
    건축에 의문이 들 때면 구태여 이들을 찾아가 내 생각을 확인하곤 한다.

    이 땅에 남은 모든 옛 건축들에 그런 빚을 지고 있지만,
    그중 다섯 곳만 사유를 들어 소개한다.



    아무래도 종묘(宗廟)가 첫 번째인데, 조선 왕들의 신위를 여전히 모시는
    실제적 기능이 있는 건축이다.
    100m 길이의 지붕이 검붉은 공간을 누르며
    월대(月臺,전각 앞의 섬돌) 위의 비움과 마주하는 종묘정전(正殿)의 모습은

    이 세상 건축을 통틀어 봐도 가위 압권이다. 건축이 얼마만큼 위대한가.

    부슬비 오는 날 혼자서 이 월대 위에 펼쳐진 한없는 비움 속에 서 있어 보시라.
    나는 그것으로 건축의 본질을 짐작할 수 있었으며, 지금도 내 건축의 정체성이 혼란에 빠질 때 나는 여기를 찾는다.



    하회마을에 있는 병산서원은 더욱 각별한 건축이다.

    건축이 어떤 방법으로 땅과 연관을 맺어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자연과 건축과 사람이 맺는 관계가 너무도 절묘해,
    자연은 여기서 더욱
    아름답고 사람은 더욱 귀하게 보이니 이를 담는 건축은 그 자체로 지혜다.

    건축은 지혜로 말미암아 짓는다고 성경의 잠언에 있던가.



    경주 안강의 독락당은 서양 건축과 우리 건축의 차이를 아주 잘 드러낸다.







    빌라 로툰다(빌라 카프라).

    같은 16세기에 이탈리아 비첸차(Vicenza)
    에 지어져 지금까지 서양 건축의 텍스트가 된
    르네상스때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1508~80)
    빌라 로툰다(Villa Rotunda,카프라)라는 집과 비교하면
    우리의 건축이 왜 다르고 아름다운지 바로 알 수 있다.



    요즘에 ‘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이다’ 라는 구호를 새 시대 새로운 화두로 삼는 서양이지만,
    이는 이미 이 집에서
    실천한 우리 선조의 당연한 덕목이었던 것이다.



    지난번 칼럼에서 소개한 영주 봉정사의 영산암도 빠질 수 없다.
    그런데
    이 암자가 가진 비움의 아름다움에 대해 쓰고 난 후 몇몇 지인들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요즘에는 번지르르한 기와를 새로 입혀서 내가 기술한, 그런 고졸한
    아름다움이 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럴 게다. 이 땅에 몇 남지 않은 옛 건축들이 그런 식으로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예가 수두룩하다.
    새 기와야 시간의 때가 묻으면 다시 낯익은 풍경이 되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어 탄식을 자아낸다.
    특히 사찰 건축이 유독 그렇다. 중창불사를 내세우며 증축 · 개축을 해댄 터에
    역사가 오랜 옛 사찰이 가지는 엄정한 격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콘크리트로 기와집을 흉내내며 건축의 진정성을 왜곡하기도 하며,
    솜씨 없는 장인들에 의해 보물 같은 옛집들이 천박하게 치장되기도
    한다.
    심지어 본질마저 심하게 왜곡하는 예도 있다.



    내가 오래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며 극찬했던 대구 근교 비슬산의 어떤 절로 가는 길은,
    근래 온갖 희한한 장식과 석물, 콘크리트 포장으로 바뀌어 나를 절망케 했다.
    없는 듯 있고 끊어진 듯 이어지며 나를 끊임없이 사유하게 하던 그 가난한 길을 두고
    ‘보이지 않는 길’ 이라는 제목으로 글까지 쓴 적이 있었는데,
    보이는 물질에 얽매이는 사바세계의 몽매무지함으로 그 아름다운
    길은 이제 기억에만 남게 되었다.



    그런 답답함을 풀어주는 곳이 있다. 바로 승주에 있는 선암사다.

