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거푸집… 2-10

2012.04.21 02:49

유봉희 조회 수:87 추천:15

그들의 거푸집

유 봉 희


내 차는 189마력·horse power을 가졌다.

가끔 나는 고속도로에서 말발굽 소리를 듣곤 한다.
내 손은 건성 핸들을 잡고 있을 뿐, 백 팔십 아홉 마리의
흰말들이 갈기를 세우고 허연 입김을 뿜어내며 발굽이
길에 달 틈도 없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한때 초원을 달리던 야생마들이 뼈와 살을 땅에 묻고 지층에 스며들어 원유로 출렁이다가 다시 달려볼 조건을 찾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렇게 자동차로
그들의 거푸집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어젯밤에 내가 몇 만년 전에 보내진 별빛,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 별을 절절하게 바라 보았듯이 지금
내가 몇 만년 후에 돌아온 그들의 거푸집에 앉아 달리는 것 또한 같은 줄기에 있지 않겠는지

오늘 오후, 밀렸던 일상을 처리하러 길을 나섰다가 비 개인 쪽빛 하늘과 들판에 잠깐 눈 준 사이 차는 샛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영리한 내 말들이 내 심중을 알아채듯, 나 또한
그들의 의도를 모를 리 없다.

넓은 유채꽃 들판에 백 팔십 아홉 마리의 말을 풀어 놓았다.



   Massnet - Elegie for cello & piano




회원:
3
새 글:
0
등록일:
2015.03.17

오늘:
12
어제:
16
전체:
858,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