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의 영원한 동반자/이의
2010.11.26 10:18
수필, 나의 영원한 동반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 의
현대는 책의 홍수 속에서 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딜 가나 책이 널려있어 틈만 나면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중학교시절부터는 서울에서 살게 되어 많은 책을 접할 기회가 생겨 손에 잡히는 대로 남독(濫讀)하며 문학소녀의 꿈을 키웠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대본 업소에서 소설책을 빌려다 읽으며 언젠가는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품기도 했었다.
세월만 가는 줄 알았는데 뒤돌아보니 어느 새 60대 중반에 이르렀다. 깊숙이 접어뒀던 꿈을 찾으려 하던 일을 접고 문학공부를 시작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딸의 아이들 양육 문제로 전주로 내려 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지못해 내려온 그해 초여름 어느 날 은행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잡지를 뒤적이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광고를 보고 문향의 고장 전주에서 수필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이렇게 전주에서 수필과 인연이 닿았으니 아마도 이 길이 예정된 나의 길이었던 모양이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게 수필이라고 배웠던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등록을 했다. 그러나 강의 첫날 지도 선생님이 칠판에 크게 쓴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네 글자를 보고 난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맞아! 그동안 미뤄뒀던 꿈을, 그것도 문학의 길을 손쉽게 입문하려 했다니!’ 이렇게 자책하며 나는 수필에 미쳐보기로 약속을 했다. 맛깔스런 수필 한 편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던 글이 어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으리.
시간만 나면 머리를 쥐어짜며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렸지만 내가 읽어봐도 아니다 싶었다. 가슴으로 써야하는데……. 그래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신의 삶과 체험한 주변 이야기를 소재삼아 글을 썼다. 그나마 풀어가기에 수월하다 보니 처음 낸 수필집 《여자나이 마흔둘 마흔 셋》은 나의 지나온 삶과 내 주변이 고스란히 들어나 있다. 첫 수필집을 보면 저자가 적나라하게 들어난다더니 나 역시 그러했다.
수필은 1인칭 문학으로 진솔한 자기고백이며 체험 속에서 건저올린 자기만의 생각과 문장으로 엮어야 한다고 배웠다. 문장은 겨울나무와 같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해야 하고, 문체는 부드러워야 하며, 미사여구를 지나치게 나열하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또한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써야 하며, 문장은 길어야 2줄 반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한문과 외래어는 되도록 우리말로 풀어써야 한다.
이렇게 나름대로 이론이 존재함에도 여전히 수필은 형식이 없는 글이라고 폄하되고 있다. 아마도 일정한 틀이 없다보니 듣는 소리인 모양이다. 수필도 엄연히 서론 본론 결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논술문과는 달리 논리적이 아니라 감성과 서정성이 바탕이 되어 자연과 순수한 인간애가 문학적으로 빚어졌을 때 좋은 수필로 독자에게 다가가리라.
수필에서 서두는 첫 인상과 같아 첫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독자가 계속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서두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결미다. 제목에서 상징하는 의미와 작자의 생각이 어우러진 의미화가 적절히 담겨져야 한다. 또 읽은 뒤 생각할 여지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면 좋으리라. 그리고 세상에 글을 내놓기 전에 얼마나 퇴고를 했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결정되지 싶다. 낮에 썼으면 밤에 다시 보고, 맑은 날 썼으면 비 내리는 날 또 보고, 읽다 걸리는 구석이 있으면 또다시 다듬기를 해야 한다. 어느 유명한 소설가는 소설 한 편을 200번이나 다듬고서야 탈고했다는 일화를 보더라도 퇴고는 많이 할수록 좋은 작품이 나온다.
수필은 이렇게 써야한다는 이론을 알수록 수필쓰기가 더욱 어렵게 여겨진다. 수필은 웃고 들어가 울고 나온다는 말이 실감난다. 수필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多讀), 많이 생각하고(多商量) 많이 써보는(多作) 게 정도라고 배웠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 제대로 한 것이 없으니 어려울 수밖에.