    이 절은 1954년 법난으로 불리는 태고종과 조계종의 분규가 일어난 후
    아직도 재산의 소유권 다툼이 법원에 계류 중이어서 중창불사를 할 수 없게 된 곳이다.
    내 욕심으로만 보면, 우리 옛 건축으로서는 대단한 전화위복이요 천만다행이 되었다.
    그만큼 원형이 대단히 잘 보존되어 있다.
    원래는 50채가 넘는 규모의 큰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20여 채의 건물만 남아 있는데,
    그래도 이 사찰의
    경내를 둘러보다 보면 마치 어떤 작은 마을 속을 거니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대개 사찰 건축은 불교적 위계를 따라 대웅전을 중심축으로 건물들이 배치돼 다소 무겁다.
    그러나 이 선암사의 각 건물들은 각기 다른 단위별로 중심을 두고 독립적 영역을 구성해 모두가 존재감을 갖고 있다.
    쉰 채가 있든 스무 채가
    있든, 설혹 한 채만 있어도 그대로 선암사다.
    즉 개별 가치가 전체와 같으니,
    차별 속에 평등한 그게 화엄사상이라고 했다.
    그래서인가. 선암사는 모든 부분이 아기자기하며 드라마틱하고 변화무쌍하다.
    게다가 모두 진정성이 있는
    건축이어서 어디를 가든 흥미진진하다.
    사시사철 꽃도 많은 이곳에 요즘은
    특히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한창일 게다.



    이 여름, 우리의 서정을 다시 일깨우는 이 아름다운 우리의 옛 건축들을 찾아 느긋이 회유하며
    도시에 지친 우리 삶을 위로하게 되시길 바란다.



    - 중앙일보 [승효상의 ‘我記宅處’]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 2011.07.23








    안동 병산서원. / 병산서원의 누마루인 만대루(晩待樓).

    정면 일곱 칸, 측면 두 칸짜리의 큰 규모로 앞쪽으로 병산과 낙동강을 낀 자연이 펼쳐진다.

    병산서원은 강산의 경관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탁월하게 배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동 하회마을. 우리나라 전통마을의 공간구성을 잘 보여주는 곳.

    허와 실, 열림과 닫힘을 통해 주변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전통한옥의 공간감,

    결코 단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은 켜의 공간들은 우리에게 충분히 감동적이다.






    경주 안강 독락당(보물 제 413호)
















         

    ‘부실한’ 영산암이 내겐 더 크다  


















  • ‘부실한’ 영산암이 내겐 더 크다




  • 지난 5월 말, 20세기 건축사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가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
    진실의 건축이라며 극찬한 ‘르 토로네(Le Thoronet)

    수도원을 찾아간 게 사실 나로서는 다섯 번째 방문이었다. 더러는 가이드를

    부탁 받아 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 곳을 다섯 번이나 간다는 것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건축이라도 이곳은 더구나 폐허인데 왜 그렇게
    나를 계속 순례하게 하는 장소가 되었을까.
    물론 수도원 여행은 다른 곳을
    가는 것보다 좀 특별하다. 여행이라는 게 몸을 움직여 이뤄지는 일이지만,

    수도원에 도달하면 그때부터 여행길에 지친 육체는 쉬고 정신은 오히려 맑아져 영혼이 사유의 길을 따라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듯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르 토로네’ 수도원은 아마도 이를 위한 최적의 장소다.
    그래도 다섯 번째라니… 뭔가 내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었다.







    ‘르 토로네(Le Thoronet)’ 수도원










    ▶ 장식이 극도로 절제돼 있는 ‘르 토로네(Le Thoronet)’ 수도원의 회랑(큰 사진)과 중정(中庭).

        노동과 독서 · 기도를 일상으로 삼는 수도사들의 정신이 녹아있다.




    수도원은 이탈리아의 수도사 베네딕트의 가르침에 따른 수도 규칙이 6세기에 수립되면서 본격적 체제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11세기 무렵에 이르러 수도원의 세력이 커져 급기야 세속적으로 변하자,
    수도의 진정성을 찾는 수도사들을 중심으로 교회 개혁의 움직임이 일어나
    금욕적 베네딕트 규칙을 철저히 따르기 위해 시토(Citaux)회가 창설되었다.
    이들 중 일부가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의 숲 속 물가의 땅을 찾아 세운 게 ‘르 토로네’ 수도원이다.
    12세기 후반에 짓기 시작해 13세기 초 완공했다고 하지만, 전체 건물이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한 사람의 강력한 지도 아래 지어졌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이 수도원 건축이 갖는 완벽한 통일성은 어떤 건축보다 우월하다.



