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빛나게 해 준 분들께 보내는 감사의 편지/박세정
2012.12.15 04:16
내 글을 빛나게 해 준 분들께 보내는 감사의 편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박세정
안 될 수도 있지만, 될 수도 있다. 확률은 50%. 되면 기적이고 안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한 달여 동안 고민해온 신춘문예 응모작을 오늘 마침내 퇴고(推敲)했다. 정성들여 봉투에 넣고 신문사에 등기로 발송했다. 4주 동안 그 녀석들 때문에 애면글면한 생각을 하니, 시원섭섭하다. 내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빚었으니, 심사위원들의 냉철한 잣대로 평가될 일만 남았다. 내 손을 벗어난 세 작품 모두에게 따사로운 눈길이 쏟아지길 바라지만, 어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참여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려고 한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저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응모한 것이니, 안 된다고 해도 아쉽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다. 괜한 오기가 발동한 것도 한몫했다. 내가 쓴 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해보고도 싶었다.
개운하게 모든 걸 끝마쳤으니, 내일은 목욕재계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뵈러 가려고 한다. 부처님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지나온 날들을 더듬어 보려고 한다. 평화와 고요로 마음이 물들여 질 때까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한동안 앉아 있을 생각이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아쉬움, 후회로 뒤엉킨 생각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하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올 한 해는 그런 기분이 덜 했다. 그 생각의 끝에는 수필이 있었으니. 수필을 쓰면서 시시때때로 나를 반성하고 뒤돌아보았다. 연말에 한꺼번에 치러야 할 반성 의식을, 일상에서 조금씩 치러냈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흘러간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그동안 살아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글귀를 머릿속에 담고 살아왔다.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지만, 내게는 위안이 되는 거리 하나가 더 생겼다. 다름 아닌 수필이, 요즘 나를 위로해 주고 있다. 언젠가는 흘러간다는 것으로도 위안이 되지 않을 날도 있을 것이다. 그 때 내 곁에 있는 수필이 나를 위로해 줄 터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순간, 올 한 해 인연으로 만난 글쓰기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길고 긴 인생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라고 했다. 올해 내가 만난 김학 교수님은 평생 잊지 못할 은인으로 남을 것이다. 교수님은 내가 수필을 향해 뛰어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그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이처럼 많은 글들을 쓸 수 있었을까? 사람이 인정을 받고 안 받고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글로써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이 좋은 글을 빚으려는 욕심으로도 이어졌다. 여러모로 감사해야 할 분이다. 나이를 잊고 열심히 생활하시는 모습을 본받으려고도 했다. 앞으로 더 노력하여 좋은 글로 스승님 은혜에 보답하려고 한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목요야간반 문우님들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이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김길남 선생님이다. 그 분을 만난 것 또한, 올 해 나의 행운이었다. 77세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직도 진행 중인 인생을 살고 계신다. 그 나이쯤이면 대부분 완료형의 시제로 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분은 아직도 하시는 일들이 많고, 계속 무언가를 이루어가고 계신다. 그 모습에 나는 매료되어서, 나의 노년도 김 선생님과 같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분에 비하면 아직 어리지만, 곁에 계신 선생님을 통해서 인생의 참 멋을 배우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십시오!”
가족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글을 완성할 때마다 맨 먼저 딸아이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중학교 1학년인 아이는 제법 정확한 평을 한다.
