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그막에 만난 선생님/김현준

2012.05.09 08:15

김학 조회 수:252

늘그막에 만난 선생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나는 1970년 2월 대학을 졸업하면서 학사학위를 받고 오랫동안 공부를 더 하지 못했다. 필요한 지식만을 여기저기서 찾아 이용했을 뿐이다.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교직사회에서 대학원 진학의 붐이 일기 시작했고 석·박사학위 소지자에 대한 승진 가산점 제도가 도입되었다.
  나는 계절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하였으나 발목을 잡는 일이 생겼다. 누구를 지도교수로 정하여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학비에 대한 부담도 따랐다. 대학 동기생 몇이 교수로 있었고, 선후배 등 아는 사람도 있었다. 대학재학 중 특출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 밑에 들어가 '선생님, 교수님' 하며 배우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지 않았다. 석사학위가 꼭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다. 차일피일 미루며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그만두었다.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다.

  H중학교에 재직할 때였다. 그 고장 출신의 시인 복 선생을 만났다. 복 시인의 부인이 우리 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있어서 만나게 된 것이다. 시를 좋아하는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몇 차례 술 자리를 마련하였다. 곱창집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흥을 돋우었다. 나는 술기운을 빌어 습작시 한두 편을 읽었고 시인의 평을 들었다. 복 시인은 나보다 15,6년 연하지만 기분 상하지 않도록 잘 썼노라 격려를 해주었다. 나이가 어린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이다. 그럭저럭 습작시 30여 편을 썼다.

  퇴직한 뒤 뭔가 허전한 마음을 채울 길이 없어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에 나갔다. 처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얼마큼 수필작법을 익힌 뒤 지난날의 이야기를 엮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주위 문우들의 치열한 창작열과 등단, 그리고 수필집을 다투어 발간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석 달 동안을 조용히 오가며 글 솜씨를 다듬었다. 6월 16일 처음으로〈할머니의 지혜〉를, 이어서〈가슴 아픈 기억〉을 써서 김학 교수님에게 메일로 보냈다. 김 교수님은 친절하게 첨삭지도를 하신 뒤 행촌수필문학회 '마로니에 샘가'에 올려 주셨다. 이때부터 나는 바빠졌다. 일주일에 두 편씩 글을 꼬박꼬박 올렸다. 소재가 고갈되면 어쩌지 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하였다. 이제 1년이 가까워가니 100여 편의 글이 블로그에 올려졌다. 내가 생각해보아도 양적인 면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룬 것이다. 필력이 늘었는지는 모르겠다. 무턱대고 썼다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수필을 통해 삶을 보다 진지하게 만나고 있다.

  매주 월요일 오후 3시부터 안골노인복지관에서 수필수업이 시작된다. 칭찬사례를 발표하고 강의자료에 올라온 수필이론을 배운다. 교수님의 글을 듣고 문우님들의 수필 발표와 비평이 이어진다. 5시에는 인근식당에서 김 교수님을 모시고 문우들과 조촐한 저녁식사를 한다. '제3 강의실'로 잘 알려진 자리다. 막걸리, 소주를 곁들이며 허심탄회하게 수필에 대하여 대화를 나눈다. 교수님으로부터 한 수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문우님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를 하며 우의를 다진다.
  스승 같은 남경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어르신, 나 회장님을 비롯한 인생 선배님들, 남천 선생님 등 동료들과 함께 자리한다. 내가 모두 존경하는 분들이다.      

  김 교수님은 매일 새벽 4시쯤에 기상하신다고 한다. 수십 개의 메일이 그 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여러 정보를 문하생들에게 전달해주고 수필작품을 첨삭하여 블로그에 올려준다. 제목 달기부터, 서두, 내용, 맞춤법 그리고 결미까지 꼼꼼하게 살펴준다. 나의 작품은 이때부터 회원님들의 따가운 눈과 만나게 된다. 나의 감추어진 과거사와 가정환경, 나의 생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부끄럽기 한량없지만 '한 번 벗으면 그 다음부터는 쉽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었다.

  김 교수님은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하시어 30년이 넘게 수필가로 활약하신다. 지금까지 열한 권의 수필집과 두 권의 평론집을 내셨다. 고희가 되었는데도 지난 4월 중에는 십여 편이 넘는 수필을 쓰셨다. 가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정력적인 활동이다. 나는 교수님의 백분의 일이라도 흉내를 낼까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다.    
  또 어디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젠 늘그막에 만나는 선생님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아름다운 교제를 지속하고 싶다. 늘그막에 만난 선생님, 김학 교수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시길 소망한다. 그러고 보니 며칠 뒤에는 스승의 날이다.
                       (201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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