    ‘르 토로네’ 수도원은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에 상수리나무가 울창한 계곡 속
    물가를 부지로 삼아
    1176년에 지어졌다. 전체가 동일한 수준의 건축기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한꺼번에 지어졌다고 추정되며 증축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완벽하다.



    울창한 상수리나무 숲 속을 지나 계곡의 물을 건넌 후, 안내소를 거쳐
    폐허의 축대에 올라 햇살 가득한 마당을 안게 되면, 이 수도원 본당의 정면과 마주하게 된다.
    로마네스크 건축의 소박하고 단아한 입면인데, 출입문은 가운데 있는 게 아니라 오른편 한구석에 작게 뚫려 있다.
    가만히 몸을 숙이고 들어가 내부의
    어둠에 적응하기 위해 다소곳이 서 있으면,
    아 지극히 아름다운 빛의 다발들이 고요하게 공간을 밝히며 밀려온다.
    바닥과 벽, 기둥과 천장 모두 한 가지
    석재로만 이루어진 공간 속에 이 감동적인 빛은,
    때로는 석재의 거친 표면을
    긁기도 하고 모서리의 각을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하며
    둥근 천장을 부드럽게
    감싸며 돈다. 그러고는 더할 나위 없는 고요가 그 위에 내려앉는데,

    마치 우리의 영혼이 그 고요 속에 거주하며 빛을 발하는 듯하다.



    인근에 있는 돌만 사용해 지은 집인데, 그 석재의 쓰임이 검박하고 절제돼
    있다.
    석재끼리의 맞춤과 이음은 대단히 정교하며 부재의 가공도 정직하다.

    어디 모자람이 없고 넘침도 없다. 본당 옆 중정(中庭)을 감싸는 회랑의 바닥은 지형을 따라 완만하게 흐르고,
    그 바닥의 돌판 위에 아치형 창틀을 통해 강렬히 새겨지는 빛과 그림자의 행렬이 팽팽한 긴장을 만든다.
    수도사들은 이 빛과
    그림자를 밟으며 진실됨과 경건함을 구했을 게다.
    그리고 몸을 낮추어 돌들의 소리를 경청하며 응답으로 찬트(Gregorian chant)를 불렀을 것이다.
    그야말로 성서에 기술된 대로 돌들이 일어나 찬양했다.



    문득 의문이 일었다. 그래서 이 완벽한 건축으로 무엇이 더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래서 결국 폐허가 되었을까.
    그때, 불현듯 내 뇌리 속을 파고든 한 건축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땅 봉정사에 있는 영산암이었다.






    안동 봉정사 영산암.

    영산암(靈山庵)은 고려시대 지은 절
    인 봉정사(鳳停寺)의 부속 암자인데,

    대웅전 동쪽 요사채에서 산 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비탈 위에 고즈넉이 앉아 있다.
    본래는 계곡의 개울을 건너야 갈 수 있었지만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의 촬영 장소로 알려지면서 몰려오는 이들을 맞기 위해 길에
    석판을 까는 바람에 운치가 없어져버렸다.



    수도정진을 목적으로 하는 이 영산암은 부처가 설법할 때면 꽃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뜻의 우화루 하부를 통해 출입한다.
    바로 서면 키가 닿을 정도여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눈높이에 마당이 전개된다. 마당에 오르면 양편에 요사채가 있고,
    단을 높인 안쪽에 법당인 응진전과 삼성각이 가로막아 전체적으로 마당의 공간을 한정하는데, 고요가 깊게 깔려 있다.
    마당은 손바닥만 하고 그것도 두 단으로 갈라져 있으며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볼품없는 받침 위에 서 있다.

