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레 씻기/정장영
2012.10.27 15:18
써레 씻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어느새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우리나라의 농경은 주로 벼농사였다. 간혹 육도(陸稻)도 있지만 수도(水稻)농이다. 농사에는 여러 고비가 있다. 써레 씻기가 끝나면 벼농사도 한 고비를 넘겨 한동안 한가해진다. 어려운 한자말로 써레를 초파(耖耙)라 한다.
써레를 씻으면 모내기가 끝났다는 뜻이다. 하지(夏至) 앞뒤의 농번기가 절정에 이르러 촌음을 다툰 뒤 써레 씻기는 매우 부럽고 반가운 일이다. 수리안전답만 있으면 초파 씻기가 일찍 끝나지만, 천수답 농가는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다. 모내기 적기를 놓쳐도 대파(代播)보다는 늦게라도 써레 씻기가 되기를 바랐으니까?
광복직후 한동안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때가 있었다. 하늘만 바라보던 천수답이어서 홍수나기만 기다렸던 논에 뒤늦게라도 해갈의 비가 내리면 얼마나 반가웠던가? 단비를 맞으며 써레질을 하고 종일토록 모내기를 해도 지칠 줄 모르는 게 농심이다.
지금은 농촌에 가도 써레를 구경할 수가 없다. 경운기, 트랙터, 등 기계화 탓이다. 옛적엔 황소, 쟁기, 써레는 기본농기구다. 써레는 소와 쟁기로 초벌, 두 벌 갈아 두었다가 뒤에 물을 잡아 써레질을 한다. 두 번이나 쟁기질을 했지만 굳은 흙덩이를 바수고 골라야한다. 잘 골라지면 모내기와 논물조절이 편하다. 논바닥을 골라 흙이 부드러워야 모내기를 할 수 있으니 필수 농기구다.
실기(失期) 않고 마지막 초파 씻기가 이루어지면, 그날은 동네경사로 잔칫날이다. 쓰던 써레를 손질하고 깨끗이 씻어 처마 밑에 매달았다.
“수고했다.내년에 다시 보자.써레야 안녕!” 그간의 피로를 풀고자 마을 농부들이 모여 농주 한 잔으로 자축, 풍년을 바라며 편히 즐겼다.
벼는 못자리시절을 거처 모내기가 끝나 써레를 씻고도 앞길이 창창했다. 아직도 김매기와 풍수해, 병충해방제, 가을 추수, 여러 고비가 남아있었다. 이젠 세 차례의 김매기에 만드레도 사라지고 그 흥겨운 농요와 농악도 사라졌다. 이제 풍수해, 병충해 방제만 잘되면 풍년이 기약된 세상이다. 농번기란 말도 사라진지 오래고 그만큼 농사짓기가 수월해졌다.
여든여덟 번 손이 간다 해서 쌀을 미(米:쌀미)라 했다. 손이 많이 간다는 뜻이다. 미(米)자를 파자하면 팔십팔(八十八)이 되니 그럴만하다. 못자리 씨뿌리기부터 시작해 방아를 찧어 쌀뒤주를 채울 때까지를 말하겠지만 어쩐지 좀 아리송하다.
일본을 비롯해 동양 한자권(漢字圈)나라들은 미국을 이라 표기했다. 그런데 광복이후 우호적으로 美國이라고 표기하기 시작했다.
세계 2차 대전 때 일본인들은 적대국(敵對國)인 미국에 대하여 “미영격멸(米英擊滅),미국은 쌀이니 씹어 먹어 없애야한다”고 국민들에게 악선전도 했었다. 그러고도 여전히 미국(米國)이라 한다.
올해는 불행하게 태풍 때문에 풍성한 가을추수를 기대하는 농심이 멍들었다. 벼농사의 과정을 살펴보니 사람에게는 인권이 있듯 벼에게는 화(禾:벼화)권이 있겠다. 민주주의는 인권을 평등하게 만들고, 써레는 벼가 고르게 자라 다수확을 이끄는 농기구였다. 이제 써레 씻는 일마저도 사라졌다. 하지만 풍년이 들려면 써레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었던 것 같다.
