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보다 더 의미 있는 이야기
2009.07.15 19:00
그림보다 더 의미 있는 이야기
-루벤스작 ‘시몬과 페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서상옥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듯 흔히 보는 그림도 숨은 이야기를 알고 보면 그 재미가 더해진다.
7월의 태양 아래 뜨겁게 달궈진 심신을 달래주는 그림 한 폭을 감상하면서 감미로운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푸에르토리코의 국립미술관 입구에는 화가 루벤스의 작품인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 한 폭이 걸려 있다. 푸른 수의를 입은 노인이 젊은 여자의 젖을 빠는 해괴한 장면이다. 관객들은 노인과 젊은 여인의 부정한 애정행각에 불쾌한 감정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손을 뒤로 묶인 채 안타까운 모습으로 젖을 먹고 있는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으며 젊은 여인은 그의 딸이었다. 당시 독재정권은 이 노인에게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바로 음식투입 금지령을 내려 굶어 죽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때 딸은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감옥을 찾아 간수에게 간청하여 아버지의 임종을 보도록 했다. 그리고 마지막 파리하게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젖을 물린다. 이 작품은 부녀간의 사랑과 헌신, 애국심이 담겨진 숭고한 그림이다.
루벤스(Rubens)는 벨기에 플랑드르의 위대한 화가다. 그는 서양 미술가들의 여러 기법을 잘 소화해서 가장 많은 작품을 창조한 화가로 바로크미술의 감각적인 풍만함을 잘 보여준다. 그는 17C 플랑드르 미술의 최고 거장이며 최초로 한국인을 그린 서양화가이기도 하다.
시몬과 페로(Simon and Pero) 이야기는 서양 고전에서 효심의 실례로 많이 거론 되었으며 16C~18C에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명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우리나라 고전에도 효녀 심청이 봉사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 푸른 물에 몸을 던진 설화가 전해온다. 효(孝)는 동서고금을 통해 만고의 진리요, 윤리도덕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조각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좋아한 편이었다. 르노와르의 초상화와 나부, 한스할스의 ‘노래하는 소년,’ 어느 작가의 ‘만도린을 든 집시의 여인’ 등, 내가 즐겨 읽던 책갈피나 일기장에 드문드문 좋은 그림을 끼워 두었었다.
르네상스시대를 빛내주던 예술의 거장들을 상상해 본다.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드 다빈치, 아들 예수의 주검을 안고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애절한 장면을 그린 미케란젤로의 피에타(pieta)는 너무나도 위대하고 숭고한 작품이다. 37세에 권총 자살로 짧은 생애를 마친 후기 인상파 반고흐는 귀를 짤린 자화상과 함께 정열적인 붓놀림으로 노란색 ‘해바라기’를 그려 놓았다. 또한 20C 천재화가 피카소 역시 ‘피리를 부는 목신’ ‘꽃을 가진 여자’ 등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다.
고전적인 우리 민화에는 자연을 숭배하는 신선사상으로 장수와 부귀를 소망하는 작품이 많다. 조선후기에 활동하던 대표적인 화가 단원 김홍도의 ‘진경산수화’, ‘삼강오륜행실도’와 신윤복의 풍속화인 ‘산행’ ‘나룻배‘ 등은 아직도 명화로 남아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지난해 여름, 노적봉을 자랑하는 유달산과 삼학도가 펼쳐진 목포항에 들러 한국화를 개척한 남농(南農) 미술전시관을 관람하였다. 조선시대부터 4대에 걸쳐 화가를 배출한 명가, 남농(南農) 허건(許楗)의 훌륭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삼송도(三松圖)를 비롯해서 남해안 한려수도를 배경으로 그린 작품들, 한국화의 새로운 가치를 높여주는 산수화를 감상하면서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
모든 예술 작품들이 때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난해한 것들이 많아 오해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람들은 가끔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고 비난하는 우(遇)를 범하는 때가 있다. 본질을 잘 알면 시각이 달라진다고 한다. 교만과 아집, 편견을 버릴 때 세상 모든 사물의 진실이 바로 보이려니 싶다.
아무리 좋은 그림도 내가 느끼지 못하면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깊은 의미를 알 수 없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지 않던가? 사물의 진실도 그에 못지않게 영원하리라.
