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와 우/김상권
2010.01.20 07:15
좌(左)와 우(右)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김상권
나는 버스를 타면 으레 왼쪽 좌석에 앉는다. 발길이 절로 그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공연장이나 극장이나 회의장이나 성당에서도 주로 왼쪽 자리에 앉곤 한다. 별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무의식중에 자연스럽게 왼쪽에 앉는다. 비행기나 고속열차나 고속버스 등 미리 자리가 정해진 경우 말고는 말이다. 내가 왼쪽 자리에 앉는 것은 아마 어렸을 때부터 좌측통행이란 교육을 받은 영향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 아닐까?
좌측과 우측을 좋아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양손을 붙잡고 깍지를 껴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왼쪽 엄지손가락이 위로 올라간다. 팔짱을 껴 봐도 역시 왼팔이 위로 올라간다. 또 웃옷을 입을 때도 왼쪽소매에 왼쪽 팔을 먼저 넣는다. 이처럼 나는 왼쪽으로 움직이는 데 익숙해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왼손잡이는 아니다.
조선시대 국가 정치제도는 좌측 선호현상의 뚜렸했다.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았으며, 문관은 좌측, 무관은 우측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남자가 소변을 볼 때 물건을 쥐고 있는 손이 왼손인가 오른손이가를 보고서 양반을 분별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마땅히 왼손을 써야 양반이었다.
왼쪽은 성스러움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평상시에는 오른쪽으로 새끼를 꼬다가 금줄을 드리울 때는 왼새끼를 튼다. 또 호랑이가 사람을 앞발로 쳐서 왼쪽으로 넘어지면 살려주고, 오른쪽으로 넘어지면 잡아먹는다는 속신(俗信)도 있다. 성스러운 것은 전적으로 왼쪽 몫인 셈이다.
옷 입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 한복은 왼쪽 옷자락이 오른쪽 위로 올리는 우임(右衽)식이다.
우리네 상차림에서도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밥상의 밥과 국의 위치를 보면 밥은 왼쪽에 국은 오른쪽에 놓는다. 숟가락은 왼쪽에 젓가락은 오른쪽에 놓는다. 어느 것이 주(主)이고 어느 것이 종(從)인지는 모르지만 더 소중하다고 여긴 것을 왼쪽에 놓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밥상에서조차 중심을 왼쪽에 두었다.
하지만 왼쪽만을 선호한 것은 아니다. 생활 속에서 오른쪽을 사용한 경우도 많다. 가령 전통한옥의 문은 미닫이든 여닫이든 출입할 때 보통 우입좌출(右入左出)의 형식을 취했다. 다시 말하면 들어갈 때는 우측으로 나올 때는 왼쪽을 사용했다는 얘기다. 한편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祠堂)에 들어갈 때도 오른쪽 문을 지나 오른쪽 길을 걷고 나올 때는 왼쪽 길을 걸어 왼쪽 문으로 나오게 했다.
그런가 하면 서양문화가 들어오면서부터 우리 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가령 관용차를 탈 때 뒷좌석의 오른쪽이 선임자의 자리다. 또 지프차 윗자리도 운전석의 오른쪽이다.
미술관 전시회나 박물관 관람 때도 오른쪽으로부터 관람하도록 화살표로 안내돼 있다. 황단보도에도 우측으로 건너도록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공항 출입국 탑승구나 건물의 회전문, 지하철 개찰구도 우측보행용으로 설치돼 있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도 위치가 오른쪽으로 바뀌었다. 이제 오른쪽 걷기로 갈아 타야한다. 세계의 보행문화와 발걸음을 맞추기 위해서도 우측보행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오는 7월부터 전국적으로 우측보행을 실시한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시행됐던 '왼쪽 걷기'가 88년 만에 '오른쪽 걷기'로 바뀌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과거 우측통행이 전통이었다. 오랫동안 좌측통행에 익숙해진 보행방식을 바뀌기란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철이 들면서부터 좌측통행을 배웠고 그대로 지켜왔다. 또 내가 교직에 있을 땐 복도나 거리에서 좌측통행을 하도록 지도했었다. 그러한 일들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교육현장에서는 우측통행지도를 하고 있다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이를테면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가령 어느 누가 왼발과 오른발 가운데 한쪽발이 조금이라도 길거나 짧다면 그 사람은 어떤 걸음일까? 어느 축구선수가 왼쪽발로는 잘 차는데 오른쪽발로는 서툴다면 그 선수는 우수한 선수가 될까? 한손으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까? 합창이나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도 서로의 소리가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소리로 들리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보수니 진보니 하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어느 한 쪽의 소리가 커지면 균형이 깨진다. 균형이 무너지면 혼란이 오기마련이다. 좌와 우가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안정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새가 한 쪽 날개로는 날 수 없듯이 우리 사회나 국가도 한 쪽으로 기울면 날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부익부빈익빈이 아닌 골고루 잘 사는 따뜻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2010. 1. 18.)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김상권
나는 버스를 타면 으레 왼쪽 좌석에 앉는다. 발길이 절로 그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공연장이나 극장이나 회의장이나 성당에서도 주로 왼쪽 자리에 앉곤 한다. 별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무의식중에 자연스럽게 왼쪽에 앉는다. 비행기나 고속열차나 고속버스 등 미리 자리가 정해진 경우 말고는 말이다. 내가 왼쪽 자리에 앉는 것은 아마 어렸을 때부터 좌측통행이란 교육을 받은 영향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 아닐까?