어느 수필가는 수필은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글이어야 한다고 했다. 즐거움에는 정적, 지적, 깨달음, 심미적, 수사학적 즐거움을 꼽고 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충족되면 좋은 수필이라고 한다. 좋은 수필을 써 보고 싶은 건 누구나의 바람일 것이다.
수필은 관조(觀照)의 문학이라고 한다. 관조란 지혜로서 사물의 실상을 비춰 보는 일이라고 사전에 풀이되어 있다. 좋은 수필을 쓰려면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걸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되리라! 그를 통해 깨달은 작가만의 철학이 담긴 문장에 사유와 정감이 녹아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독자는 그 글을 읽고 동감하며 감동을 받으리라.
어느 문학제에서 심사가 불편함을 숨길 수 없었다. 축제의 프로그램은 시와 소설만이 문학인 듯 수필은 소외된 채 막을 내렸다. 주최 측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수필가들을 참석시킬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 그런 푸대접이 따라왔을까!
위의 5가지 외에 사회성이 미흡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지금껏 선호하던 제재가 자연을 그린 서정문과 신변잡기의 기록이 주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필의 특성상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으니 여벌문학으로 취급받았지 싶다.
방 한 쪽을 가득 메운 수필집과 관련된 책들이 읽어달라고 윙크를 하지만 맘을 나눌 시간이 모자라니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2집을 낼 때는 두께는 얄팍하고 크기는 손바닥만 하여 주머니에 들어 갈 수 있는 작고 아담한 책을 만들려고 한다. 서울을 자주 다니는 나는 가볍고 소지하기에 편리하며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한다. 그래서 작은 책이 좋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변화는 살아 남기위해 거쳐야하는 필수 조건이다. 수필도 현실에 맞게 변화한다면 현대에 가장 알맞은 문학 장르로서 각광을 받지 않을까. 그때에는 대기실에 대중잡지와 함께 수필집이 함께 공존하려니 싶다.
(2010. 11. 24.)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 의
현대는 책의 홍수 속에서 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딜 가나 책이 널려있어 틈만 나면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중학교시절부터는 서울에서 살게 되어 많은 책을 접할 기회가 생겨 손에 잡히는 대로 남독(濫讀)하며 문학소녀의 꿈을 키웠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대본 업소에서 소설책을 빌려다 읽으며 언젠가는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품기도 했었다.
세월만 가는 줄 알았는데 뒤돌아보니 어느 새 60대 중반에 이르렀다. 깊숙이 접어뒀던 꿈을 찾으려 하던 일을 접고 문학공부를 시작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딸의 아이들 양육 문제로 전주로 내려 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지못해 내려온 그해 초여름 어느 날 은행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잡지를 뒤적이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광고를 보고 문향의 고장 전주에서 수필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이렇게 전주에서 수필과 인연이 닿았으니 아마도 이 길이 예정된 나의 길이었던 모양이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게 수필이라고 배웠던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등록을 했다. 그러나 강의 첫날 지도 선생님이 칠판에 크게 쓴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네 글자를 보고 난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맞아! 그동안 미뤄뒀던 꿈을, 그것도 문학의 길을 손쉽게 입문하려 했다니!’ 이렇게 자책하며 나는 수필에 미쳐보기로 약속을 했다. 맛깔스런 수필 한 편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던 글이 어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으리.
시간만 나면 머리를 쥐어짜며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렸지만 내가 읽어봐도 아니다 싶었다. 가슴으로 써야하는데……. 그래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신의 삶과 체험한 주변 이야기를 소재삼아 글을 썼다. 그나마 풀어가기에 수월하다 보니 처음 낸 수필집 《여자나이 마흔둘 마흔 셋》은 나의 지나온 삶과 내 주변이 고스란히 들어나 있다. 첫 수필집을 보면 저자가 적나라하게 들어난다더니 나 역시 그러했다.
