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 · 조창환

2010.08.18 12:28

유봉희 조회 수:769 추천:114




마네킹 · 조창환 /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Yves Saint Laurent


































마네킹




- 조창환 (1945~)









마드모아젤 양장점 앞을 십 년 넘게 지나다녔어도

쇼윈도 안의 마네킹 셋이 서로 흘끗거리는 건

오늘 아침 출근길에 처음 보았다




툴루즈 로트렉의 「물랭루즈」에 나오는

빨간 스타킹의 비뚤어진 무희 같은

키 큰 마네킹이 돌아서 있고




「7년 만의 외출」의 마릴린 먼로 같은

젖가슴 늘어지고, 음탕하고

맨 종아리 허벅지까지 드러낸, 백치 같은

거품 많은 마네킹이 마주 서 있다




은사시나무, 여름 달빛에 흔들리는

잎맥 가늘고 여린

바비 인형 같은 마네킹은 고개를 숙이고

안 보는 척하면서 눈길을 주고 있다




입술 삐쭉 내밀며 아랫도리 오므리는

저것들이 구미호 다 된 줄을

오늘 처음 알았다




퇴근길엔

학교 운동장에 세워둔 내 늙은 자동차도

너무 오래 쓸쓸한 어둠 속에 떨었노라고

암내 맡은 나귀처럼 툴툴거렸다







- 시집 〈마네킹과 천사〉 中 (문학과지성사)




hope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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