(2012. 10. 27.)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어느새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우리나라의 농경은 주로 벼농사였다. 간혹 육도(陸稻)도 있지만 수도(水稻)농이다. 농사에는 여러 고비가 있다. 써레 씻기가 끝나면 벼농사도 한 고비를 넘겨 한동안 한가해진다. 어려운 한자말로 써레를 초파(耖耙)라 한다.
써레를 씻으면 모내기가 끝났다는 뜻이다. 하지(夏至) 앞뒤의 농번기가 절정에 이르러 촌음을 다툰 뒤 써레 씻기는 매우 부럽고 반가운 일이다. 수리안전답만 있으면 초파 씻기가 일찍 끝나지만, 천수답 농가는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다. 모내기 적기를 놓쳐도 대파(代播)보다는 늦게라도 써레 씻기가 되기를 바랐으니까?
광복직후 한동안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때가 있었다. 하늘만 바라보던 천수답이어서 홍수나기만 기다렸던 논에 뒤늦게라도 해갈의 비가 내리면 얼마나 반가웠던가? 단비를 맞으며 써레질을 하고 종일토록 모내기를 해도 지칠 줄 모르는 게 농심이다.
지금은 농촌에 가도 써레를 구경할 수가 없다. 경운기, 트랙터, 등 기계화 탓이다. 옛적엔 황소, 쟁기, 써레는 기본농기구다. 써레는 소와 쟁기로 초벌, 두 벌 갈아 두었다가 뒤에 물을 잡아 써레질을 한다. 두 번이나 쟁기질을 했지만 굳은 흙덩이를 바수고 골라야한다. 잘 골라지면 모내기와 논물조절이 편하다. 논바닥을 골라 흙이 부드러워야 모내기를 할 수 있으니 필수 농기구다.
실기(失期) 않고 마지막 초파 씻기가 이루어지면, 그날은 동네경사로 잔칫날이다. 쓰던 써레를 손질하고 깨끗이 씻어 처마 밑에 매달았다.
“수고했다.내년에 다시 보자.써레야 안녕!” 그간의 피로를 풀고자 마을 농부들이 모여 농주 한 잔으로 자축, 풍년을 바라며 편히 즐겼다.
벼는 못자리시절을 거처 모내기가 끝나 써레를 씻고도 앞길이 창창했다. 아직도 김매기와 풍수해, 병충해방제, 가을 추수, 여러 고비가 남아있었다. 이젠 세 차례의 김매기에 만드레도 사라지고 그 흥겨운 농요와 농악도 사라졌다. 이제 풍수해, 병충해 방제만 잘되면 풍년이 기약된 세상이다. 농번기란 말도 사라진지 오래고 그만큼 농사짓기가 수월해졌다.
여든여덟 번 손이 간다 해서 쌀을 미(米:쌀미)라 했다. 손이 많이 간다는 뜻이다. 미(米)자를 파자하면 팔십팔(八十八)이 되니 그럴만하다. 못자리 씨뿌리기부터 시작해 방아를 찧어 쌀뒤주를 채울 때까지를 말하겠지만 어쩐지 좀 아리송하다.
일본을 비롯해 동양 한자권(漢字圈)나라들은 미국을 이라 표기했다. 그런데 광복이후 우호적으로 美國이라고 표기하기 시작했다.
세계 2차 대전 때 일본인들은 적대국(敵對國)인 미국에 대하여 “미영격멸(米英擊滅),미국은 쌀이니 씹어 먹어 없애야한다”고 국민들에게 악선전도 했었다. 그러고도 여전히 미국(米國)이라 한다.
올해는 불행하게 태풍 때문에 풍성한 가을추수를 기대하는 농심이 멍들었다. 벼농사의 과정을 살펴보니 사람에게는 인권이 있듯 벼에게는 화(禾:벼화)권이 있겠다. 민주주의는 인권을 평등하게 만들고, 써레는 벼가 고르게 자라 다수확을 이끄는 농기구였다. 이제 써레 씻는 일마저도 사라졌다. 하지만 풍년이 들려면 써레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었던 것 같다.
(2012.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