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2/김기택
2006.01.18 05:08
끊임없이 몸을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벌레 한 마리 걸어간다
한껏 긴 몸을 늘였다가 움츠릴 때
몸 가운데가 봉긋하게 솟으면서
몸 아래에 둥근 공간이 생긴다
긴 몸으로 그 공간을 밀어
벌레는 앞으로 나아간다
가만히 벌레의 걸음을 들여다보니
흰 알을 까며 가는 것 같다
몸을 늘였다 줄였다 할 때마다
하나씩 품어져 나오는 그 알을
수많은 짧은 다리들이 굴리며 가는 것 같다
김기택(1957~) ‘벌레2’ 전문
벌레가 기어가고 있다. 긴 몸을 늘였다 움츠렸다 하며 온 몸으로 기고 있다. 몸을 움츠릴 때 구부러지며 생기는 둥근 공간, 얼핏 보기에는 벌레가 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벌레가 그 공간을 굴려가고 있는 듯 하다. 굴려가고 있는 이 공간은 알인지도 모른다. 삶은 이렇듯 스스로 알을 만들고 그것을 굴리며 나아가는 데 목적을 두고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문인귀/시인
미주한국일보<이 아침의 시>2005년7월7일자
벌레 한 마리 걸어간다
한껏 긴 몸을 늘였다가 움츠릴 때
몸 가운데가 봉긋하게 솟으면서
몸 아래에 둥근 공간이 생긴다
긴 몸으로 그 공간을 밀어
벌레는 앞으로 나아간다
가만히 벌레의 걸음을 들여다보니
흰 알을 까며 가는 것 같다
몸을 늘였다 줄였다 할 때마다
하나씩 품어져 나오는 그 알을
수많은 짧은 다리들이 굴리며 가는 것 같다
김기택(1957~) ‘벌레2’ 전문
벌레가 기어가고 있다. 긴 몸을 늘였다 움츠렸다 하며 온 몸으로 기고 있다. 몸을 움츠릴 때 구부러지며 생기는 둥근 공간, 얼핏 보기에는 벌레가 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벌레가 그 공간을 굴려가고 있는 듯 하다. 굴려가고 있는 이 공간은 알인지도 모른다. 삶은 이렇듯 스스로 알을 만들고 그것을 굴리며 나아가는 데 목적을 두고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문인귀/시인
미주한국일보<이 아침의 시>2005년7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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