    건물들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고 쓰인 부재도 대단히 부실하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난간과 계단은 아슬아슬하기까지 한데,
    그럼에도 전체를 지배하는 침묵과 고요의 그 깊이와 맑기가 여간 아니다. 불가해한 비움.
    어쩌면
    완벽하지 못해, 아니다 완벽은 비움이 아니므로 의도적으로 완벽을 버린 까닭에 얻은 자유로움이다.
    그래서 여기서 육신은 더욱 편안하고 영혼은 더없이
    자유로우니, 그게 수도원 건축이 가져야 할 최고의 목표일 게다.



    그렇다. 대상무형(大象無形)이라 했다. 큰 사유는 형태가 없으니,
    부실한
    영산암이 내게는 더욱 크다. 이제 완벽한 르토로네에는 그만 와도 될 것인가.



    - 중앙일보 [승효상의 ‘我記宅處’]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 2011.07.02






    영산암






    영산암 입구에 들어서면 조용한 마치 수도하는 느낌이 든다






    봉정사-영산암(자연과 조화)
















         

    ‘르 코르뷔지에’, “어떤 것도 여기에 더해질 수 없다”  







    르 코르뷔지에의‘롱샹성당’(Chapelle Notre-Dame-du-Haut de Ronchamp), completed in 1955












  • ‘르 코르뷔지에’, “어떤 것도 여기에 더해질 수 없다”




  • 내가 믿기로는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는 단연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 ~ 1965)다.
    1887년에 태어나 78세로 생애를 마친 이 불세출의 건축가가 우리의 현대적 삶에 영향을 미친 범위는 너무도 광범위하다.
    그는
    모더니즘의 정신을 요약했고 원칙을 세웠으며 수많은 글과 그림과 건축을 통해 그 가치를 실천한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현대의 어떤 건축가도 결코 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그는 지금에도 여전히 건축과 도시의 중요한 교본이며
    논쟁의 핵심이 된다. 위대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그는 어떻게 교육받았을까? 여행을 통해서다.



    현재에도 10스위스프랑 지폐의 얼굴인 그는 스위스의 작은 산기슭 마을
    라쇼드퐁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시계공이고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이라
    예술적 재능은 이어받았겠지만,
    그의 환경은 산속의 자연이어서 그가 건축
    교육에 접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었다. 다행히 그 시골의 학교 선생은
    건축의
    위대함을 아는 에콜드보자르 출신이어서 코르뷔지에에게 건축을 하도록

    권유하며 여행을 떠나게 한다. 스무 살 되던 해 시작한 이 5년간의 여행은

    그의 삶에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파리에 가서 도시의 모습에 눈을 뜨고

    콘크리트와 철의 기술을 배웠으며, 빈에서 시세션이라는 새로운 물결을 배웠고,
    베를린에서 혁명에 들떠 있는 젊은 건축가들과 교우했다. 그리고 이어진

    발칸반도와 그리스 · 터키의 여행에서 드디어 건축의 고전을 마주하게 된다.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파르테논을 스케치하며 이렇게 말한다.

    ‘건축은 빛 속에 빚는 볼륨의 장엄한 유희다’.
    그는 이 동방여행을 통해
    스스로 건축을 배웠고 건축의 본질을 깨닫게 된 것이다.



    스스로를 깨우쳐 샤를 에두아르 잔네르(Charles-Edouard Jeanneret)라는

    본명마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로 바꿨다.
    ‘에스프리 누보’라는 잡지의 창간과 많은 저술을 통해 이론적 토대를 다지고
    퓨리즘(Purism, 순수주의)을 창시하며 파리와 세계 문화의
    주류적 위치에 단숨에 오른 그는 기술을 신봉한 모더니즘 이론을 세우며 건축과 도시에 혁명적 성과를 만든다.
    지금 봐도 초현대적인 빌라사보아(Villa Savoye)를 80년 전에 지었고,
    오늘날의 아파트보다 훨씬 진보적인 유니테타비타시옹(Unite d'Habitation)은 60년 전의 일이었다.
    유엔본부를 설계했고, 인도에 찬디가르(Chandigarh) 신도시를 세웠으며,

