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깡패 떠나가다

2011.10.01 08:02

이주희 조회 수:2316 추천:295



깡패 떠나가다 / 이주희




**사막생활의 장단점을 알아갈 무렵, 살던 곳에서 이십여 마일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다.
어느덧 나이에 가속도가 붙고 활력은 줄어서, 치우고 닦느라 관절에 무리가 오는 살림살이는 줄여가며 이삿짐을 꾸렸다. 그리 멀리 옮겨 온 것도 아닌데 온도는 15도나 차이가 나서 초록빛이 눈에 더 들어왔다. 옮겨 와보니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머지않아 비가 올 것이기에 서둘러 빗물받이와 하수시설을 전문가에게 맡겼다. 그런 전문성이 필요한 일을 빼고는 나 스스로 하나씩 해나갔다.


마당에 돌도 골라내고, 좋은 흙도 섞어주고, 몇 개의 항아리를 올려놓을 장독대도 만들고, 작은 연못도 팠다. 나무 심을 차례가 되었다. 좋아하면서도 사막에서는 키울 수 없었던 은행나무를 심기로 했다. 열심히 구덩이를 파놓고 나무를 사러 갔는데 문제가 생겼다. 비좁은 마당과 수령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천천히 자라지만, 자랐다 하면 이웃에게 불편을 줄 만큼 커진다는 것이다. 어쩌거나 그만큼 자랐을 때에 나는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일 테지만, 해서 그 자리는 소나무가 주인이 되었다.


얼마 후, 새 식구가 들어왔다. 세상구경 나온 지 일 개월 반이 된 강아지다. 평소 개를 무서워하던 내가 친밀감을 갖게 된 것은 반려견 두 마리와 교감을 나누는 친정 언니를 보고 나서다. 신문을 보고 찾아간 집 마당에 들어서니 강아지 세 마리가 어미 개를 따라다니며 놀고 있었다. 개 주인은 낯선 사람에게 짖어대는 어미 개를 붙잡으며 조금 전에 새끼 한 마리가 양자 되어 갔다고 말했다. 선뜻 그들 곁에 다가가지 못하고 서 있는데, 근처에서 장난을 치고 있던 강아지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와 내 발등을 툭툭, 치고 가는 것이 아닌가? 더 길게 볼 것 없이 발등을 치고 갔던 강아지와 혈통서를 받아들고 집으로 왔다.


다음날, 동물보호소(Animal Control Center)에 들러 강아지이름을 은행나무라고 등록했다. 그런데 은행나무야! 하고 부르려니 매끄럽게 불리지가 않았다. 한국이름으로, 미국이름으로, 줄였다 늘였다 불러봤지만, 발음에 혀가 꼬이는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녀석이 목욕을 시켜주는 내 손등을 물었다. 예방주사를 맞혀주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했지만 언짢았다. 소독하고 약을 바르면서 소리쳤다. "에잇! 깡패!" 그 후부터 은행나무는 깡패로 불리었다. 그렇게 불러서일까? 하는 짓이 심술 맞은 놀부 같았다. 식탁이고 뭐고 오를 수 있는 곳은 다 올라다녔고, 목욕하자는 소리만 나오면 냅다 달아났다. 걷기를 해주려고 목줄을 채우면 질질 끌려오는 한이 있어도 따라오지 않았다. 그런 날은 구석구석 돌아가며 자신의 구역을 표시하고 다녔다. 쉬를 가리라고 전용문도 만들어 주었건만.


때마침 동네 벽보에 소식이 하나 올랐다. 어떤 사람의 개가 수명을 다해 슬픔이 크다며 같은 품종의 개를 가진 분은 연락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큰 결심을 하고 전화를 했다. 깡패를 데려가겠느냐는. 이틀 후에 오겠다 하여 넘겨줄 서류와 살림살이를 챙겨놓고 기다렸다. 깡패는 그것도 모르고 응접실에서 화장지를 물어뜯으며 난장판을 벌이고 있었다.

드디어 은발의 백인 할머니가 왔다. 동물 조련사와 함께였다. 조련사는 상냥한 말투로 깡패에게 채운 목줄을 끌었다. 멋모르고 몇 걸음 따라가던 깡패가 뭔가 이상했는지 차에 오르려던 몸을 비틀며 버둥거렸다. 순간, 울컥하는 것이 가슴속에서 치밀었지만,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할머니, 잘 키우세요. 그러다 힘드시면 다른데 주지 마시고, 언제든지 제게 되돌려주세요."

