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자식들뿐/김학
2012.08.28 14:00
그래도 자식들뿐
김학
홀로가족이 늘고 있단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홀로가족 즉 1인가구가 지난해에는 24.6%였는데 올해는 25.3%로 조금 늘었다. 그러나 23년 뒤인 2035년에는 무려 34.3%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1980년에는 1인가구가 4.8%였는데 올해는 25.3%라니 무려 다섯 배가 넘게 불어난 게 아닌가?
지난해까지는 2인가구가 1인가구를 앞섰는데 올해에는 그 기록마저 역전이 되었다고 한다. 놀라운 1인가구의 증가추세가 아닐 수 없다. 홀로가족의 증가추세는 여기서 멈출 것 같지도 않다. 옛날 같으면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되어야 할 나이인 40대의 늙은 총각 처녀가 흔한 걸 보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 명을 넘었다고 좋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 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처서가 지난 어느 날, 안골 로터리에서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는데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여름에 비해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였다. 매미들이 여름 따라 떠날 날이 가까워지니 서글퍼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 성싶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여름내 힘차게 울던 수매미들은 목소리가 매력적이어서 그런지 이미 짝을 찾아 짝짓기를 마쳤고, 초가을에 접어든 지금까지 짝을 찾아 울어대는 이 수매미들은 짝짓기도 못하고 죽게 될 노총각매미들이 아닐까? 매미 같은 미물들도 후손을 남기려고 여름 내 목이 쉬도록 짝을 찾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어찌 짝을 찾아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산단 말인가?
잘나가는 젊은이들은 ‘화려한 싱글’을 자랑할지 모른다. 하지만 늙어 가면 점점 ‘쓸쓸하고 초라한 싱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번 늙어 버리면 결코 다시 젊은 날로 돌아 갈 수 없는 게 인생이다. 그러기에 젊어서 결혼을 하고 후손을 낳아 기르는 것이 사람이 가야할 바른 길인 것이다.
제15호 태풍 볼라벤이 사납게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다. 9명이 숨지는 등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냈다. 태풍 사상 5번째 최대풍속인 초속 51.8m의 강풍을 동반하여 피해가 컸다. 가로수가 뽑히고, 지붕과 간판이 날아가며, 과수원의 과일이 떨어지는 등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기상속보를 방송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의 실태를 소상하게 소개해 주었다.
의정부에 사는 큰아들이 이른 아침에 안부전화를 걸어 가급적 외출을 삼가라고 신신당부했다. 무심한 것 같은 큰아들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부모를 생각하는구나 싶어 기뻤다. 서울에 사는 딸아이도 제 엄마에게 조심하라며 안부전화를 했단다. 또 미국에 사는 둘째아들도 태풍피해가 없느냐는 메일을 보내 주었다. 어디에 있던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부모가 들어 있구나 싶어 흐뭇했다. 부모의 마음속엔 언제나 자식들 생각이 담겨 있듯이 말이다. 일가친척과 친지들 그 누구도 우리 부부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그래도 자식들뿐이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이가 들어가니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으면 눈물샘부터 반응하려 한다.
만일 우리 부부가 아들딸을 낳지 않고 이렇게 늙어 2인 가족이 되었다면 누가 이렇게 우리를 걱정해 주고, 우리는 또 무슨 재미로 살아갈 것인가?
나의 아들딸 2남1녀가 저마다 둘씩을 낳아 손자 네 명과 손녀 두 명을 두었다. 이 아이들이 간간히 즐거운 소식을 전해주며 기쁨조 노릇을 한다. 큰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인 동현이가 반장이 되었고, 의정부교육장배 초등학교수영대회 50m평영에서 1등, 50m접영에서 3등을 했다면서 문자메시지와 메일을 보내 주었다. 다섯 살짜리 미국 손자 동윤이는 가끔 전화를 하면 어눌한 한국어로 “책 잘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다. 외손자 안병현은 일요일 저녁 8시쯤이면 어김없이 안부전화를 걸어 준다. 병현이와 통화를 한 뒤에는 동생 병훈이를 바꾸어 준다. 그 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딸네 식구들의 근황을 속속들이 알 수가 있어서 좋다. 큰손자 동현이도 주말이면 전화를 걸어 주어서 즐겁다. 요즘에는 제 아빠가 동현이 반장 임명장과 수영대회 상장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내주어 기쁨을 더해 주고 있다. 손자손녀들이 없으면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들을 어떻게 맛볼 수 있겠는가?
내가 만일 홀로족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내가 없으니 아들딸이 없었을 테고, 아들딸이 없으면 며느리와 사위가 없을 것이고, 며느리와 사위가 없으니 손자손녀가 없었으리라.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는 일이다. 지금이 나에겐 천국이나 다를 바 없다.