수필은 1인칭 문학으로 진솔한 자기고백이며 체험 속에서 건저올린 자기만의 생각과 문장으로 엮어야 한다고 배웠다. 문장은 겨울나무와 같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해야 하고, 문체는 부드러워야 하며, 미사여구를 지나치게 나열하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또한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써야 하며, 문장은 길어야 2줄 반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한문과 외래어는 되도록 우리말로 풀어써야 한다.
이렇게 나름대로 이론이 존재함에도 여전히 수필은 형식이 없는 글이라고 폄하되고 있다. 아마도 일정한 틀이 없다보니 듣는 소리인 모양이다. 수필도 엄연히 서론 본론 결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논술문과는 달리 논리적이 아니라 감성과 서정성이 바탕이 되어 자연과 순수한 인간애가 문학적으로 빚어졌을 때 좋은 수필로 독자에게 다가가리라.
수필에서 서두는 첫 인상과 같아 첫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독자가 계속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서두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결미다. 제목에서 상징하는 의미와 작자의 생각이 어우러진 의미화가 적절히 담겨져야 한다. 또 읽은 뒤 생각할 여지를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면 좋으리라. 그리고 세상에 글을 내놓기 전에 얼마나 퇴고를 했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결정되지 싶다. 낮에 썼으면 밤에 다시 보고, 맑은 날 썼으면 비 내리는 날 또 보고, 읽다 걸리는 구석이 있으면 또다시 다듬기를 해야 한다. 어느 유명한 소설가는 소설 한 편을 200번이나 다듬고서야 탈고했다는 일화를 보더라도 퇴고는 많이 할수록 좋은 작품이 나온다.
수필은 이렇게 써야한다는 이론을 알수록 수필쓰기가 더욱 어렵게 여겨진다. 수필은 웃고 들어가 울고 나온다는 말이 실감난다. 수필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多讀), 많이 생각하고(多商量) 많이 써보는(多作) 게 정도라고 배웠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 제대로 한 것이 없으니 어려울 수밖에.
어느 수필가는 수필은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글이어야 한다고 했다. 즐거움에는 정적, 지적, 깨달음, 심미적, 수사학적 즐거움을 꼽고 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충족되면 좋은 수필이라고 한다. 좋은 수필을 써 보고 싶은 건 누구나의 바람일 것이다.
수필은 관조(觀照)의 문학이라고 한다. 관조란 지혜로서 사물의 실상을 비춰 보는 일이라고 사전에 풀이되어 있다. 좋은 수필을 쓰려면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걸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되리라! 그를 통해 깨달은 작가만의 철학이 담긴 문장에 사유와 정감이 녹아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독자는 그 글을 읽고 동감하며 감동을 받으리라.
어느 문학제에서 심사가 불편함을 숨길 수 없었다. 축제의 프로그램은 시와 소설만이 문학인 듯 수필은 소외된 채 막을 내렸다. 주최 측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수필가들을 참석시킬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 그런 푸대접이 따라왔을까!
위의 5가지 외에 사회성이 미흡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지금껏 선호하던 제재가 자연을 그린 서정문과 신변잡기의 기록이 주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필의 특성상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으니 여벌문학으로 취급받았지 싶다.
방 한 쪽을 가득 메운 수필집과 관련된 책들이 읽어달라고 윙크를 하지만 맘을 나눌 시간이 모자라니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2집을 낼 때는 두께는 얄팍하고 크기는 손바닥만 하여 주머니에 들어 갈 수 있는 작고 아담한 책을 만들려고 한다. 서울을 자주 다니는 나는 가볍고 소지하기에 편리하며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한다. 그래서 작은 책이 좋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변화는 살아 남기위해 거쳐야하는 필수 조건이다. 수필도 현실에 맞게 변화한다면 현대에 가장 알맞은 문학 장르로서 각광을 받지 않을까. 그때에는 대기실에 대중잡지와 함께 수필집이 함께 공존하려니 싶다.
(2010.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