(2009.7.12.)
-루벤스작 ‘시몬과 페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서상옥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듯 흔히 보는 그림도 숨은 이야기를 알고 보면 그 재미가 더해진다.
7월의 태양 아래 뜨겁게 달궈진 심신을 달래주는 그림 한 폭을 감상하면서 감미로운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푸에르토리코의 국립미술관 입구에는 화가 루벤스의 작품인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 한 폭이 걸려 있다. 푸른 수의를 입은 노인이 젊은 여자의 젖을 빠는 해괴한 장면이다. 관객들은 노인과 젊은 여인의 부정한 애정행각에 불쾌한 감정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손을 뒤로 묶인 채 안타까운 모습으로 젖을 먹고 있는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으며 젊은 여인은 그의 딸이었다. 당시 독재정권은 이 노인에게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바로 음식투입 금지령을 내려 굶어 죽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때 딸은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감옥을 찾아 간수에게 간청하여 아버지의 임종을 보도록 했다. 그리고 마지막 파리하게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젖을 물린다. 이 작품은 부녀간의 사랑과 헌신, 애국심이 담겨진 숭고한 그림이다.
루벤스(Rubens)는 벨기에 플랑드르의 위대한 화가다. 그는 서양 미술가들의 여러 기법을 잘 소화해서 가장 많은 작품을 창조한 화가로 바로크미술의 감각적인 풍만함을 잘 보여준다. 그는 17C 플랑드르 미술의 최고 거장이며 최초로 한국인을 그린 서양화가이기도 하다.
시몬과 페로(Simon and Pero) 이야기는 서양 고전에서 효심의 실례로 많이 거론 되었으며 16C~18C에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명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우리나라 고전에도 효녀 심청이 봉사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 푸른 물에 몸을 던진 설화가 전해온다. 효(孝)는 동서고금을 통해 만고의 진리요, 윤리도덕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조각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좋아한 편이었다. 르노와르의 초상화와 나부, 한스할스의 ‘노래하는 소년,’ 어느 작가의 ‘만도린을 든 집시의 여인’ 등, 내가 즐겨 읽던 책갈피나 일기장에 드문드문 좋은 그림을 끼워 두었었다.
르네상스시대를 빛내주던 예술의 거장들을 상상해 본다.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드 다빈치, 아들 예수의 주검을 안고 비탄에 잠긴 성모 마리아의 애절한 장면을 그린 미케란젤로의 피에타(pieta)는 너무나도 위대하고 숭고한 작품이다. 37세에 권총 자살로 짧은 생애를 마친 후기 인상파 반고흐는 귀를 짤린 자화상과 함께 정열적인 붓놀림으로 노란색 ‘해바라기’를 그려 놓았다. 또한 20C 천재화가 피카소 역시 ‘피리를 부는 목신’ ‘꽃을 가진 여자’ 등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다.
고전적인 우리 민화에는 자연을 숭배하는 신선사상으로 장수와 부귀를 소망하는 작품이 많다. 조선후기에 활동하던 대표적인 화가 단원 김홍도의 ‘진경산수화’, ‘삼강오륜행실도’와 신윤복의 풍속화인 ‘산행’ ‘나룻배‘ 등은 아직도 명화로 남아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지난해 여름, 노적봉을 자랑하는 유달산과 삼학도가 펼쳐진 목포항에 들러 한국화를 개척한 남농(南農) 미술전시관을 관람하였다. 조선시대부터 4대에 걸쳐 화가를 배출한 명가, 남농(南農) 허건(許楗)의 훌륭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삼송도(三松圖)를 비롯해서 남해안 한려수도를 배경으로 그린 작품들, 한국화의 새로운 가치를 높여주는 산수화를 감상하면서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
모든 예술 작품들이 때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난해한 것들이 많아 오해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람들은 가끔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지 않고 비난하는 우(遇)를 범하는 때가 있다. 본질을 잘 알면 시각이 달라진다고 한다. 교만과 아집, 편견을 버릴 때 세상 모든 사물의 진실이 바로 보이려니 싶다.
아무리 좋은 그림도 내가 느끼지 못하면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깊은 의미를 알 수 없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지 않던가? 사물의 진실도 그에 못지않게 영원하리라.
(2009.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