‘엄마, 이 글은 소재가 굉장히 참신해요. 글도 괜찮아요.’ <어린이날과 고추모종>
‘이 글은 너무 이야기가 많아서 정리가 안돼요. 몇 가지를 빼야겠어요.’ <아버지와 자전거>
‘이 글은 감동을 주기보다는 엄마 자신을 성찰하는 글 같아요.’ <글을 쓴다는 것으로>
아이의 평을 듣고 나면 어디를 수정해야 할지 감이 온다. 어떻게 저 작은 머리에서 그런 생각이 나오는지 의아해 할 때도 있다. 신은 아마도, 내 글이 못 미더워서 영특한 딸아이를 나에게 선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계속 엄마의 든든한 독자로 남을 딸아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바깥일로 바쁜 남편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도움이 이상야릇하긴 했지만 말이다. 남편의 귀가가 늦어서 퇴근 후 저녁 시간에 많은 글들을 썼다. 만약 남편이 집에 일찍 돌아왔다면, 그 만큼의 글을 쓰지 못했으리라. 그 옆에서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았을 것이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그를, 넓은 거실에 혼자 썰렁하게 앉혀 둘 배짱이 나에겐 없으니 말이다. 본의 아니게 밖에 많이 머물러서 글 쓰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준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아이의 평을 듣고 고친 글은 직장 동료 몇 분에게 건네진다. 그들이 L과 J다. L은 신문방송학과 출신이다. 문장, 문맥, 토씨의 잘못된 부분을 정확히 꼬집는다. 평이 솔직담백해서 좋다. J는 국문학과 출신이다. 평이 서정적이다. L처럼 정확히 꼬집지는 않지만, 비유와 은유가 탁월하다. J의 평을 듣고 몇 군데를 고치고 나면 글이 훨씬 더 부드러워진다. L과 J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올 한 해 공짜로 신세를 졌지만, 내년엔 뭔가 사례를 해야 할 것 같다. 식사를 대접하든지 술을 대접하든지. 두 사람 다 음주가무에 능해서 어울려 술 한 잔 기울이면 기분이 좋아진다. 모쪼록 올해 두 분의 신세를 많이 졌으니, 이 해가 가기 전에 얼굴 마주보며 식사라도 함께 할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직장 팀장님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일하는 틈틈이, 스친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팀장 몰래 글을 쓰기도 했다. 눈치껏 했건만, 몇 번 들킨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팀장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셨다. 감사할 따름이다. 회사에서는 오로지 업무적인 일만 해야 하거늘, 가끔 글을 쓰기도 한 나를 눈감아 주셨으니 이도 감사하다. 내년엔 그리하지 않기로 다짐해 보지만 잘 될지 자신이 없다.
“팀장님, 올 한 해 감사했어요.”
마지막으로, 한 해 동안 많은 글을 쓴 주인공인 나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 모든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해도, 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신호 대기 중 멈춘 차 안에서 글을 고쳤고, 좋아하는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글을 완성했다. 내가 이처럼 열정적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건대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 그 이상이다. 글쓰기에 올인한 나의 생각과 열정과 실천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내가 글을 쓰는데 도움을 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그들이 있었기에 내 글이 더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마음 평생 잊지 않고 간직하리라. 한 해를 정리하면서 고마운 분들이 이처럼 많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큰 축복인지. 며칠 남지 않은 12월을 정리하면서, 감사의 편지를 쓰게 허락해주신 신께도 고마움의 인사를 올린다.
2013년 새해에도 나의 글이 더 빛나도록 열심히 쓸 생각이다. 삭막해져만 가는 세상에 사람냄새 나는 따뜻한 글들을 많이 쓰고 싶다.
(2012.12.15.)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박세정
안 될 수도 있지만, 될 수도 있다. 확률은 50%. 되면 기적이고 안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한 달여 동안 고민해온 신춘문예 응모작을 오늘 마침내 퇴고(推敲)했다. 정성들여 봉투에 넣고 신문사에 등기로 발송했다. 4주 동안 그 녀석들 때문에 애면글면한 생각을 하니, 시원섭섭하다. 내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빚었으니, 심사위원들의 냉철한 잣대로 평가될 일만 남았다. 내 손을 벗어난 세 작품 모두에게 따사로운 눈길이 쏟아지길 바라지만, 어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참여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려고 한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저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응모한 것이니, 안 된다고 해도 아쉽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다. 괜한 오기가 발동한 것도 한몫했다. 내가 쓴 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해보고도 싶었다.
개운하게 모든 걸 끝마쳤으니, 내일은 목욕재계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뵈러 가려고 한다. 부처님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지나온 날들을 더듬어 보려고 한다. 평화와 고요로 마음이 물들여 질 때까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한동안 앉아 있을 생각이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아쉬움, 후회로 뒤엉킨 생각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하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올 한 해는 그런 기분이 덜 했다. 그 생각의 끝에는 수필이 있었으니. 수필을 쓰면서 시시때때로 나를 반성하고 뒤돌아보았다. 연말에 한꺼번에 치러야 할 반성 의식을, 일상에서 조금씩 치러냈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흘러간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그동안 살아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글귀를 머릿속에 담고 살아왔다.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지만, 내게는 위안이 되는 거리 하나가 더 생겼다. 다름 아닌 수필이, 요즘 나를 위로해 주고 있다. 언젠가는 흘러간다는 것으로도 위안이 되지 않을 날도 있을 것이다. 그 때 내 곁에 있는 수필이 나를 위로해 줄 터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순간, 올 한 해 인연으로 만난 글쓰기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길고 긴 인생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라고 했다. 올해 내가 만난 김학 교수님은 평생 잊지 못할 은인으로 남을 것이다. 교수님은 내가 수필을 향해 뛰어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그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이처럼 많은 글들을 쓸 수 있었을까? 사람이 인정을 받고 안 받고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글로써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이 좋은 글을 빚으려는 욕심으로도 이어졌다. 여러모로 감사해야 할 분이다. 나이를 잊고 열심히 생활하시는 모습을 본받으려고도 했다. 앞으로 더 노력하여 좋은 글로 스승님 은혜에 보답하려고 한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목요야간반 문우님들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이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김길남 선생님이다. 그 분을 만난 것 또한, 올 해 나의 행운이었다. 77세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직도 진행 중인 인생을 살고 계신다. 그 나이쯤이면 대부분 완료형의 시제로 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분은 아직도 하시는 일들이 많고, 계속 무언가를 이루어가고 계신다. 그 모습에 나는 매료되어서, 나의 노년도 김 선생님과 같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분에 비하면 아직 어리지만, 곁에 계신 선생님을 통해서 인생의 참 멋을 배우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십시오!”