(2012. 8. 29.)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나는 행복합니다》등 수필집 12권,《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등 수필평론집 2권/ PEN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동포문학상 본상, 전주시예술상, 목정문화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김학
홀로가족이 늘고 있단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홀로가족 즉 1인가구가 지난해에는 24.6%였는데 올해는 25.3%로 조금 늘었다. 그러나 23년 뒤인 2035년에는 무려 34.3%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1980년에는 1인가구가 4.8%였는데 올해는 25.3%라니 무려 다섯 배가 넘게 불어난 게 아닌가?
지난해까지는 2인가구가 1인가구를 앞섰는데 올해에는 그 기록마저 역전이 되었다고 한다. 놀라운 1인가구의 증가추세가 아닐 수 없다. 홀로가족의 증가추세는 여기서 멈출 것 같지도 않다. 옛날 같으면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되어야 할 나이인 40대의 늙은 총각 처녀가 흔한 걸 보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 명을 넘었다고 좋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 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처서가 지난 어느 날, 안골 로터리에서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는데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여름에 비해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였다. 매미들이 여름 따라 떠날 날이 가까워지니 서글퍼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 성싶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여름내 힘차게 울던 수매미들은 목소리가 매력적이어서 그런지 이미 짝을 찾아 짝짓기를 마쳤고, 초가을에 접어든 지금까지 짝을 찾아 울어대는 이 수매미들은 짝짓기도 못하고 죽게 될 노총각매미들이 아닐까? 매미 같은 미물들도 후손을 남기려고 여름 내 목이 쉬도록 짝을 찾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어찌 짝을 찾아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산단 말인가?
잘나가는 젊은이들은 ‘화려한 싱글’을 자랑할지 모른다. 하지만 늙어 가면 점점 ‘쓸쓸하고 초라한 싱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번 늙어 버리면 결코 다시 젊은 날로 돌아 갈 수 없는 게 인생이다. 그러기에 젊어서 결혼을 하고 후손을 낳아 기르는 것이 사람이 가야할 바른 길인 것이다.
제15호 태풍 볼라벤이 사납게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다. 9명이 숨지는 등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냈다. 태풍 사상 5번째 최대풍속인 초속 51.8m의 강풍을 동반하여 피해가 컸다. 가로수가 뽑히고, 지붕과 간판이 날아가며, 과수원의 과일이 떨어지는 등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기상속보를 방송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의 실태를 소상하게 소개해 주었다.
의정부에 사는 큰아들이 이른 아침에 안부전화를 걸어 가급적 외출을 삼가라고 신신당부했다. 무심한 것 같은 큰아들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부모를 생각하는구나 싶어 기뻤다. 서울에 사는 딸아이도 제 엄마에게 조심하라며 안부전화를 했단다. 또 미국에 사는 둘째아들도 태풍피해가 없느냐는 메일을 보내 주었다. 어디에 있던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부모가 들어 있구나 싶어 흐뭇했다. 부모의 마음속엔 언제나 자식들 생각이 담겨 있듯이 말이다. 일가친척과 친지들 그 누구도 우리 부부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그래도 자식들뿐이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이가 들어가니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으면 눈물샘부터 반응하려 한다.
만일 우리 부부가 아들딸을 낳지 않고 이렇게 늙어 2인 가족이 되었다면 누가 이렇게 우리를 걱정해 주고, 우리는 또 무슨 재미로 살아갈 것인가?
나의 아들딸 2남1녀가 저마다 둘씩을 낳아 손자 네 명과 손녀 두 명을 두었다. 이 아이들이 간간히 즐거운 소식을 전해주며 기쁨조 노릇을 한다. 큰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인 동현이가 반장이 되었고, 의정부교육장배 초등학교수영대회 50m평영에서 1등, 50m접영에서 3등을 했다면서 문자메시지와 메일을 보내 주었다. 다섯 살짜리 미국 손자 동윤이는 가끔 전화를 하면 어눌한 한국어로 “책 잘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다. 외손자 안병현은 일요일 저녁 8시쯤이면 어김없이 안부전화를 걸어 준다. 병현이와 통화를 한 뒤에는 동생 병훈이를 바꾸어 준다. 그 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딸네 식구들의 근황을 속속들이 알 수가 있어서 좋다. 큰손자 동현이도 주말이면 전화를 걸어 주어서 즐겁다. 요즘에는 제 아빠가 동현이 반장 임명장과 수영대회 상장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내주어 기쁨을 더해 주고 있다. 손자손녀들이 없으면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들을 어떻게 맛볼 수 있겠는가?
내가 만일 홀로족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내가 없으니 아들딸이 없었을 테고, 아들딸이 없으면 며느리와 사위가 없을 것이고, 며느리와 사위가 없으니 손자손녀가 없었으리라.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는 일이다. 지금이 나에겐 천국이나 다를 바 없다.
(2012. 8. 29.)
*김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나는 행복합니다》등 수필집 12권,《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등 수필평론집 2권/ PEN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동포문학상 본상, 전주시예술상, 목정문화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