    일본 · 미국 · 남미에 그의 이념은 전 지구적 범위에 전파되고 세워졌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그의 작품 중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것이 프랑스 벨포르에 있는 롱샹교회당(Chapelle Notre-Dame-du-Haut de Ronchamp)이다.
    언덕 위에 지은 이
    순례 성당은 충격이었다. 아름다운 곡선과 강렬한 형태로 건축이 시가 되었다.
    많은 아류를 배출했고 수없는 숭배자를 낳았지만,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의 교조라 칭하며
    그를 추종했던 냉철한 이성의 건축가와 지식인들에게는 아픈 배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세운 교리를 스스로 부수며 새 길로 나아가 얻은
    위대한 창조였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의뢰받게 된다.
    롱샹의 건축주였던 쿠드리에 신부가 리옹 근처에 짓는 ‘라 투렛 (La Tourette)’ 수도원의 설계를
    부탁하는데, 조건이 있었다. 12세기에 지어진 프랑스 남부의 ‘르 토로네’ 수도원을 참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모든 사물에서 득도한 당대의 거장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70평생 옹고집으로 일관된 삶을 산 이 노장 건축가는 이내 그 로마네스크 시대의 수도원을 찾는 여행길에 오른다.
    파리에서 1000㎞가 넘는 길을 곧장 가지는 않았을 것인데, 혹시 지난달 말 내가 순례한 이런
    루트를 탔을 게다.
    먼저 파리에서 100㎞ 정도 떨어진 퐁트네이 수도원에 가서 시토회 수도회의 검박한 건축을 보고
    수도원 건축의 원칙을 알게 되었을 것이며, 인근에 있는 베즐레 순례도시에서는 순례자가 가지는 경건을 체득했을 것이고,
    남쪽 밑에 있는 클뤼니 수도원의 폐허에서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도
    사유했을 것이다.
    프로방스에 도착해 보랏빛 라벤더가 가득한 ‘세낭크 수도원(L'abbaye de Senanque)’에서
    수도사들의 절박한 삶이 빚은 침묵에 감동했을 것이며, 드디어 ‘르 토로네’에 도달해
    그 여행에서 만난 모든 건축을 더한 것
    보다 더 큰 충격을 받고 만다.
    이는 건축의 본질을 찾아 온 생애를 밤바다에서 항해해 온 그가 결국 찾은 종착점이었다.



    ‘라 투렛’ 을 여행한 후 파리에 돌아온 그는 사진가에게 그 오래된 수도원을
    찍게 하고
    ‘진실의 건축’ 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발간하게 하여 직접 쓴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 어떤 것도 여기에 더해질 수 없다… 이 엄청난 조우를 기뻐하고 축복하며 반기자.”



    그는 새로 짓는 ‘라 투렛’을 철저히 그 ‘르 토로네’의 건축정신을 모방하며 그렸다.
    파르테논을 보고 전율했어도, 고전적 건축에 가위질을 그려놓으며
    새로운 건축의 모든 원칙을 만들고 주장한 그가 다시 고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라 투렛’을 모조품이라며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코르뷔지에 작업 전체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창조며,
    인류에 헌정된 20세기 최고의 건축이며
    예술이라고 나는 믿는다.



    - 중앙일보 [승효상의 ‘我記宅處’]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 2011.06.11







    ▲ The Villa Savoye (빌라사보아) in Poissy-sur-Seine, France (1928)







    ▲ L'unite d'habitation (유니테타비타시옹) de Marseille, France, built 1947-1952







    ▲ Unite d'Habitation (유니테타비타시옹) - The "Corbusierhaus" in Berlin. 1957








    (위) ▲ Chandigarh (찬디가르) High Court (Palace of Justice), India 1952

    (아래) ▲ A governmental building, Chandigarh (찬디가르), India 1953







    ▲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 in Tokyo, Japan. 1957







    ▲ 라 투렛 (La Tourette) 수도원 성당, 리용, 프랑스 1959년







    ▲ 라벤더가 가득한 세낭크 수도원 (L'abbaye de Senanque)







    Centre Le Corbusier, Zurich


















         