좌측과 우측을 좋아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양손을 붙잡고 깍지를 껴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왼쪽 엄지손가락이 위로 올라간다. 팔짱을 껴 봐도 역시 왼팔이 위로 올라간다. 또 웃옷을 입을 때도 왼쪽소매에 왼쪽 팔을 먼저 넣는다. 이처럼 나는 왼쪽으로 움직이는 데 익숙해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왼손잡이는 아니다.
조선시대 국가 정치제도는 좌측 선호현상의 뚜렸했다.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았으며, 문관은 좌측, 무관은 우측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남자가 소변을 볼 때 물건을 쥐고 있는 손이 왼손인가 오른손이가를 보고서 양반을 분별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마땅히 왼손을 써야 양반이었다.
왼쪽은 성스러움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평상시에는 오른쪽으로 새끼를 꼬다가 금줄을 드리울 때는 왼새끼를 튼다. 또 호랑이가 사람을 앞발로 쳐서 왼쪽으로 넘어지면 살려주고, 오른쪽으로 넘어지면 잡아먹는다는 속신(俗信)도 있다. 성스러운 것은 전적으로 왼쪽 몫인 셈이다.
옷 입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 한복은 왼쪽 옷자락이 오른쪽 위로 올리는 우임(右衽)식이다.
우리네 상차림에서도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밥상의 밥과 국의 위치를 보면 밥은 왼쪽에 국은 오른쪽에 놓는다. 숟가락은 왼쪽에 젓가락은 오른쪽에 놓는다. 어느 것이 주(主)이고 어느 것이 종(從)인지는 모르지만 더 소중하다고 여긴 것을 왼쪽에 놓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밥상에서조차 중심을 왼쪽에 두었다.
하지만 왼쪽만을 선호한 것은 아니다. 생활 속에서 오른쪽을 사용한 경우도 많다. 가령 전통한옥의 문은 미닫이든 여닫이든 출입할 때 보통 우입좌출(右入左出)의 형식을 취했다. 다시 말하면 들어갈 때는 우측으로 나올 때는 왼쪽을 사용했다는 얘기다. 한편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祠堂)에 들어갈 때도 오른쪽 문을 지나 오른쪽 길을 걷고 나올 때는 왼쪽 길을 걸어 왼쪽 문으로 나오게 했다.
그런가 하면 서양문화가 들어오면서부터 우리 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가령 관용차를 탈 때 뒷좌석의 오른쪽이 선임자의 자리다. 또 지프차 윗자리도 운전석의 오른쪽이다.
미술관 전시회나 박물관 관람 때도 오른쪽으로부터 관람하도록 화살표로 안내돼 있다. 황단보도에도 우측으로 건너도록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공항 출입국 탑승구나 건물의 회전문, 지하철 개찰구도 우측보행용으로 설치돼 있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도 위치가 오른쪽으로 바뀌었다. 이제 오른쪽 걷기로 갈아 타야한다. 세계의 보행문화와 발걸음을 맞추기 위해서도 우측보행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오는 7월부터 전국적으로 우측보행을 실시한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시행됐던 '왼쪽 걷기'가 88년 만에 '오른쪽 걷기'로 바뀌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과거 우측통행이 전통이었다. 오랫동안 좌측통행에 익숙해진 보행방식을 바뀌기란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철이 들면서부터 좌측통행을 배웠고 그대로 지켜왔다. 또 내가 교직에 있을 땐 복도나 거리에서 좌측통행을 하도록 지도했었다. 그러한 일들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교육현장에서는 우측통행지도를 하고 있다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이를테면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가령 어느 누가 왼발과 오른발 가운데 한쪽발이 조금이라도 길거나 짧다면 그 사람은 어떤 걸음일까? 어느 축구선수가 왼쪽발로는 잘 차는데 오른쪽발로는 서툴다면 그 선수는 우수한 선수가 될까? 한손으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까? 합창이나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도 서로의 소리가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소리로 들리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보수니 진보니 하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어느 한 쪽의 소리가 커지면 균형이 깨진다. 균형이 무너지면 혼란이 오기마련이다. 좌와 우가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안정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새가 한 쪽 날개로는 날 수 없듯이 우리 사회나 국가도 한 쪽으로 기울면 날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부익부빈익빈이 아닌 골고루 잘 사는 따뜻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2010.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