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우리 집 10대 뉴스/나인구
2009.12.25 15:50
하느님의 은총 속에 보냈던 기축년 한 해
-2009년 우리 집 10대 뉴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나인구
기축년 새해 아침 전주 황방산에서 아내와 죽마고우 부부들이 해맞이로 한 해를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며 우리 가족과 이웃들을 위해 기도했다. 소의 해 기축년에는 느릿느릿 가는 1년 세월이 벌써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하느님의 은총 속에 보냈던 한 해를 회고하면서 우리 집 크고 작은 일들을 모아 본다.
1. 종합 계간지 <대한문학>에서 시와 수필로 등단하다
초등학교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하던 내가 중‧고‧대학에서 문예반장을 하면서 시인이 되고파 꿈꾸고 살았는데 60대가 되어서야 문인이라는 면허증을 받게 되었다. (시. 2009년 여름호. 수필 2009년 겨울호) 직장에서는 영어를 가르치는데 매달리노라 글을 쓰는데 소홀했었다. 퇴직 후 모아두었던 글을 정리하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다시 글 공부를시작하여 늦깎이로 등단이라는 면허증을 받았다. 11월 14일 서울에서 등단패 두 개를 받고 보니 짐이 무거웠다. 글 쓰는 일에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격려와 지도해주신 대학선배 김학 교수님에게 고마움과 감사를 드린다.
2. 아내와 내가 종합 건강검진을 받다
퇴직 후 3년이 지나니 아들딸들이 우리 부부의 건강을 걱정한 나머지 4월20~21일에 서울아산병원에 종합 건강검진을 받도록 예약해 버렸다. 검진비가 육백여만 원 가까이 되어 거절했으나 예약된 것이어서 검진을 받았다. 시설도 우리나라에서 으뜸이고 의사와 간호사들의 친절한 검진이 맘에 들었다. 다행히 큰 병은 발견되지 않고 정기검사 권유만 받기로 했다. 아이들이 고마웠다.
3. 우리 부부,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오르다
현직에 있을 때 나는 모범교사로서 1991년 백두산에 다녀온 일이 있다. 그때는 북쪽 이도백하에서 백두산에 올랐다. 금년 아내와 함께 8월 18~22일 중국 단동을 경유 백두산을 가기로 했다. 한국전쟁 때 끊어진 압록강 철교와 멀리 북한 땅을 보니 분단의 비극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중국 서쪽에서 천여 개의 시멘트 계단을 올라가서 맑은 하늘 천지를 보았다. 아내가 아픈 몸으로 함께 오른 백두산은 고맙게도 구름을 말끔히 없애 다행이었다. 고구려 수도 국내성, 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그리고 고구려 최초의 수도 졸본성도 올랐다.
4. 아내 김분자 진갑進甲에 하계 가족 캠프하다
올해 진갑을 맞는 아내 김분자 여사의 생일에 둘째딸 나수현이가 잘 아는 경기도 양평 슈타이너학교 펜션에서 7월 25~26일에 사위들과 아들딸 손자 모두가 함께 캠프를 했다. 산과 계곡이 좋아 주변 풍광이 빼어났다. 둘째사위 남궁선의 시장보기와 처음 참석하는 막내사위 곽노홍이 함께하여 좋았다. 저녁에는 손자 박채우와의 폭죽 불꽃놀이, 그리고 바비큐 파티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주변에 국내 유명 인사들의 별장이 즐비하여 마치 외국의 어느 산골짜기를 연상케 했다.
5. 큰딸 나지현 세 번째 대학 졸업하다
결혼해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인 큰딸 나지현이 금년 2월에 또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삼성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결혼 후 영국 켐브리지대학을 졸업한 뒤 귀국하여 수능고사를 치르고 또 교육대학교에 들어가 4년 만에 졸업하고 교육자가 되겠단다.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젊어서 많이 배우고 익히면 노후가 편하리라 믿는다.