    ‘위대한 침묵’, 수도자, 온몸 던져 길을 닦다  


















  • 수도자, 온몸 던져 길을 닦다




  • ‘위대한 침묵(Into Great Silence)’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프랑스 알프스 산자락에 있는 ‘그랑 샤르튀레즈’ 수도원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찍은 것인데,
    대사가 거의 전무하고 상영시간이 2시간40분이 넘어 성공적 흥행은 애초에 기대 밖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에서 꽤 많은 관객을 모았던 영화였다. 필립 그뢰닝이라는 감독이
    이 수도원에 촬영을 청원한 지 무려 15년 만에 허락을 얻어 6개월을 수도사들과 함께 기거하며 혼자서 찍었다고 했다.
    영화의 내용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동트기 전 일어나서 기도를 시작으로

    오로지 성경 읽기와 쓰기, 묵상, 기도, 세 번의 미사를 드리는 수도사들의 일과(日課)를 담백하게 담고 있을 뿐이다.
    수도원은 폐쇄되어 외부와 단절되고,
    내부도 대화는 단절되어 침묵만이 흐른다.



    나는 이 영화의 시사회를 겸한 관객과의 대화에 해설자로 초청받는 바람에
    이 영화를 사전에 보아야 했다.
    지겨울 것이라는 영화사 관계자의 걱정스러운 전갈이 있었지만, 내게는 그 긴 시간이 순간적으로 흘렀다.
    이 수도원을 가본 적이 없었어도, 그 영화를 보는 일은, 도면으로만 상상하던 풍경을 확인하는
    일이어서 흥미롭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수도원을 의미하는 영어에는 클로이스터(cloister)와 모나스터리(monastery)

    라는 두 단어가 있는데, 그 어원은 다소 다르다. 클로이스터는 갇혀 있다 라는 어원을 가지는 반면,
    혼자 됨을 어원으로 삼는 모나스터리는 그런 클로이스터 中에서도 스스로를 독방에 가두어 침묵과 은둔의 삶을 원하는 수도원을 뜻한다.
    1084년에 설립된 카르투지오 수도회가 최초의 모나스터리이며
    그랑 샤르튀레즈가 그런 봉쇄수도원의 본산이다.



    나는 사실 수도원 기행을 대단히 즐겨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혼자든 여럿이든 기회만 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 나서곤 했다.
    세상을 떠나 스스로 침묵하며 단호한 삶을 사는 수도사들의 공간을
    순례하는 일은 찌든 일상에 흩트러진 나를
    곧잘 다시 추슬르도록 자극하는 일이었다. 대개 이런 수도원들은 깊은 산속이나 절벽 같은 고독한 장소에 놓여 있다.
    수도사들이 그런 곳을 찾는 까닭은 그 고독한 공간이 자신을 번뇌에서 해방시켜 주리라 믿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그런 절체절명의 장소에 절박하게 놓인 수도원은 그 풍경만으로도 애절한 감동을 준다.
    예컨대 탁발수도회를 창시했던 프란체스코가 활동한 아시시의 화려한 성당과 수도원에서는 아무런 감동을 못 받던 내가,
    그가 혼자서 수도하기 위해 찾던 산속의 초라한 암굴, 에레모 카르체리를 보고 그 적막과 고독의 풍경에 가슴 저리는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이다.



    물질과 육체로부터 자유롭고 그래서 정신적으로부터도 오히려 자유로운 그들의 맑은 삶이 그런 아름다운 공간과 묵시적 건축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기꺼이 고독으로 몰아넣고 수도하는 그들과 그런 수도원은 그래서 늘 경외의 대상이었다.





