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자판기
2009.06.04 09:01
커피 자판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이경옥
“커피 한 잔 합시다.”
짤랑짤랑 동전을 흔들며 커피를 한 잔 할 것을 권한다. 책상을 정리하다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무실을 부산하게 만드는 말이다. 싸디 싼 자판기 커피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도하고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복잡한 일도,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분노도 삼켜버린다. 소원했던 직원들과의 정을 돈독히 하는데도 이 녀석만 한 게 없다. 다행이 직장 현관의 아늑한 곳에 탁자 한 개를 두고 둥그렇게 놓인 의자가 있어 더욱 정겹다.
나에게는 직장동료 이외에 또 다른 동료가 더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커피 자판기다. 아침에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인사를 하고 점심시간, 휴식시간, 퇴근시간, 틈만 나면 정담을 나누며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자판기에게 소개하곤 한다.
10원이고 100원이고 1,000원이고 가리지 않은 소탈한 식성에 군말 없이 쪼르륵 컵에 따르는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항상 따끈따끈한 정이 뽀얗게 흘러나오는 구수한 향기는 이야기를 듬뿍 담아내고 있다. 가끔 기분이 좀 언짢은 날이면 동전을 꼴깍 먹어 치우고는 모르는 체 시치미를 뚝 떼고 나 몰라라 한다. 그럴 때마다 한대 얻어맞고서야 동전을 토해낸다. 심사가 심하게 꼬이는 날에는 몇 대를 얻어맞고 걷어차이면서도 끝내 토해내지 않는다. 이런 날에는 몹시 화가 나는 날이거나 아픈 날이다.
우리들은 우선 몇 푼 안 되는 동전의 대가를 바랄 뿐 그런 그를 용서하려들지 않는다. 차고, 때리고, 욕하며 동전을 물어내라 야단법석을 떨기도 한다. 그래도 이 녀석은 참으로 양심적이다. 틀림없이 동전을 삼킨 만큼 커피를 토해내고 아무리 배가고파도 만 원짜리 지폐는 사양할 줄도 안다. 사과박스 가득 지폐를 채워줘도 거절할 줄 아는 멋진 녀석이기도 하다. 우리의 가난한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스스로 작은 것에 감사하고 그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걸까? 그도 그 나름의 철학이 있는 모양이다. 이런 소박한 마음이 느껴지는 자판기는 친구이자 직장 동료이다.
먼 길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고속도로를 달리다 들르는 약방의 감초 같은 휴게소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마시는 한 잔의 커피와 우동은 여행의 묘미를 더욱더 느끼게 해 준다. 요즘엔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려면 두 눈 크게 뜨고 발품을 팔아야만 한다.
어느새 중앙에 떡하니 자리한 커피전문점에 밀려 구석으로 밀려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렸다. 참 이상한 일이다. 커피전문점 앞에서 커피를 받아들면 몇 발작 걸음을 옮겨야만 편하게 얘기가 나온다. 그와는 달리 자판기 앞에서는 동전을 입에 넣으면서부터 술술 얘기가 나온다. 냄새나고 볼품없어도 쭈글쭈글 내 발에 맞춰진 오래 신은 편안한 신발 같은 느낌이다.
정리해고로 불안해하는 노동자들의 한숨소리, 밤새 가득 짐을 싣고 먼 거리를 달려온 기사들, 잠을 쫓기 위해 마셔야하는 수험생들,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들, 자판기는 그들 모두의 시름을 알고 있다.
한숨소리를 다 담아내기도 한다. 이런 저런 수다에 귀를 틀어막고 싶기도 할 터인데 꿋꿋하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걸 보면 참선(參禪)하는 수행자 같기도 하다.
주류가 비주류로 비주류가 주류로 바뀌는 세상인데 자판기 커피라고 별 수 있을까? 요즘 해바라기 추종자들이 많다. 하지만 이 녀석은 고집스러우리만치 고지식하다. 옛 지폐가 새 지폐로 바뀌어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번 모신 주군(主君)은 영원한 주군으로 모시려는 의리 있는 녀석이기에 참으로 마음에 든다. 몇 번을 넣어도 꼭 토해낸다. “쓰르르” 이 한마디 외에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오늘 퇴근길에도 커피가 배웅을 나온다. 마지막 한 모금, 그 아쉽고 짜릿한 향기를 머금으면 자동차의 시동소리에서도 부드러운 향기가 배어 나온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이경옥
“커피 한 잔 합시다.”
