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꽃/이한종

2006.03.09 14:12

문인귀 조회 수:556 추천:24

생내 난 바람이 나뭇가지에 몸 비비며 지나가고
양수 하얗게 피워올린 밤꽃도
햇살이 뜨겁다며 잎사귀 밑으로 길을 내준다

밤꽃 필 무렵에는 누구나 허기가 돈다

날아다니는 멧새도 길 옆 개망초도 땅 속에 사시는
우리 어머니도
초여름에는 밤꽃 내음만으로도 허기 한 끼 때운다.

이한종‘밤꽃’전문



풋풋하고 싱그러운 바람이 마치 발정이 난 듯 밤나무 가지에 몸을 비비면 밤꽃은 은근슬쩍 길을 열어준다. 밤꽃은 이렇게 양수(羊水) 하얗게 피워 올린 냄새를 풍기는데 이 냄새를 맡으면 아무리 기개가 서슬한 수절과부라 해도 입술을 깨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끙끙 앓는다는 말이 있으니... 밤꽃 향내는 이렇게 초여름의 허기를 돌게 하는데 이를 바라보는 땅속의 어머니까지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실 거라니 참 소박한 풍요가 이는 밤꽃 풍경이다.

문인귀/시인



미주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8월2일 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2 혼돈 문인귀 2016.12.06 115
121 그림자가 흔들릴 때 -그림자 . 넷 문인귀 2003.07.09 168
120 길 . 둘 -이무기- 문인귀 2003.04.03 171
119 길 . 하나 문인귀 2003.04.02 175
118 종착점에 관하여 -길.셋 문인귀 2003.07.14 175
117 사막일지 . 둘 문인귀 2003.08.15 187
116 방향감각 문인귀 2003.03.27 192
115 고도孤島의 변 문인귀 2003.07.22 193
114 보이지 않는 회선 - 그림자 . 셋 문인귀 2003.07.07 196
113 또 하나 금강경 문인귀 2003.09.02 197
112 허상에 대하여 -그림자.하나 문인귀 2003.07.02 203
111 부재(不在) 문인귀 2003.04.17 212
110 문인귀 2003.08.05 214
109 아직 떠도는 섬 문인귀 2003.06.25 215
108 실상에 대하여 - 그림자.둘 문인귀 2003.07.02 216
107 비밀에 관하여 -돌섬 . 아홉 문인귀 2003.09.02 217
106 그 소나무에게 묻는다 -돌섬 . 여덟 문인귀 2003.09.02 219
105 우리우리 설날에 문인귀 2004.01.21 226
104 답서 문인귀 2003.08.12 228
103 타인他人 문인귀 2003.08.08 230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7
전체:
45,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