6. 외손자 박채우 초등학교에 입학하다
큰사위 박재석과 나지현 사이에 태어난 외손자 박채우가 어느새 서울 송파구 세륜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유아시절 부모가 직장과 학업 때문에 우리 집에서 외할머니와 생활한 아이이다. 그 외손자는 부모의 정을 그리워하며 산 적이 있다. 서울 목동에서 살았는데 자식의 학업관계로 송파구로 이사하여 입학을 시켰다. 사위는 직장까지 멀리 출퇴근하게 되었지만 자식교육 때문에 이사를 했다. 맹모삼천지교라 하지 않았던가. 외손자 채우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7. 막내딸 나보현 다시 취업하다
보현이가 잘 나가던 AK그룹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다가 쉬고 싶어 몇 달 쉬었다. 그런데 어떤 이는 한 번 취업하기도 어렵다는데 국내에서 제일 큰 자생한방병원에 또 취업이 되었다. 서울 강남에 본원이 있고 분원이 외국을 포함 9개나 되는 큰 병원이란다. 직원이 700여 명이나 되는 큰 병원에서 마케팅 일을 잘하고 있다. 애교가 있어 늘 나에게 전화를 하고 기쁨을 가져다주는 우리 집의 마스코트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8. 노모老母 최공례 여사를 모시고 가족여행을 하다
올해 85세인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 셋째남동생 남근 내외와 우리 내외가 8월15일~16일 무주구천동과 설천봉, 향적봉(1,614m), 양수발전소 등을 다녀왔다. 산에 오를 때 만나는 사람마다 나이 드신 어머니를 보고 놀라워했다. 어머님의 건강이 자식들의 홍복이려니 싶다. 11월 30일 선친先親 기일에는 여동생 셋이 모두 참석하여 7남매 중 6남매(미국 이민 간 막내 남동생 내외 불참)가 모였다. 여동생 나미자, 그의 부군 신판귀, 남동생 두 내외, 셋째 여동생 나미란과 아들 박세웅, 막내여동생 나미정과 딸 신혜림, 조캬 나영균, 막내 이모 최임례 여사님, 어머님, 우리 내외 등 모두 12명이 참석하여 순창 강천산, 담양 소쇄원, 가사문학관 등을 1박 2일로 다녀왔다. 순창군 쌍치면의 조그만 암자 약사암 찜질방에서의 하룻밤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준비하고 뒷바라지를 한 아내에게 감사한다.
9. 여러 문학단체에 가입하다
등단 후 문인으로서 소속감이 있어야한다기에 행촌수필문학회, 전주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대한문학 작가회에 가입하였다. 수필과 시를 병행하기가 힘들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여러 문학선배들의 조언을 들을 예정이다. 또 詩人이신 이희정 선배님의 가톨릭문우회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아 구두승낙을 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이다. 금년은 문인이라는 티킷(Ticket)을 들고 행복열차를 탑승한 한 해였다.
10. 문학 수필집 <안골 은빛 수필>집 편집 제작하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에서 공부한 지 2년이 되었다. 한 해가 끝나면 수강생들이 안골은빛수필이라는 조그만 책을 펴낸다. 금년에는 우연히도 내가 은빛수필 제2호 편집책임을 맡게 되었다. 모두 열다섯 분의 수필을 실었다. 김상권 회장님의 발간사, 김학 교수님의 격려사, 복지관장과 전주시의회 이명연 행정위원장의 축사로 아담하게 한 권의 책을 엮었다. 며칠 날밤을 새며 사이사이 컷과 사진, 표지 사진 등은 내가 직접 찍은 사진들로만 구성하여 삽입하였다. 400권의 책자를 만들어 도내 신문사, 도서관 복지관 등 유관기관과 유관인사들에게 보냈다. 등단작가가 십여 분이나 되어 작품들도 우수하다는 평을 들었다. 반원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도해 주신 김학 교수님, 수필반을 이끄신 김상권 회장님에게 감사드린다.
나, 개인적으로는 순탄한 한 해였지만, 국내외에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였다. 국내의 큰 별 이 셋이나 졌다. 정신적 지도자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善終,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逝去가 있었다. 정치적 이슈가 나라를 흔들었다. 용산 참사, 쌍용차 파업, 미디어법, 4대강사업 등 매끄럽게 풀렸던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백공천창百孔千瘡이었다. 내년 庚寅年에는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좀 더 맑고 밝게 살면서 비호飛虎의 한 해가 되었으면 싶다.