물론 돈이 오고 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정확히 사흘 뒤, 깡패는 내게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나의 무책임이 밉고 괴로워 잠을 잘 이루지 못했었다. 자꾸만 깡패의 버둥질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인제 와서 달라 하면 돌려줄까? 어쩌다 주인을 잘못 만나 이렇게 헤어지게 되다니! 이런저런 시름에 잠겼는데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얘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지 않나 봐. 밤에는 잠도 안 자고 끙끙거리기만 하고, 낮에는 문 앞에 엎드려만 있고, 밥도 안 먹으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 친해질 시간을 기다리기엔 내가 너무 늙었어."

행여 할머니의 마음이 변할까 봐 부리나케 달려갔다. 데려온 깡패를 애견 관리사에게 이발과 목욕을 부탁하고, 책방으로 갔다. Lhasa Apso에 관한 책 안에는 내가 몰랐던 정보들이 있었다. 그에게 늑대의 피가 흐른다는 것과 물을 안 좋아한다는 것도.

우리는 서로서로 알아가기 시작했다. 끈기를 가지고 대해주니 반응을 보였다. 깡패가 알아듣고 할 수 있는 일들은 대충 이렇다.


차렷! 하면, 상체를 일으켜 두 발로 선다, 악수! 하면, 오른손 왼손을 구별해 내민다. 전쟁놀이! 하면, 쓰러져 죽는 척한다. 안마! 하면, 뒤로 와서 등을 몇 번 두드려준다. 긁어! 하면, 두세 번 긁는다. 기어! 하면, 엎드려 바닥을 긴다. 굴러! 하면, 옆으로 빙그르르 구른다. 점프! 하면, 깡충 뛴다. 벌 서! 하면, 벽을 보며 선다. 춤 춰! 하면, 일어서서 몸을 한 바퀴 돌린다. 공굴리며 공 차! 하면, 발로 차 준다. 걸음마! 하면, 두 발자국 걷는다. 등등.

애를 태우게도 했다.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아 찾아다니다 집에 와보니 소나무 밑에 앉아 나를 기다렸던 일. 옆집에서는 개가 짖어 시끄럽다며 주의해달라는 전화도 왔었다. 그렇다고 성대제거수술은 못해줄 일. 하는 수없이 Bark collar라는 것을 사용했다. 짖으면 목에 자극을 줘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이 아팠지만 긴 외출을 할 때에 목에 걸어주었다.


그렇게 저렇게 13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깡패도 할아버지가 되어갔다. 이번 여름, 이 동네를 지나던 친척이 갓난아기를 데리고 방문을 왔다. 문 앞에 나가 섰다가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받아들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주변을 서성거리던 깡패가 갑자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쓰러졌다. 동물병원으로 가 검사를 했더니 별 이상은 없고 기도가 좀 약해서 그렇다고 하였다. 주사를 놓고 약을 먹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스윙벤치에 앉아 마당일 하는 나를 지켜보던 눈도 나빠지고, 낯선 사람이 오면 짖어주던 목소리도 약해져 갔다.


Bark collar를 사용해서 그런가? 혹시 옛날에 입양 갔던 생각이 떠올랐나? 갓난애가 오니 자기는 쫓겨날 것으로 생각했을까?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몇 차례 했다. 해가 저물고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올랐다. 웬일인지 집안에서 깡패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안팎으로 전깃불을 켜 가며 찾다가 뒷마당으로 가니 거기에서 달을 보고 있었던 듯,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야! 너 왜 혼자 그렇게 앉아 있어? 어서 들어와."

깡패가 고개를 돌려 천천히 나를 바라다보았다. 안타까움에 뒤엉킨 듯한 눈빛, 무언가를 암시하려 하지만 할 수 없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나눠보지 못한 그런 눈 맞춤이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깡패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나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시간 반이 지났을까? 깡패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짐승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밖에는 달빛이 하얗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깡패야~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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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종: 라사압소(Lhasa Apso)


★원산지: 티베트(Tibet) ★역사: 약 2,000년 ★몸무게: 5.9-6.8kg ★키: 25-28cm
★생김새: 키는 작고 귀는 늘어졌으며 짖는 소리가 큼. 기다란 등허리에 다부진 골격, 발달한 허벅지, 털은 직선으로 잘 안 빠짐. ★성격: 영리하고 쾌활하며 용맹스러움. 놀라운 내구력과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판단력과 충성심이 강함. ★길들이기: 고집스러우므로 어릴 때 단호하고 애정이 깃든 훈련을 요함. ★유래: 오래전, 늑대 개로부터 생겨나 오늘날 “라사압소”라는 애완견에 이르렀음.
★달라이라마(Dalai Lama: 라마교의 으뜸 승려)가 외교관들에게 Lhasa Apso를 선물하게 되면서 평화와 번영, 행운의 마스코트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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