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윤제림
2006.01.18 05:15
꽃 피울려고 온몸에 힘을 쓰는 벚나무들, 작전도로 신작로 길로
살 하나 툭 불거진 양산을 쓰고 손으로 짰지 싶은 헐렁한 스웨터를 입고, 곰인형 가방을 멘 계집애 손을 붙들고 아낙 하나가 길을 간다. 멀리 군인트럭 하나 달려오는 걸 보고, 흙먼지 피해 일찍 피어난 개나리꽃 뒤에 가 숨는다. 흠칫 속도를 죽이는 트럭, 슬슬 비켜가는 짐칸 호로 속에서 병사 하나 목을 빼고 외치듯이 묻는다. “아지매요, 알라 뱄지요?” 한손으로 부른 배를 안고, 한 손으론 입을 가린 아낙이 수줍게 웃는다. 금방이라도 꽃이 피어날 것 같은 길이다.
윤제림(1959~) ‘길’ 전문
시골길, 비포장도로변을 딸아이 손을 붙잡고 걷던 아낙네가 흙먼지를 피우며 달려오는 군인트럭을 보고 한쪽으로 비켜선다. 그들을 지나가던 트럭에서 짓궂은 병사 하나가 소리를 지른다. “아지매요, 알라(애) 뱄지요?” 아낙이 한 손으론 부른 배를 만지며 한 손으론 웃음을 가리는 소박한 풍경이다. 얼마를 걷는다 해도 지치지 않을 편안한 길이 이렇게 트이고 있다.
문인귀/시인
미주한국일보<이 아침의 시>2005년 7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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