(2009.12.26.토)
-2009년 우리 집 10대 뉴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나인구
기축년 새해 아침 전주 황방산에서 아내와 죽마고우 부부들이 해맞이로 한 해를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며 우리 가족과 이웃들을 위해 기도했다. 소의 해 기축년에는 느릿느릿 가는 1년 세월이 벌써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하느님의 은총 속에 보냈던 한 해를 회고하면서 우리 집 크고 작은 일들을 모아 본다.
1. 종합 계간지 <대한문학>에서 시와 수필로 등단하다
초등학교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하던 내가 중‧고‧대학에서 문예반장을 하면서 시인이 되고파 꿈꾸고 살았는데 60대가 되어서야 문인이라는 면허증을 받게 되었다. (시. 2009년 여름호. 수필 2009년 겨울호) 직장에서는 영어를 가르치는데 매달리노라 글을 쓰는데 소홀했었다. 퇴직 후 모아두었던 글을 정리하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다시 글 공부를시작하여 늦깎이로 등단이라는 면허증을 받았다. 11월 14일 서울에서 등단패 두 개를 받고 보니 짐이 무거웠다. 글 쓰는 일에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격려와 지도해주신 대학선배 김학 교수님에게 고마움과 감사를 드린다.
2. 아내와 내가 종합 건강검진을 받다
퇴직 후 3년이 지나니 아들딸들이 우리 부부의 건강을 걱정한 나머지 4월20~21일에 서울아산병원에 종합 건강검진을 받도록 예약해 버렸다. 검진비가 육백여만 원 가까이 되어 거절했으나 예약된 것이어서 검진을 받았다. 시설도 우리나라에서 으뜸이고 의사와 간호사들의 친절한 검진이 맘에 들었다. 다행히 큰 병은 발견되지 않고 정기검사 권유만 받기로 했다. 아이들이 고마웠다.
3. 우리 부부,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오르다
현직에 있을 때 나는 모범교사로서 1991년 백두산에 다녀온 일이 있다. 그때는 북쪽 이도백하에서 백두산에 올랐다. 금년 아내와 함께 8월 18~22일 중국 단동을 경유 백두산을 가기로 했다. 한국전쟁 때 끊어진 압록강 철교와 멀리 북한 땅을 보니 분단의 비극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중국 서쪽에서 천여 개의 시멘트 계단을 올라가서 맑은 하늘 천지를 보았다. 아내가 아픈 몸으로 함께 오른 백두산은 고맙게도 구름을 말끔히 없애 다행이었다. 고구려 수도 국내성, 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그리고 고구려 최초의 수도 졸본성도 올랐다.
4. 아내 김분자 진갑進甲에 하계 가족 캠프하다
올해 진갑을 맞는 아내 김분자 여사의 생일에 둘째딸 나수현이가 잘 아는 경기도 양평 슈타이너학교 펜션에서 7월 25~26일에 사위들과 아들딸 손자 모두가 함께 캠프를 했다. 산과 계곡이 좋아 주변 풍광이 빼어났다. 둘째사위 남궁선의 시장보기와 처음 참석하는 막내사위 곽노홍이 함께하여 좋았다. 저녁에는 손자 박채우와의 폭죽 불꽃놀이, 그리고 바비큐 파티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주변에 국내 유명 인사들의 별장이 즐비하여 마치 외국의 어느 산골짜기를 연상케 했다.
5. 큰딸 나지현 세 번째 대학 졸업하다
결혼해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인 큰딸 나지현이 금년 2월에 또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삼성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결혼 후 영국 켐브리지대학을 졸업한 뒤 귀국하여 수능고사를 치르고 또 교육대학교에 들어가 4년 만에 졸업하고 교육자가 되겠단다.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젊어서 많이 배우고 익히면 노후가 편하리라 믿는다.