짤랑짤랑 동전을 흔들며 커피를 한 잔 할 것을 권한다. 책상을 정리하다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무실을 부산하게 만드는 말이다. 싸디 싼 자판기 커피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도하고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복잡한 일도,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분노도 삼켜버린다. 소원했던 직원들과의 정을 돈독히 하는데도 이 녀석만 한 게 없다. 다행이 직장 현관의 아늑한 곳에 탁자 한 개를 두고 둥그렇게 놓인 의자가 있어 더욱 정겹다.
나에게는 직장동료 이외에 또 다른 동료가 더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커피 자판기다. 아침에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인사를 하고 점심시간, 휴식시간, 퇴근시간, 틈만 나면 정담을 나누며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자판기에게 소개하곤 한다.
10원이고 100원이고 1,000원이고 가리지 않은 소탈한 식성에 군말 없이 쪼르륵 컵에 따르는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항상 따끈따끈한 정이 뽀얗게 흘러나오는 구수한 향기는 이야기를 듬뿍 담아내고 있다. 가끔 기분이 좀 언짢은 날이면 동전을 꼴깍 먹어 치우고는 모르는 체 시치미를 뚝 떼고 나 몰라라 한다. 그럴 때마다 한대 얻어맞고서야 동전을 토해낸다. 심사가 심하게 꼬이는 날에는 몇 대를 얻어맞고 걷어차이면서도 끝내 토해내지 않는다. 이런 날에는 몹시 화가 나는 날이거나 아픈 날이다.
우리들은 우선 몇 푼 안 되는 동전의 대가를 바랄 뿐 그런 그를 용서하려들지 않는다. 차고, 때리고, 욕하며 동전을 물어내라 야단법석을 떨기도 한다. 그래도 이 녀석은 참으로 양심적이다. 틀림없이 동전을 삼킨 만큼 커피를 토해내고 아무리 배가고파도 만 원짜리 지폐는 사양할 줄도 안다. 사과박스 가득 지폐를 채워줘도 거절할 줄 아는 멋진 녀석이기도 하다. 우리의 가난한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스스로 작은 것에 감사하고 그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걸까? 그도 그 나름의 철학이 있는 모양이다. 이런 소박한 마음이 느껴지는 자판기는 친구이자 직장 동료이다.
먼 길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고속도로를 달리다 들르는 약방의 감초 같은 휴게소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마시는 한 잔의 커피와 우동은 여행의 묘미를 더욱더 느끼게 해 준다. 요즘엔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려면 두 눈 크게 뜨고 발품을 팔아야만 한다.
어느새 중앙에 떡하니 자리한 커피전문점에 밀려 구석으로 밀려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렸다. 참 이상한 일이다. 커피전문점 앞에서 커피를 받아들면 몇 발작 걸음을 옮겨야만 편하게 얘기가 나온다. 그와는 달리 자판기 앞에서는 동전을 입에 넣으면서부터 술술 얘기가 나온다. 냄새나고 볼품없어도 쭈글쭈글 내 발에 맞춰진 오래 신은 편안한 신발 같은 느낌이다.
정리해고로 불안해하는 노동자들의 한숨소리, 밤새 가득 짐을 싣고 먼 거리를 달려온 기사들, 잠을 쫓기 위해 마셔야하는 수험생들,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들, 자판기는 그들 모두의 시름을 알고 있다.
한숨소리를 다 담아내기도 한다. 이런 저런 수다에 귀를 틀어막고 싶기도 할 터인데 꿋꿋하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걸 보면 참선(參禪)하는 수행자 같기도 하다.
주류가 비주류로 비주류가 주류로 바뀌는 세상인데 자판기 커피라고 별 수 있을까? 요즘 해바라기 추종자들이 많다. 하지만 이 녀석은 고집스러우리만치 고지식하다. 옛 지폐가 새 지폐로 바뀌어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번 모신 주군(主君)은 영원한 주군으로 모시려는 의리 있는 녀석이기에 참으로 마음에 든다. 몇 번을 넣어도 꼭 토해낸다. “쓰르르” 이 한마디 외에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오늘 퇴근길에도 커피가 배웅을 나온다. 마지막 한 모금, 그 아쉽고 짜릿한 향기를 머금으면 자동차의 시동소리에서도 부드러운 향기가 배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