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물고기/복효근

2006.03.09 14:35

문인귀 조회 수:817 추천:61

내소사 목어 한 마리 내 혼자 뜯어도 석 달 열흘
우리 식구 다 뜯어도 한달은 뜯겠다 그런데 벌써
누가 내장을 죄다 빼먹었는지 텅 빈 그놈의 뱃속을
스님 한 분 들어가 두들기는데.....

소리가 하, 그 소리가 허공 중에 헤엄쳐 나가서 한 마리 한 마리 수천마리 물고기가 되더니 하늘의 새들도 그 물고기 한 마리씩 물고 가고 칠산바다 조기떼도 한 마리씩 온 산의 나무들도 한 마리씩 구천의 별들도 그 물고기 한 마리씩 물고 가는데...

온 우주를 다 먹이고 목어는 하, 그 목어는 여의주
입에 문 채 아무일 없다는 듯 능가산 숲을 바람그네
타고 노는데......

숲 저쪽 만삭의 달 하나 뜬다

복효근(1962~   ) ‘소리물고기’전문

내소사에 있는 목어 한마리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식구가 다 뜯어도 한달은 족히 먹고도 남겠다고 호들갑이다. 그런데 그 목어, 식구만 먹이는 분량이 아니라 온 우주를 다 먹이고도 남는다 하니 과연 크기도 큰 것인가 보다. 속이 비어야만 울려나오는 이 소리는 어찌 사람만을 위해 울리겠는가. 너나 할 것 없이 이 소리 듣는 이생의 것들 모두 평화로워 보이니 눈 감고 이 소리 들어보고 싶다. 그 소리 잔뜩 먹고 만월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면 참 좋겠다.

문인귀/시인



미주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9월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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