6. 외손자 박채우 초등학교에 입학하다
큰사위 박재석과 나지현 사이에 태어난 외손자 박채우가 어느새 서울 송파구 세륜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유아시절 부모가 직장과 학업 때문에 우리 집에서 외할머니와 생활한 아이이다. 그 외손자는 부모의 정을 그리워하며 산 적이 있다. 서울 목동에서 살았는데 자식의 학업관계로 송파구로 이사하여 입학을 시켰다. 사위는 직장까지 멀리 출퇴근하게 되었지만 자식교육 때문에 이사를 했다. 맹모삼천지교라 하지 않았던가. 외손자 채우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7. 막내딸 나보현 다시 취업하다
보현이가 잘 나가던 AK그룹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다가 쉬고 싶어 몇 달 쉬었다. 그런데 어떤 이는 한 번 취업하기도 어렵다는데 국내에서 제일 큰 자생한방병원에 또 취업이 되었다. 서울 강남에 본원이 있고 분원이 외국을 포함 9개나 되는 큰 병원이란다. 직원이 700여 명이나 되는 큰 병원에서 마케팅 일을 잘하고 있다. 애교가 있어 늘 나에게 전화를 하고 기쁨을 가져다주는 우리 집의 마스코트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8. 노모老母 최공례 여사를 모시고 가족여행을 하다
올해 85세인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 셋째남동생 남근 내외와 우리 내외가 8월15일~16일 무주구천동과 설천봉, 향적봉(1,614m), 양수발전소 등을 다녀왔다. 산에 오를 때 만나는 사람마다 나이 드신 어머니를 보고 놀라워했다. 어머님의 건강이 자식들의 홍복이려니 싶다. 11월 30일 선친先親 기일에는 여동생 셋이 모두 참석하여 7남매 중 6남매(미국 이민 간 막내 남동생 내외 불참)가 모였다. 여동생 나미자, 그의 부군 신판귀, 남동생 두 내외, 셋째 여동생 나미란과 아들 박세웅, 막내여동생 나미정과 딸 신혜림, 조캬 나영균, 막내 이모 최임례 여사님, 어머님, 우리 내외 등 모두 12명이 참석하여 순창 강천산, 담양 소쇄원, 가사문학관 등을 1박 2일로 다녀왔다. 순창군 쌍치면의 조그만 암자 약사암 찜질방에서의 하룻밤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준비하고 뒷바라지를 한 아내에게 감사한다.
9. 여러 문학단체에 가입하다
등단 후 문인으로서 소속감이 있어야한다기에 행촌수필문학회, 전주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대한문학 작가회에 가입하였다. 수필과 시를 병행하기가 힘들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여러 문학선배들의 조언을 들을 예정이다. 또 詩人이신 이희정 선배님의 가톨릭문우회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아 구두승낙을 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이다. 금년은 문인이라는 티킷(Ticket)을 들고 행복열차를 탑승한 한 해였다.
10. 문학 수필집 <안골 은빛 수필>집 편집 제작하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에서 공부한 지 2년이 되었다. 한 해가 끝나면 수강생들이 안골은빛수필이라는 조그만 책을 펴낸다. 금년에는 우연히도 내가 은빛수필 제2호 편집책임을 맡게 되었다. 모두 열다섯 분의 수필을 실었다. 김상권 회장님의 발간사, 김학 교수님의 격려사, 복지관장과 전주시의회 이명연 행정위원장의 축사로 아담하게 한 권의 책을 엮었다. 며칠 날밤을 새며 사이사이 컷과 사진, 표지 사진 등은 내가 직접 찍은 사진들로만 구성하여 삽입하였다. 400권의 책자를 만들어 도내 신문사, 도서관 복지관 등 유관기관과 유관인사들에게 보냈다. 등단작가가 십여 분이나 되어 작품들도 우수하다는 평을 들었다. 반원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도해 주신 김학 교수님, 수필반을 이끄신 김상권 회장님에게 감사드린다.
나, 개인적으로는 순탄한 한 해였지만, 국내외에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였다. 국내의 큰 별 이 셋이나 졌다. 정신적 지도자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善終,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逝去가 있었다. 정치적 이슈가 나라를 흔들었다. 용산 참사, 쌍용차 파업, 미디어법, 4대강사업 등 매끄럽게 풀렸던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백공천창百孔千瘡이었다. 내년 庚寅年에는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좀 더 맑고 밝게 살면서 비호飛虎의 한 해가 되었으면 싶다.
(2009.12.26.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