가족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글을 완성할 때마다 맨 먼저 딸아이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중학교 1학년인 아이는 제법 정확한 평을 한다.
‘엄마, 이 글은 소재가 굉장히 참신해요. 글도 괜찮아요.’ <어린이날과 고추모종>
‘이 글은 너무 이야기가 많아서 정리가 안돼요. 몇 가지를 빼야겠어요.’ <아버지와 자전거>
‘이 글은 감동을 주기보다는 엄마 자신을 성찰하는 글 같아요.’ <글을 쓴다는 것으로>
아이의 평을 듣고 나면 어디를 수정해야 할지 감이 온다. 어떻게 저 작은 머리에서 그런 생각이 나오는지 의아해 할 때도 있다. 신은 아마도, 내 글이 못 미더워서 영특한 딸아이를 나에게 선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계속 엄마의 든든한 독자로 남을 딸아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바깥일로 바쁜 남편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도움이 이상야릇하긴 했지만 말이다. 남편의 귀가가 늦어서 퇴근 후 저녁 시간에 많은 글들을 썼다. 만약 남편이 집에 일찍 돌아왔다면, 그 만큼의 글을 쓰지 못했으리라. 그 옆에서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았을 것이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그를, 넓은 거실에 혼자 썰렁하게 앉혀 둘 배짱이 나에겐 없으니 말이다. 본의 아니게 밖에 많이 머물러서 글 쓰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준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아이의 평을 듣고 고친 글은 직장 동료 몇 분에게 건네진다. 그들이 L과 J다. L은 신문방송학과 출신이다. 문장, 문맥, 토씨의 잘못된 부분을 정확히 꼬집는다. 평이 솔직담백해서 좋다. J는 국문학과 출신이다. 평이 서정적이다. L처럼 정확히 꼬집지는 않지만, 비유와 은유가 탁월하다. J의 평을 듣고 몇 군데를 고치고 나면 글이 훨씬 더 부드러워진다. L과 J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올 한 해 공짜로 신세를 졌지만, 내년엔 뭔가 사례를 해야 할 것 같다. 식사를 대접하든지 술을 대접하든지. 두 사람 다 음주가무에 능해서 어울려 술 한 잔 기울이면 기분이 좋아진다. 모쪼록 올해 두 분의 신세를 많이 졌으니, 이 해가 가기 전에 얼굴 마주보며 식사라도 함께 할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직장 팀장님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일하는 틈틈이, 스친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팀장 몰래 글을 쓰기도 했다. 눈치껏 했건만, 몇 번 들킨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팀장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셨다. 감사할 따름이다. 회사에서는 오로지 업무적인 일만 해야 하거늘, 가끔 글을 쓰기도 한 나를 눈감아 주셨으니 이도 감사하다. 내년엔 그리하지 않기로 다짐해 보지만 잘 될지 자신이 없다.
“팀장님, 올 한 해 감사했어요.”
마지막으로, 한 해 동안 많은 글을 쓴 주인공인 나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 모든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해도, 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신호 대기 중 멈춘 차 안에서 글을 고쳤고, 좋아하는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글을 완성했다. 내가 이처럼 열정적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보건대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 그 이상이다. 글쓰기에 올인한 나의 생각과 열정과 실천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내가 글을 쓰는데 도움을 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그들이 있었기에 내 글이 더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마음 평생 잊지 않고 간직하리라. 한 해를 정리하면서 고마운 분들이 이처럼 많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큰 축복인지. 며칠 남지 않은 12월을 정리하면서, 감사의 편지를 쓰게 허락해주신 신께도 고마움의 인사를 올린다.
2013년 새해에도 나의 글이 더 빛나도록 열심히 쓸 생각이다. 삭막해져만 가는 세상에 사람냄새 나는 따뜻한 글들을 많이 쓰고 싶다.
(2012.12.15.)