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박귀덕

2009.11.03 15:37

김학 조회 수:201

마곡사(麻谷寺)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박귀덕



낙엽을 밟으며 개울을 따라 걸었다. 오색으로 물든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을 무색케 한다. 해탈교 아래로 바람이 띄워놓은 낙엽들이 쪽배가 되어 무심히 흘러간다. 노랗고 빨간 쪽배 사이를 유희하며 노는 잉어들이 한가롭다. 저들도 사람구경을 나온 것일까? 인사를 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린다. 며칠만이라도 이곳에서 머물면 머리가 맑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만 살아온 내게도 몸과 마음의 휴식이 필요함을 느낀다.    

가람에 들어서니 5층 석탑이 눈에 꽉 들어찬다.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위치한 마곡사(麻谷寺)는 신라 선덕여왕 9년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율사가 창건했으나 여러 차례 화재가 있어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절을 완공한 뒤 설법을 할 때 사람들이 삼(麻)나무처럼 빽빽하게 모여들어 마곡사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설과, 신라 무선대사가 당나라에서 공부할 때 스승이었던 마곡보철선사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마곡사에는 매월당의 일화도 있다. 세조가 생육신인 김시습을 만나고자 이곳에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타고 왔던 연을 버리고 소를 타고 갔다고 한다. 옛 선비의 곧은 절개를 담고 있는 마곡사에는 구한말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님이 심었다는 향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헌병을 처단하고,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서 승려생활을 하며 숨어 살던 선생님께서 조국 광복 뒤 다시 이곳을 찾아와 󰡒돌아와 세상을 보니 흡사 꿈속의 일 같구나.󰡓그 때를 회상하며 심었다는 향나무다. 충신들의 일상을 보듬어준 사찰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찡하다.

오솔길에 접어드니, 길가에 쌓인 은행잎을 한 웅큼 집어 하늘로 흩뿌리는 형효순 수필가가 보였다. 진한 가을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나도 가을을 오감으로 느껴보고자 낙엽을 모아 손에 쥐고 하늘 높이 흩뿌렸다.

유럽에서는 성당이 문화재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사찰이 문화재다. 유럽의 성당은 마을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사찰은 경치 좋은 깊은 산속에 있어 운치가 좋다. 공주아가씨와 인연이 있어 자주 왔었다는 이 선생이 탑돌이를 한다. 두 손은 턱 아래로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살짝 숙여 눈을 지그시 밑으로 내려 깔고 몇 바퀴를 돈다. 개량한복을 입은 총각의 모습이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온 석탑과 어우러지니 조선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긴 세월 수많은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침묵하고 있는 오층석탑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백제의 역사가 숨 쉬는 송산리 고분에서 문화해설사를 만났다. 무령왕릉에 대한 역사를 세밀히 들려주었다. 특이하게도 왕릉 입구는 벽돌을 아치형으로 쌓아 만들었다. 천장은 터널을 보는 듯하고, 벽엔 사신도가 그려져 있다. 도자기로 만든 등잔을 올려놓은 자리도 만들어졌고 창문도 흉내를 냈다. 부장품들은 금으로 만든 화려한 장식품들과 지신에게 무덤의 터를 산 묘지석, 무덤을 지키는 돌짐승, 왕의 옷을 다려입도록 다리미도 놓여 있어, 옛 선조들이 사후세계를 현세의 연장으로 생각하며 살지 않았나 싶다. 찬란한 백제의 문화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뒤늦게 백제문화의 꽃을 피워주고 있다.    
  
화창한 가을 날, 즐거운 문학기행을 다녀올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전주에 돌아오니 아름다운 10월의 마지막 밤이 열리고 있었다.
                                  
                              (200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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