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무리 끌고가는 유봉희 시인님!

주 경 림


유봉희 선생님께

이곳 서울은 봄꽃들이 한바탕 흐드러지고 나날이 연두빛 짙어져 녹색의 계절로 건너갑니다. 잠깐 시간의 발을 보는 순간은
꿈결처럼 흘러 곧 장마비에 무더위가 닥치겠지요.
그런데 선생님 지금 혹시 한국에 계신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예쁜 시집을 받고보니 지난 겨울, 감히 제가 선생님의 시집 초고를 먼저 보았던 일이 아주 영광스럽습니다.
컴퓨터 안에서 보물처럼 꺼내 보여주던 낱낱의 시들이
묶어놓으니 제빛을 드러내 더욱 가치있어 보입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40년 동안 모국어를 절차탁마해 가꾸어온
시심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어찌보면 시의 힘이 유봉희라는 한 개인의 존재이유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게는 「풀치다」의‘푸른 별’들의 반짝임의 여운이 오랫동안 남아 있습니다. 형광빛 푸른 별들이 담겨있는 명주잠자리
그 투명하고 얇은 날개가 눈 앞에서 팔랑거리는 것 같습니다.
“저 고요한 더듬이가 더듬는 곳은 어디인지” 구절에서는
숙연해지고 맙니다. 바로 “작은 것들과 눈 맞추며 오래 무릎을 접고 앉아 있었던” 시인의 모습입니다. 시심(詩心)의 더듬이로 더듬어 마이크로한 식물의 세계, 곤충의 한살이부터 우주적인 매크로한 세상까지 시밭으로 일구어갑니다. 개미귀신 개미지옥의 “뒷걸음으로 빙빙 돌며 자신의 함정에 자신을 가두던”
애벌레 단계는 비단 잠자리 뿐만 아니라 바로 제 이야기 같아 뜨끔합니다. 아직도 애벌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도 듭니다. 유봉희 시인은 독자의 그 마음을 다 읽은 듯 셋째 연에서 “뒤돌아보지 마라” 충고합니다. 물 속에서 자라 물 위로 활짝 날개를 펴 날아오르는 명주잠자리는 바로 시인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요? 영혼의 교감으로 감동을 주는 서정시의 미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게다가 ‘풀치다’라는
순우리말 까지 구사하고있어 한층 돋보입니다.

억센 선인장의 붉은 꽃봉오리를 “꽃불 솟는 내 마음”으로
읽은 화끈함과 그에 딱 어울리는 「선인장 로미오」라는 제목을 붙인 선생님의 안목이 놀랍습니다. 「마음 따라 눈 따라」
에서는 화엄경의 핵심사상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진수를 엿볼 수 있었으니 쉽게 읽히지만 뜻이 깊습니다.
저도 짧고 쉽지만 속 깊은 시 한 편 써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시집 발간 축하드리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귀한 시집 감사합니다.

2012. 5. 16

주경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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