    a').snspost({ type : 'twitter', content : sTitle + ' http://mijumunhak.net/eubonghee/board_12/34994' }); $('.facebook>a').snspost({ type : 'facebook', content : sTitle }); $('.delicious>a').snspost({ type : 'delicious', content : sTitle });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말러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 - 베니스의 미로를 흐르는 선율 arcadia 2015.06.22 10153
    공지 [한 컷의 과학] 지구는 또 있을까 ~ 노벨상 1 - 15 回 arcadia 2015.06.14 18335
    공지 음악, 나의 위안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arcadia 2015.06.03 1556
    공지 리스트 ‘두 개의 전설’ · 프란치스코의 기적을 소리로 arcadia 2015.06.03 8626
    공지 버클리문학회초청 문학캠프 특강의 소감 · 이용욱 교수 [1] 유봉희 2015.05.08 8431
    공지 용재 오닐의 슬픈노래 中 ‘장미와 버드나무’ arcadia 2015.05.03 3428
    공지 모차르트 ‘편지 이중창’ - 산들바람의 노래 arcadia 2015.04.28 3161
    공지 '음악이 있는 아침' - Alice Sara Ott plays Chopin arcadia 2015.03.29 1462
    공지 TV문학관 메밀꽃필무렵 - 이효석 arcadia 2015.03.26 2448
    공지 TV문학관 소나기 - 황순원 원작 arcadia 2015.03.25 5066
    공지 ‘봄비’… 김소월 유봉희 2015.03.19 11362
    공지 미당탄생100년 - '바이칼' 호숫가 돌칼 外 arcadia 2015.01.18 866
    공지 특집다큐 - 玆山魚譜 200주년 新자산어보 2부작 arcadia 2014.12.23 481
    공지 겨울왕국 - Frozen - Let It Go 유봉희 2014.05.01 486
    공지 버클리문학산행 ㆍ Mt.Tamalpais & Bear Valley 유봉희 2013.02.11 2374
    공지 2014'시인들이뽑는시인상'수상(유봉희·한기팔) [1] 유봉희 2014.09.25 842
    공지 2014 '시인들이뽑는시인상' 시상식장에서 - 유봉희 유봉희 2014.12.13 1842
    공지 슈만 - 여름날의 평화 (Sommerruh ) [1] ivoire 2011.06.03 2443
    공지 Steinbeck Center / Berkeley Literature [1] 유봉희 2010.07.23 3505
    공지 윤동주 문학의 밤 - 버클리 문인들 [1] 유봉희 2009.09.08 1667
    공지 Fine Art Exhibition · 유제경 展 [2] 유봉희 2009.06.17 9461
    공지 MOM's Paintings / 어머니의 오솔길 · 유봉희 [1] 유봉희 2009.04.20 2337
    공지 Wallnut's Spring / Ducks & Egg Hunting'09 [1] 유봉희 2009.04.15 1303
    공지 인생덕목 (人生德目) /김수환 추기경 말씀 [1] 양승희 2009.02.27 1430
    공지 Bear Creek Trail [1] 유봉희 2008.12.30 1689
    공지 Earth and Environment arcadia 2009.01.06 1502
    공지 산와킨강 · San Joaquin River-&-Wallnut [1] 유봉희 2008.10.25 1856
    공지 [KBS 시가 있는 음악세계] 소금화석 [1] Amellia 2007.06.07 1902
    공지 내 별에 가다 [1] 박영호 2006.09.30 1863
    632 한반도 문명기원 2 · 바다를 품은, 반구대암각화 arcadia 2013.08.02 4830
    631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워프(warp) 항법 arcadia 2010.08.10 3580
    630 Mother and daughter / 어머니 arcadia 2010.08.27 3467
    629 해변의 묘지 · ‘바람이 분다! …’ · Paul Valery 유봉희 2009.07.21 3319
    628 Ideale (이상의 가인) / Tosti , Hermann Prey ivoire 2008.06.29 3241
    627 목신(牧神)의 오후 · 말라르메 · 드뷔시 arcadia 2009.03.19 2983
    626 버나드 쇼 · 이사도라 던컨의 여유와 자신감 arcadia 2009.11.01 2569
    625 Der Nußbaum (호두나무) ivoire 2008.05.27 2357
    624 名作漫評 … 박태준의 동무생각 / 부셰 … arcadia 2011.09.15 2355
    623 아리랑의 수수께끼 … 아리랑 주제 환상곡 arcadia 2011.09.07 2297
    » 건축가 · 승효상의 我記宅處 … 2 arcadia 2011.09.14 2280
    621 세상모든다큐 - 미국, 400년의 도전 1-2-3-4-5 부 arcadia 2012.02.16 2246
    620 마지막 잎새 (O. Henry) / 옛 시인의 노래 arcadia 2010.11.21 2204

    회원:
    3
    새 글:
    0
    등록일:
    2015.03.17

    오늘:
    30
    어제:
    16
    전체:
    858,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